COC
작성일
2021. 6. 17. 12:35
작성자
굔정뱅이

2019.04.14 [블레리즈] 밤벚꽃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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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4 PM. 4:32
 
블레모어의 기억에서 리즈샤는 약 한 달 전,
 
자신의 세계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대학 교수인 블레모어는 최근 며칠 동안 바깥 출입도 하지 못할 만큼
 
심하게 앓았습니다.
 
단순한 봄 감기인 줄 알았던 증상은 원인 불명의 열병으로 번져
 
당신을 지독하게 괴롭혔습니다.
 
끙끙 앓고 일어난 방은 어둡고 조용합니다.
 
창 밖은 이미 한밤중이고,
 
그믐이라 달이 없어 캄캄합니다.
 
그리고 타는 듯한 갈증.
 
잠들기 전에 켜 둔 TV에서 의미 없는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바깥에서는 바람이 부는지
 
창문이 약하게 덜컹거립니다.
 
몸이 뻐근하지만 슬슬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일어나서 주변을 좀 볼까요.
 
교수님이 쉬면 그것대로 곤란하니까요.
 
블레모어:(이미 식어버려 기분나쁜 열을 내뿜는 젖은 수건을 이마에서부터 쓸어내린다)
 
망할놈의- ...
 
(젖다 말라가는 수건을 테이블 위에 두고 뻐근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몸을 푼다)
 
 
블레모어:아오씨- 아파 죽겠는데 옆에 봐주는 사람 한명 없고 TV 도 드럽게 재미없네.
 
(목이 말랐는지, 치직거리는 티비를 끄고 물한잔을 마시러 간다)
 
집 안은 그저 고요하며,
 
싸늘하기 그지없습니다.
 
블레모어:맛이 갔긴 갔나보다. 몸은 존나 뜨거운데 차가운 물좀 들이켰다고 서늘하고는. 쯧...
 
(들리는 사람 없이 혼잣말로 중얼거며 물이 반쯤 남은 잔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대학 졸업하면 이딴거는 볼 생각 없었는데 정신차려보니 애새끼들 논문이나 읽어보고있고... (귀찮다는듯 뻐근한 몸을 잠시 누워있었던 소파에 앉힌다. 앞 테이블에 어지럽혀져 있는 종이더미, 보아하니 제 학생들의 논문들인가 보다. 논문 하나를 들고 읽어가는 듯 하다, 포기한듯 종이를 테이블위에 내던지고 소파에 힘없이 눕는다)
 
 
블레모어:빙빙 돌아 죽을것같은데 망할놈의 글이 퍽이나 읽어지겠냐-...
(지끈거리는 머리를 눕히고 눈을 뜨자 보이는 천장. 바람이 부디치고 나무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 사이를 비짖고 나오는 저녁의 빛바램. 잠을 청해 볼려 하지만 욱하고 나올것같은 메스꺼움에 눈을 감기 싫었다. 그저 제 숨소리와 바람이 나뒹구는 소리를 계속이고 들었다. 아마 최대한 그 이상의 어떤 생각과 고민, 과거, 추억을 떠오르게 하고 싶진 않았던거겠지)
 
...뭘 하면 좋습니까.... 잠도 더럽게 안와.
 
지금껏 열심히 달려오긴 했지만 확실히 피곤하긴 합니다.
 
조금 심신을 달래보려고 쇼파에 눕자,
 
발치에 뭔가 걸립니다.
 
또 뭐야, 이건?
 
블레모어:....이놈의 집구석 아까부터 은근 짜증나게 하네 또 뭐야? (귀찮다는듯 무거운 고개를 결국 들어올려 무언가에 눈을 돌렸나. 아마 자신이 귀찮다며 치우지 않고 방치한 머그컵이니 하겠다만-...)
 
머그컵이겠거나, 그런 생각을 하며 들어올리자
 
그것은 인형입니다.
 
인형?
 
벚꽃 장식을 머리에 단 귀여운 악어 인형입니다.
 
어디보자,
 
그런게 왜 나한테 있었더라.
 
아.
 
그러고보니 리즈샤가
 
‘선생님 닮아서 사왔어요! 선물이에요!’
 
하며 무작정 들이밀고 강의를 들으러 뛰쳐나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조공… 아니,
 
선물을 받는 것도 일상이라면 일상입니다.
 
...일상이었지만요.
 
블레모어:...
 
(이렇게 제 일상에 스며들었는데 여기에 있는 줄도 몰랐어, 게다가 처음 보자마자 기억은 커녕 무슨 다큰 사내 집에 망할놈의 인형이 있는지 궁금증부터 생각이 들었다. 잊고싶은 기억도 아니였고 또 가벼운 기억도 아니었기에 조금... 어째서 하곤 스스로 물어본다)
 
리즈... 참나, 오랜만에 말해보네. 예전에는 지겹도록 말하게 했었던 이름인데-.. (어라, 예전은 언제전부터였더라, 안그래도 돌아가는 머리속이 더욱 복잡해져 이마가 달아올라, 머리가 빙 돌아가듯 이마를 집고는 작게 앓는다. 이게 무슨 일이람. 짜증나게)
 
그저 알 수 없는 마음과, 감각에...
 
머리가 아플 뿐입니다.
 
그러고보니 아까 물을 마시고 식탁에 올려둘 때
 
뭔가 스쳐지나간 것도 같습니다.
 
왠 인형도 눈에 보이고...
 
아까부터 짜증나게 뭐야?
 
그런 생각을 하지만 확인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마치 의무감과도 같은 것이,
 
머리를 스칩니다.
 
블레모어:(자신을 거슬리게 만드는것이 느껴진다면, 확인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저를 거슬리게 만드는것이다, 라고 생각하게 만든 장본인 또한 아마 이 인형을 건네준 희미해지는 너일터다. 죽도록 거슬렸던 아이, 귀찮았지만 외면하지 않은것은 거슬렸던 너는 내가 확인해야만 했던 존재였기에)
 
..물론 거슬리는 느낌이 단순 아파서 착각한거라면 진짜 -... 뭐 일단 좋은반응은 안보여줄테니까말이야. 젠장 아픈사람을 뭘로 보는거야.
 
후후, 어쩐지 뭔가가 귓가로 스쳐가는 기분도 듭니다.
 
그럼에도 블레모어는 확인하러 갔습니다.
 
귀찮지만... 거슬리지만.
 
어쩐지 돌아보지 않고는 안되겠는, 그런 느낌요.
 
블레모어, 관찰 판정.
 
블레모어: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62
판정결과: 실패
 
뭐야...
 
그냥 빈 카드잖아.
 
여기저기 들고 살펴봐도 그냥 흰 카드 일 뿐입니다.
 
이런데에 신경쓸 틈이 어딨다고...
 
할 일이 있다면 할 일부터 합시다.
 
짜증나지만 자신은 수업을 준비해야하는 지도자니까요.
 
블레모어:아까부터 보자보자하니까-... (라고는 말해도, 화낼 상대방이 정확하지 않아 이빨을 아득 물다가 천천히 삼킨다. 내가, 내가 참아야지. 빌어먹을 뭐가되었던 잘난 내가 참아야한다 시발...)
 
하아... 안그래도 힘없는데...
 
(돈벌이나 해야지 이러다간 혼잣말만하다가 이름도 모를 병에 미쳐 죽을것같아 억지로 눈에 들어가지 않는 논문을 읽어내리며 펜으로 마킹을 한다.)
 
 
블레모어:이자식 또 이거 이렇게 썼네 몇번을 알려줘도 못알아먹는 놈들 꼭 있어요~...
 
살아있는 이상, 하기 싫어도 해야하는건 일입니다.
 
학생들을 투정하면서도 손은 열심히 움직이고,
 
그 자료 사이에 뭔가 끼워져 있습니다.
 
블레모어:바빠죽겠는데 뭐야 이건 또 (한껏 화를 내며 자료더미들 사이 눈에띄는 무언가를 찾아본다)
 
핸드아웃 확인.
 
자신이 맡은 대학 교양 강의 시간에 받은 어떤 조의 발표자료 입니다.
 
꽤 잘 만들어온 자료라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납니다.
 
리즈샤는 제 강의라면 꼭 수강신청을 하고,
 
수업이 시작하면 눈을 반짝거리며
 
자기 얼굴만 보는 그 시선이 조금 부담스럽다는…
 
기억도 있습니다.
 
저렇게 티내기도 힘들텐데 말이죠.
 
그래도 무조건 A+를 받아가는 걸 보면
 
확실히 똑똑하긴 똑똑한가 싶었습니다.
 
쟤를 대학원에 보내야 했는데...
 
블레모어:(인형부터 자료까지, 누가봐도 어색하고도 말도 안되는 우연과 어쩌면 잊고싶어서 흐릿한 너를 누군가 자꾸 끄집어 낼려는듯 온 신경이 네 흔적들에 작게 반응이하기 시작한다. 몇번이고 읽어본 자료와 자연스레 따라오는 네 흔적. 문뜩 궁금할만하기도 하지 않는다. 너는 지금 어디에 있을지)
 
어디에도 있을 법하지만 이상하게 눈돌리면 사라질 것 같은,
 
그런 아이였습니다.
 
뭐, 적어도 누구의 기억 속에는요.
 
블레모어:.... 근데 이걸 가지고 뭘 어째야하는지.. (조금은 곤란하다는듯, 버리는 방법도 있었으나 괜시리 손이 쉽사리 움지이지 않아 결국 자료를 두어번 접고는 아까 찾은 인형옆에 잠시 내려놓는다. 가지고 있는다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지만 버리는것보단 나아, 라고 느껴졌기에)
 
학생이 준 자료를 버리면... 교수로서 어떨까 싶네요.
 
일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쉬어도 좋습니다.
 
책상 정리를 다시 해도 좋습니다.
 
바닥을 정리해도,
 
그저 창 밖을 바라봐도 좋습니다.
 
당신의 집이니까요.
 
블레모어:(괜한 오기가 들었는지, 아픈상태에 더한것일까 제 성격은 말리지 못한다는듯 죽어도 제 일은 하고 죽어야겠거니, 다시 펜을 잡고는 좀더 집중해 자료들을 확인하고 검토한다. 몇분이 지났을까 어깨가 뻐근해질 무렵 입이 심심한지라 커피라도 한잔 가지고 올까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또다시 한번 부엌으로 다가간다)
 
커피가 어딨더라...
 
어쩐지 조금 열받기도... 오기가 생기기도 합니다.
 
카페인이라도 날 조금 도와주겠지...
 
그런 생각에 부엌으로 향합니다.
 
어디보자, 커피가...
 
찬장에 뒀나?
 
블레모어:날 풀리고는 싹 한번 정리라도 해야지...
 
(어지러진 찬장을 뒤적이며 중얼거렸나, 아 저기있다. 커피를 딱히 즐기는 것은 아닌지라 그저 믹스커피인것을. 가위를 찾을 기력이 없는건지 그저 귀찮은건지 이빨로 믹스봉지를 연다. 앗차, 물.)
 
(포트에 물을 넣어 물이 끓기를 기다린다. 손에는 믹스가루가 들어있는 머그컵뿐 또 다시 한번 독백의 시간이 찾아온다. 이번에는 무엇을 생각하면서 기다려볼까)
 
아픈 사이에 정리도 못해서 그런지 바르게 정돈되어 있진 않았습니다.
 
그저 멍하니 기다리다보면 다 끓었다는 신호가 탈칵, 하고 들려서
 
순간적으로 내려다보면 포트 옆에는 뭔가가 있습니다.
 
하나같이 안 거슬리는게 없네...
 
블레모어:커피 한잔이라도 그냥 느긋하게 마시게 해주면 안되냐, 정신아-... (하아, 숨을 내뱉고는 그래, 거슬리는 그 '무엇'을 확인할려 포트를 도로 내려놓고는 확인한다)
 
블레모어, 관찰 판정.
 
블레모어: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97
판정결과: 실패
(관찰 다시한번...ㅎ)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행운 판정.
 
블레모어:
행운
기준치: 70/35/14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팔팔 끊는 연기에 가려 모르고 싱크대로 처버리려 했으나
 
잽싸게 잡아챕니다.
 
그것은 흰 색 카드였고
 
그 옆에는 활짝 핀 벚나무 꽃가지가 있었습니다.
 
카드에는
 
[절절한 애정으로 마음 앓던 이여, 부디 오래 아파하지 않기를.]
 
...라고 적혀 있습니다.
 
리즈샤가 블레모어에게 공양한 꽃과 카드입니다.
 
블레모어:절절한 애정으로 마음 앓던....
 
(홀린듯 눈에 읽히는 것을 읽어내린다. 분명 나는 정신이 멍해 쉽게 글이 읽어내려질 일이 없을텐데 이미 알고있고 또 달달 외운듯이 자연스레 입으로 세어나오는 문구.)
 
... 또 ... 또 너야?
 
 
블레모어:(낯설게 느껴졌다. 분명 나의 집, 내가 살고 있는 곳 인것을 어째서 나는 네 흔적들을 여태 알지 못했고 또 느끼고 보지못했는지, 꽁꽁 숨겨둔것도 아닌 잡을려 마음먹으면 쉽사리 잡을 수 있는 곳에 놓여있었는데 어째서 오늘, 지금이 되서야 네 흔적들이 마치 자신을 알아봐 달라는 듯 이렇게 거슬리고도 손이가게 만드는가)
 
....이렇게 되면 꼭 마치 걔가 찾아와서 숨어서는 장난 치는 것 같잖아, 물론 전혀 아니겠지만.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주위를 살펴본다 한들 너는 없을텐데, 알면서도 눈은 괜시리 너를 찾았다. 너를 불렀다)
 
물론 없겠지만, 그만하지... 그만하면 좋겠는데... (순식간 저도모르게 쓰게 비웃는 제 얼굴을 눈치체지 못하고 작게 혼잣말을 하듯 허공에 읊어보았다. 증기가 빠지고 마지막 열을 뿜는 물이 천천히 식어가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당신의 세상은 언제든, 어디서든,
 
잔인하지 않았습니까?
 
참, 무슨 말을.
 
만약 당신이 느끼는게 정답이라고 느껴지거나,
 
의구심이 든다면...
 
' 우당탕! '
 
...침실로 가보시길 바랍니다.
 
블레모어:
 
(숨이 턱 막혀 저도모르게 신음을 내뱉는다. 목젖을 치듯 뜨거운 공기가 들어와, 어디선가 깊은곳에서 본능적으로 들리는 곳에 시선이 간다. 누가 가르키지도 않았으나 분명 침실인것을. 마치 먹이감을 들은 야생동물처럼 들리는 곳을 향해 물속에 제 숨소리마저 숨기며 조용히 하지만 빠르게 소리의 원인의 뒷덜미로 다가간다).
 
[침실로 갑니다]
 
침실의 문을 열자
 
뭔가 거대하게 흩어져 있습니다.
 
블레모어:(벌컥 연 방은 어둡기 그지없었지만 제 눈 만은 확실히 빛이돌고 있었고, 갑작스럽게 시야에 들어온 모든 정신없음을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뭐야, 어?
 
(정신없다, 머리속과 마찬가지로 어질러져있다. 물론 원래부터 그리 깔끔하게 정리된 방은 아니였지만서도. 먹이감을 확인하지 못한 악어는 빠르게 밀려오는 분노에 이를 아득 물고는)
 
 
블레모어:시발, 누구야?! 작작하고 나와 아까부터 거슬리다고 느꼈더니 쥐새끼라도 들어왔나- 젠장!
 
(머리는 급히 어지러워져 벽에 손을 쥐고 잠시 휘청거리는 자신을 세운다. 진정해야겠지, 나야 어케 되던 상관은 아니다만 이딴짓을 해놓고 혹여나 정말 누군가가 있다면 그자식의 낯짝은 보고 기절해야하지 않는가, 천천히 숨을 내쉬고는 차츰 안정된 시선이 되자 찬찬히 다시한번 침실을 훑어본다. ...이게 뭐야?)
 
핸드아웃 확인.
 
블레모어:....빌어먹을 벚꽃이야기.
 
(머리가 뜨거웠다. 무엇을 발견하듯 결국 너로 돌아가는 듯 하다. 설마, 무슨 잘못이라도 했던것인가. 많이 했겠지, 저도 제 말이 그리 고운 이는 아니라는걸 잘 알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벚꽃을 닮은 너는 희미하게 끝날려는 막바지의 봄을 애절하게 이어가 하루하루 힘들게 내 앞에 피어나지 않았는가)
 
미쳐 돌겠네, 잘해줬는데도 기억조차 잘 못하니까 화나서 복수니 뭐니 그런거라도 하는거야? 아?
 
 
블레모어:(이름도 얼굴도 목소리도 흐릿한 계집아이. 여전히 거슬리고 짜증나는 맘에 들지 않는 아이. 한번도 굴리지 않았던 자신을 마치 가지고 놀듯 감정이란 감정을 다 꺼집어 내 스스로를 혼란시켜버리는 인간 계집아이)
 
(분명 아까 티비는 꺼두어 뒀을 터, 머리속은 지직거리는 소리에 깨질듯 하다. 정말로 미쳐가는걸까 머리속에서는 주마등처럼 잊어버린 빛바랜 사진들이 얼핏 보이고 결국 쓰디 쓴 입안에서는 바람결에 들어간 시든 벚꽃의 꽃잎향이 나기 시작한다)
 
블레모어, 관찰 판정.
 
블레모어: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강의 자료와 함께 소설책의 찢어진 페이지가 들어 있습니다.
 
핸드아웃 확인.
 
블레모어:..........시이발-...
 
(벚꽃, 벚꽃, 빌어먹을 봄과 너. 진절머리 나게 또 말못할 감정이 느껴져 머리를 감싸고 한껏 앓는 소리를 내었다. 입에서 느껴지는 얇고 짖눌린 끝자락의 봄, 그리고 점점 마치 자신을 삼키는듯한 너와 봄의 흔적들. 언제부터 너를 잊기 시작했고 언제부터 의식하지 않았는지, 나는 언제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해 열을 냈었는지, 깊게 씹어갈수록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이 세상 누구가 봄의 시작과 끝날을 정확히 말 할 수 있는가)
 
그래, 시발 빌어먹게도 다 맞네요. 미친새끼가 아니면 감기같은거 걸렸다고 이딴 환상부터 잡소리가 머리속에서 울리지 않을 거 아니야-....
 
 
블레모어:(눈을 지끈 감았다. 어째서인지 감은 눈 너머 조금 더 환한 빛이 보이고 내리는 땀은 부드러운 바람에 닦이는 듯 느껴졌다. 눈을 뜨면 제 침실이 아닌 사람 하나 없는 벚꽃나무 아래에 울부짖는 자신이 있을까 싶어 눈을 뜨지 못했다)
 
...
 
껐던 TV가 켜지며 갑자기 화면이 바뀝니다.
 
사뭇 오래된 듯한,
 
혹은 그런 효과를 넣은 듯한 흑백의 영상입니다.
 
원경으로 잡힌 커다랗게 우거진 꽃나무를 배경으로
 
누군가의 내레이션이 흐릅니다.
 
[...이를테면 그믐.
 
그믐밤은 아주 좋은 때입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어서,
 
달이 없는 밤에는 떠나간 것들이 돌아오기 쉬워지지요.
 
드문 일이긴 합니다만,
 
이제는 닿지 못할 아주 먼 곳에서
 
찾아오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기척을 낼 때는 주의하십시오……]
 
...
 
띵동ㅡ.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립니다.
 
블레모어:(홀린듯 제 생각과 흘러가는것은 단 하나도 없다. 독백의 시간 조차 없는 듯 느껴졌다. 이제는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으며 혹은 자신이 미쳐간다며 무엇이라도 외면할려 발버둥 치던 나 또한 없었다. 그래, 이번에는 무엇인지. 무엇이 저를 괴롭게 할려고 하는지 친절하게 초인종까지 눌러 저를 보러 오는가.)
 
...이번에는 또 무슨 망할놈의 말도안되는 새끼가 왔을까? (어이없게 웃으며 그는 천천히 문을 열었어)
 
철컥.
 
현관문은 손잡이를 아무리 돌려도
 
둔탁하게 철컥거릴 뿐 열리지 않습니다.
 
블레모어:철컥.
 
철컥 철컥.
 
....제기랄...!!! (열리지 않는 문을 거칠게 흔들었지만 열리지 않았다. 그저 열리지 않는것에 화가난것이 아닌,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저를 더욱 바보처럼 취급하는듯한 이런 상황들이 싫었다. 거칠게 문을 다리로 차며 맨주먹으로 문을 두들었지만 충격에 가한 자국만 남아있을뿐 문은 여전히 닫혀있다)
 
 
블레모어:그래, 그래 해보자 이거야- 사람새끼 미치는거 보고싶으면 해보자고. (이를 아득이며 주위를 바라보았다. 현관문이 아니라면 빌어먹을 창문이라도 넘어 마중나가겠노라)
 
하지만 창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덜컹거리는 소리만 반길뿐이네요.
 
인터폰마저 고장이라도 났는지 작동하지 않습니다.
 
남는건... 도어 렌즈 뿐입니다.
 
블레모어:(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제 시선을 가린다. 이곳저곳을 뒤지고 주먹질을 한 지라 주먹은 얼얼하고 부분부분 자잘한 상처에서 옅은 피자국이 쓸려있었다)
 
(이마와 시야를 가리고있는 앞머리를 쓸어내려, 날카로운 눈은 다시 문에게 돌려간다. 말없이 걸어가 도어 렌즈를 들여다 본다.)
 
도어 렌즈를 통해 밖을 내다보면 서 있는 사람은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던 리즈샤입니다.
 
익숙한 얼굴이 물끄러미 도어 렌즈를 바라보며 침묵합니다.
 
언제나 웃고 있어야 하는 그 얼굴이,
 
새삼 이질적으로 느껴집니다.
 
아무리 쾅쾅 문을 두드려도,
 
소리는 문 너머로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 때,
 
가슴께 높이 쯤 되는 우편물 투입구를 통해
 
뭔가의 종이가 흘러들어 옵니다.
 
아니마 리즈샤:[ 안녕하세요, 선생님! 쪼끔 갑작스럽죠! ]
 
그것은 리즈샤의 편지입니다.
 
글씨인데도 불과하고,
 
마치 그 통통 튀는 목소리가 들리는 착각이 듭니다.
 
블레모어:(온순간에 올려오던 머리의 열기가 차갑게 식어들어가고 안개가 가득해 보이지않던 흐린 시야가 찬찬히 제 색감을 찾아간다. 제 발등에 떨어진 종이를 제 손으로 집어 올리기에는 꽤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운이좋게도 아니면 상식 이상으로 어이없는 상황인지라 그런건지 손은 떨리지 않았고 그래서 편지를 좀 더 잘 읽을 수 있었다. 손이라도 흔들렸다면 적어도 네목소리가 들리진 않았을까)
 
....조금? 장난해? 재밌어? (다시한번 문을 차고 손잡이를 철컥인다. 조금 갑작스럽죠, 안녕하세요 선생님. 반가움 하나 없는 네 등장이였다. 화가 났으며 이런짓을 하는 너를 똑똑하게 보고 싶었다. 그야, 아무리 쓸모없는 계집아이인 너라 한들 너는 이런짓을 할 아이가 아니다. 다른이는 몰라도 네 흉내를 내는 이는 용서할 수 없다)
 
아무리 문을 돌려본들, 여전합니다.
 
심지어 그대로 주저 앉은건지 렌즈의 범위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니마 리즈샤:(음... 역시 화났나... 그래도 할 말이 꼭 있는데... 그대로 문 앞에 쪼그려 앉아선 꾹꾹 뭔가 적더니 또 일방적인 편지를 보내고 만다. 차라리 어이없고, 화내는 목소리라도 들으면 평소랑 다를바 없이 그저 웃으면서 다시 올게요! 할텐데. 어거지로 편지를 밀어 보냈다.) [ 리즈, 이제부터 아주아주 먼 길을 가려구요. 아마도 선생님이 없는 길이네요! 외롭지만… 괜찮아요! 리즈니까요. ]
 
블레모어:어떻게 답 하라는거야.. 말로 해, 빌어먹을 편지니 뭐니로 하지 말고 말로 하라고, 리즈샤
 
(한참 너와 시간을 보냈을때에는 리즈, 라고 했었겠지. 저도모르게 풀네임이 나와 너를 불렀다)
 
... 뭔 소리를 지꺼리는거야, 또 혼자 생각하고 혼자 판단하는 중이야? 목소리 들어보니까 화난것같아서 또 멍청이처럼 눈치보고 있어? 아아, 화났어 화났으니까 빌어먹을 문좀 열어봐. 놀리는것도 아니고 적어도 사람 눈을 보고 이야기 하라고 빌어먹을-!
 
 
블레모어:(뒷이야기가 어찌 되었던 괜찮았다. 네가 어디를 가던 상관없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잠시 없어졌던 네가 이제서야 다시 찾아와 또다시 한번 먼 곳으로 간다고 한다. 웃기기도 하지, 누구 마음대로)
 
제 위치도 모르는 주제에 갑자기 사라졌다가 다시 찾아온것 만으로도 어이없는데, 또 내 허락 없이 어디를 가? 이거 열어.어디도 못가. 알았어? 못간다고... 빌어먹을 열어 제발 좀-!! (머리가 어지럽다. 힘이 빠져가는것을 알면서도 필사적으로 너를 잡을려 했다. 고작 문 하나로 너를 붙잡을 수 없이 이렇게 매달리는 자신이 징그러웠고 싫었다.)
 
...씨발, 이렇게 되면 마치 내가 붙잡는것같잖아-... 네가 뭔데...!!
 
아니마 리즈샤:(아하하, 진짜 웃긴다. 들리지도 않는데, 아무것도 넘어오지 않는데, 어떤 모습인지 눈 앞에 훤히 보여서 저도 모르게 건조하게 웃었다. 오히려 너무 조용하고 고요해서, 사실 건너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착각이 들정도로... 그래도 나는 어쩔 도리가 없었고, 방법도 없다. 죄송해요. 평소에는 말 잘 듣는 아이로 노력했는데 막상 이렇게 또, 멋대로 판단해서요. 그런데 어쩔 수 없는걸요. 역시 이 조차 용서해주지 않으시는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차라리 그냥... 그냥 목적이나 이뤄버리고 빨리 가자. 그게 선생님한테 좋다면, 네가 좋아진다면, 나는 언제나 당신의 안위를 먼저 챙길게요. 깔끔하게, 그래도 개성있게, 그런 식의 글씨체가 남긴 편지를 다시 보냈다. 애초에 이것도 욕심이니까요.)
[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따악… 한 번만 더, 선생님과 만나고 싶어서, 그래서 찾아왔어요. 리즈는... 역시 착한 학생이 아니었나요? ]
(뭐라도 말해주지... 아니, 적어서 보내주지. 아니네. 평소에도 뭘 바라고 선물이며 뭐며 받친건 아니잖아. 이번에도 그러자. 이번에도 그냥 주고, 가버리자.) ...선생님, 리즈 여기 있어요오... (깔짝, 깔짝... 접으려고 해도 지저분한 잔재가 그걸 용서치 못하고 문을 살살살 긁는다. 이번에도 답이 없다면, 그냥 가버리자. 나한테는 왠지 그게 어울릴 것 같잖아.)
 
블레모어:(거칠게 숨을 헐떡인다. 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어째서 사각사각 찬찬히 작은손으로 제가 하고싶은 말을 써내려가는 작은 소리는 들리는 듯 하였다)
 
망할놈의 편지는 그만 쓰고-...제발..문좀 열라고-...
 
(다리는 풀려 털썩 바닥에 주저 앉고 말았다. 작은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편지, 그 종이에는 적어도 네 온기가 남아있겠지, 겨우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여기뿐인걸까. 봐, 너는 역시 여기에 있잖아, 그러니까 빌어먹을 문좀 열어봐.)
 
 
블레모어:... 종이가
 
(한껏 구겨진 작은 종이를 겨우 가져와 아까 제 주머니에 넣어놨던 펜으로 천천히 적어내리기 시작한다)
 
[ 너는 어디있어. 네 짜증나는 목소리도 환영이니 직접 말을 해.
 
 
블레모어:(한참동안 손이 멈춰, 무엇을 써야 좋을지 잉크는 검은 웅덩이를 만들듯 종이에 번진다)
 
빌어먹을 편지로 물어볼거면 안 볼거야. ...아니, 그래 만나주겠어. 네가 부탁해서가 아니라 내가 만나기로 마음 먹은거다. 넌 아무런 선택지 없어. 질문은 만난 다음에 답해줄테니까, 그러니 만나자. 지금 당장. 내 앞에 제대로 나와]
 
아니마 리즈샤:...푸핫. (역시 화나셨구나. 그래도 이렇게 적어서 넘겨준게 기쁘다. 안주셨으면 정말 가버리려고 했으니까. 겨우겨우 받은 종이를 두 손에 쥐고 쿡쿡 웃었다. 아, 정말. 이거 하나로도 이렇게 좋아서야... 분명 선생님이 없는 길이라고 했는데, 괜찮다고 했는데, 리즈는 똑똑하니까, 나는 똑똑하니까. 그런데 와르르 무너지듯 종이를 쥐었다 피기만을 반복했다. 그래도 아쉬워요, 선생님. 저희는 지금 이게 최선이거든요. 이런 상황에도 수줍게 웃으며 다시 하나하나, 꼼꼼히 적어내려 갔다. 어디가 구겨지지도, 더러워지지도 않는, 글씨가 적힌 종이를 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 리즈, 지금 선생님 앞에 있어요. 문 밖에 있어요. 리즈 맞아요. 선생님, 리즈는 선생님한테 단 한 번도 거짓말 한 적 없잖아요? 그런데 죄송해요. 제가 이런 말하니까 건방지죠? 그런데 정말 이게 최선이고, 최대에요. 그래도 잘 지내시는거 같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걱정했어요. 많이 걱정했어요. 아휴... 참! 왜 진작에 이런 말을 해주지 않은거에요? 진작에... 만나주겠다고 하지. 왜 이제와서 그러는거에요? 정말 심술쟁이야! >-ㅜ ]
(장난치듯, 할 말은 하면서 개구지게 말했다. 뭐가 됐든 리즈샤는 이런 아이였기에 괜히 통하지도 않는 투정을 부렸지만 거의, 아니 항상 일방통행이었으니까 이정도는 부디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블레모어:(너는 내 손바닥 안이라고 그렇게 생각해왔으나 그것은 스스로가 만든 착각속이라는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너를 이해할려 또는 속박할려는 순간 네 그 표현못할 티 없는 태도들이 제 행동을 묶어놓았고, 스스로 말하는게 놀랍지만 이쯤되면 받아드릴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놀아다닌건 네 앞에 있던 나였다는것을.)
 
(아무리 내가 너를 알고도 모르다 한들 너는 이걸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는걸 잘 안다. 그야 너는 순수한듯 보였으나 원하는 모든것을 삼키고 싶어 스스로까지 태워버리는 그런 계집아이였음을. 네가 고작 이렇게 나를 느끼는것에 만족할까, 너는 더욱 욕심히 강한 아이였으니)
 
[이상황에 같잖은 장난까지 치는 것 보니 초심을 잃은건가, 아니면 이제는 간절해지지 않은건가. 나는 지금 너에게 딱 한번 네 말을 들어줄 나의 권리를 주고있는데 먼저 최선이라 선을 그어 이걸로 만족해? 건방진걸 넘어 실망스럽구나.
 
 
블레모어:(네 커다란 욕망이 아직도 있다면 그저 최선의 이상을 뛰어넘어 저를 귀찮게 하길 바랬다)
 
평소에도 말하지 않을려고 했지만 원래도 멍청이였던 네가 더욱 멍청하게 돌아와서 평생 없었을 찬스를 만들어 준거야. 그 찬스는 네가 알아서 해. 알다싶이 너는 이제 마지막인듯 마냥 말하고 있고, 나 또한 멍청이에게 두번째 기회를 주지않아.
 
(한참을 망설인듯 살짝 번진 잉크를 이어 글을 써내려간다)
 
 
블레모어:내가 보고싶다고 말하는거야. 널. 그러니 만나자고.]
 
아니마 리즈샤:(맞아. 나는 지독하게도 질척거리고 원하는건 이뤄야 했다. 단지 그게 살아가면서 단 하나를 위한 행동이었고 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당신을 위해 뭔가를 했을거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냐. 그것도 상황이 만들어져야 할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은 알았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최대한 한발, 두발 물러서기로 했다. 그래, 나는 타협하는 법을 배워 세상을 납득하기로 마음먹었다는 뜻이다. 가능하다면 나는 이 문을 다 부숴버리고 밀어낼걸 알면서도 당신을 껴안았을거다. 허나 지금은 그게 안된다는 것. 네 학생은 자신의 입장을 납득하기로 한거다. 언제나 그랬듯, 혼자서.)
[ 기뻐요! 정말 기뻐요! 선생님이 먼저 리즈를 만나고 싶다는 말을 하다니! 마치... 그래요, 꿈같네요! 아주 멋진 꿈이에요. 너무 좋아서 깨어나고 싶지 않는, 그런거 있잖아요? 리즈도 선생님 보고 싶어요. 당장 얼굴을 보고 껴안아 드리고 싶어요. 근데 그게 안되요. ]
(그게 안되요. 그 부분만 유일하게 눈물로 젖어 번졌다. 아닌 척 해도 누구보다 애절하고, 누구보다 절실하고, 누구보다 애가 타는건 자신이었으니까. 왜요? 왜에요? 왜 그래야만 했어요? 그 의문이 목끝까지 넘어왔지만 전해지지도 않았고 전해서도 안됐다. 이러면 마치 당신을 질책하는 것 같았기에. 한참을 뜸들이더니 다른 한 장을 더 밀어 넣었다.)
[ 좋아해요, 선생님. ]
(당신은 저의 전부에요. 당신이 없으면 안되요, 없으면 못살아요. 그래도 당신이 잘 지내는거면 저는 그걸로 만족해요. 좋아해요, 많이 좋아해요. 선생님, 정말 좋아해요. 같잖은 학생의 마음이지만 사랑하고 있어요.)
 
블레모어:......아...
 
(머리가 뜨겁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어째서인지, 확실히 울고 있지는 않았어. 내가 이런일에 울 이유는 없으니까. 허나 마음이 지독하게 저려온다. 찢어지는 것 같고 아프다. 쉽사리 말 못할 감정. 심장을 꺼낼 수 라도 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내던졌을것이다. 네가 나에게 감정을 밝혀서? 아니, 아니 어쩌면 그건 이미 알고 있었어. 그저 그 감정이 무엇인지, 또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당연하다고 생각했지. 너는 나를 떠날수 없으며 고로 너는 나를 좋아할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이렇게 다시한번 곱씹고 새로운 맛을 느끼고싶지 않았다. 이렇게 또 다시 너로 인해 망가지는것은 여전히 너무나도 아프다)
 
(손으로 편지를 써야하는데, 이게 결국 너와 소통할 하나뿐인 방법인데, 손은 이어가질 않는다. 손가락 하나 비짓어 들어가지 않는 작은 틈으로 목소리가 들릴까 조금 더 가까이 몸을 기댄다)
 
 
블레모어:젠장 빌어먹을 이 상황에 나보고 글을 쓰라고? 할것같아? 당연 못해... 안들리겠지. 그래 안들리겠지 젠장 제기랄!!
 
[왜 안돼. 왜 왜 왜 왜. 왜 또 처 울고 난리야. 알아. 멍청이도 아니고 네가 날 아주 역할정도로 사랑한다는거 알아. 귀가 없어질 정도로 좋다고 따라다닌게 누군데.
 
(근데, 이제와서? 이런 상황에? 확실히 지금 이순간 너도 마찬가지로 나 또한 많은것을 내려놓고 있는건 사실. 누구에게 이런 목소리와 반응은 보여주지않았다. 그야 그들은 나를 이렇게 절실하게 만들지도 않았고 곤란하다 못해 자존심을 스스로 꺾어내리게 만드는 이 하나 없었으며, 지금의 모습을 보여주고 또 만든것은 이 세상 너 하나밖에 없다는것을. 그렇다 한들 여전히 나의 방식이 있으며 마치 멍청한 로맨스 영화처럼 상황을 받아드리고 마지못해 만나지 못하는 이와 사라져가는 그런 일은 일어나게 하지 않을것이다)
[... 주고 가는것 없이 엉망진창 만들어 버리고 이제와서 착한척 하면서 마치 나한테 어떠한 말이라도 듣고싶은듯이 고백같은거, 받아주지도 않을거고 진지하게 들어주지도 않을거야. 이기적이고 일방적인 네 태도 잘 알았어. 그렇게 나온다면 똑똑히 지금 하는 네 모든 짓이 틀렸다는걸 알려줄테니까 진정 그렇게 감정표현 하고싶으면내가 직접 가서 듣겠어.]
 
블레모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편지와 함께 아까 찾은 카드를 편지와 함께 아마도 밖에 있는 너에게 보낸다.
 
[절절한 애정으로 마음 앓던 이여, 부디 오래 아파하지 않기를.]
 
아니마 리즈샤:(왠지모르게 당연하게 여겼다. 당신이 나를 좋아할리 없다고. 만약 친절하게 대한다고 해도 그건 사회 생활 중 예의에 불과하며, 혹은 내가 쓸만하니까 그러는거라고. 그게 너무 버릇이 되어버렸으니 이제와선 오히려 주는 것만 잔뜩 주게 된, 뒤틀리고, 집착하고, 한 몸을 받칠거라는 이상한 애정이 들끓고 만거다. 애써 표현한다면 당신이 날, 나를, 혹여 같은 마음으로 봐준다면 의심을 해버릴 정도로... 딱 그정도였다. 이건 나의 짝사랑, 당신에게는 전혀 반가울게 없는 멋모르는 학생의 짝사랑, 그리고 귀찮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않나요? 그런데 이런걸 보니까 괜한 희망을 가져요. 혹시... 혹시라도? 혹시, 만약이라도 선생님은 절... 꽤 좋게 봐주고 계셨나요? 이런 더러운 마음으로 납득해서 죄송해요. 뭐라도 전하려다 건내온 카드와 편지를 받았고 걸국 문에 머리를 기대고 엉엉 울고 말았다. 아, 정말 지독하게 사랑스럽고, 애절하고, 나의 세상, 나의 전부.)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나의... 단 평생의 단 하나뿐인 마음.
 
블레모어가 카드와 편지를 보냈지만,
 
이 뒤로 1분, 2분, ...5분,
 
되돌아오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 때,
 
등 뒤로 집 안쪽에서 무언가
 
요란하게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 소리는 머그잔이 떨어지는 소리인 것 같습니다.
 
아까 커피를 먹은...? 갑자기 왜?
 
창문이 바람에 덜컹거리고
 
TV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오늘 밤에는 비 소식이 있습니다.
 
여린 꽃잎은 봄철 빗방울에도 덧없이 떨어져 버리고 말죠.
 
ㅡ아아,
 
어째서 아름다운 것들은 쉽게 사라지는지.]
 
그리곤 뒤늦게 편지가 들어옵니다.
 
아니마 리즈샤:[벚꽃이 지면, 정말로 안녕이에요.]
[리즈가 없어도 선생님은 잘 지낼 수 있으시죠!? 리즈는 선생님이 없으면 많이, 많이… 세상에서 엄청 슬픈 사람이 될 것 같지만 그래도 힘낼게요.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들긴 싫으니까요. ...리즈는 선생님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이어서 몇 장의 종이가 우편물 투입구에서 문 안쪽으로 떨어져 흩날립니다.
 
어떤 소설책의 찢어진 페이지 입니다.
 
팔랑,
 
팔랑,
 
팔랑...
 
핸드아웃 확인.
 
먼곳에서 우르릉,
 
하늘이 울립니다.
 
들릴 리 없는 빗소리가 귓가를 적시는 듯한 착각이 입니다.
 
블레모어, 듣기 판정.
 
블레모어: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6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천둥 소리에 섞여 무언가 커다란 것이
 
퍼더덕거리는 소리가 들린 듯도 합니다.
 
도어렌즈 너머로 보이는
 
리즈샤의 상태가 점점 이상해입니다.
 
흐려지는 듯,
 
흩날리는 듯,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하하.
 
이런 일은 한 번도 없는데,
 
어쩐지 그리운 감각이 들지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착각인가요?
 
부디 당신조차 스스로 깨닫지 못한,
 
그 죄악감도 착각이길 빕니다.
 
그리곤 현관문에서 찰칵,
 
소리가 나더니 손잡이가 약간 돌아갑니다.
 
블레모어:[문을 연다]
 
문을 열면
 
리즈샤가 현관 입구에 서 있습니다.
 
그의 등 뒤로는 어느 사이에 다 피어버린 것인지,
 
커다랗게 우거진 벚나무 가지마다 활짝 핀 벚꽃이 가득합니다.
 
흐드러지게 만개한 꽃가지 아래로
 
엷은 분홍빛 꽃잎이 성긴 눈발처럼 하늘하늘 날리는,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길고 긴,
 
남색의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퍼져
 
얼굴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다홍빛은 새빨갛게 빛나고 그 밑으론
 
보라빛이 조금 서려 있습니다.
 
눈동자는 온전히 당신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울었는지 빨갛지만
 
그 위에 걸친 웃음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어울리고,
 
또 그리울 정도입니다.
 
그 광경을 본 블레보어는 옅은 두통을 느낍니다.
 
집 안에서 발견한 단서들의 내용과,
 
리즈샤가 실종되었던 사실,
 
찢어진 소설책에서 본 구절 따위가 어지럽게 머릿속을 휘저으며
 
정신을 괴롭힙니다.
 
블레모어, 정신력 판정.
 
블레모어:
정신
기준치: 40/20/8
굴림: 2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어떤 기억이 블레모어에게 떠오릅니다.
 
당시 학과에서 잠깐 유행하던 감기지만,
 
난히도 지독했던 봄 감기.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헤매듯 앓던 날의 밤,
 
가슴에 찾아들었던 격통과……
 
...집의 문은 언제부터 열리지 않게 되었던 것일까요.
 
블레모어는 벚꽃이 만개한 며칠 전,
 
심하게 앓아누웠던 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인은 심각한 고열에 의한 병사,
 
결국 그 사실을 기억해 냅니다.
 
쉽게 다가오지 않아서 일까요,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블레모어는 자신의 죽음을 떠올려냄과 함께,
 
달 없는 밤의 손님은 리즈샤가 아닌 자기 쪽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블레모어, 이성 판정.
 
블레모어:
SAN Roll
기준치: 40/20/8
굴림: 53
판정결과: 실패
 
이성 3 감소.
 
아니마 리즈샤:안녕하세요, 선생님.
 
블레모어:(무슨 의미가 있어 길게 생각을 할까. 나는 어리석었고 결국 이제서야 어떠한 감정을 삼키고 너를 만나겠다며 그런 모습까지 보여놓고 정작 네가 다가가지 못하도록 선을 그은것은 나였구나. 어리석었고, 멍청했고 너는 얼마나 답답했을련지.)
 
(자신의 앞에서 인사하는 너에게 어떠한 반응을 보여야 할 지, 어떤 말을 해야할지, 지금 하는 행동들은 결국 내 미련과 후회에서 울어나온 것들이며 아마 의미없이 그저 저를 괴롭힐 뿐일텐데. 아무 의미 없었다. 어떻게 되든 이미 나의 위치를 알았으니까. 그래, 질척하게 가겠다면 끝까지 창피하고도 멍청한 새끼로 가야지 싶다)
 
정말 답답했겠다. 주제도 모르는 선생이라는 놈이-.. 아, 역시 쪽팔려. (하하, 작게 웃어내리고는 이마를 쓸어내리다가 손바닥을 눈 부근에 멈춰 잠시 시야를 가렸다)
 
 
블레모어:...내가 바보같이 군거는 인정하는데, 왜 또 앞에 네가 있는거야, 결국 진짜 후회하다 죽은 놈이 된거잖아. 제길... (아마도 너는 내가 만든 상상이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너에게 아직 하지못한 말들과 인정하고 받아드린 시간이 없어 이 자리에서도 내 세상에는 너를 그려내고 있구나 싶어서. 대답은 할려나, 자아가 있을까, 그마저도 내가 만든 너 라면 그저 스스로 조금이나마 만족할수있는 죄겠지. )
 
...그래서 다음은 뭐야? 지옥이라도 떨어질려나, 젠장 좀 착하게 살걸.
 
아니마 리즈샤:죄송해요. 리즈는 똑똑한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대답해 드릴 수 없어요. 아니 애초에... 모르겠어요. 그래도 만약 지옥에 떨어져도... (저도 뒤따라 갈게요. 당신이 지옥에 간다면 나도 갈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없는 세상은 의미란 없으니까. 타협과 납득과 이해는 해도 한 순간일 뿐이리라. 분명 너무너무 괴로워서, 스스로 자멸해버리고 말거다. 겨우 선생님과 제자고 나의 짝사랑인데 왜이렇게 혼자 안일하게 구는지. 왜 나를 주웠나요? 왜 나에게 손을 내밀었어요. 그런 후회도 해보지만 결국 나는 그렇게 해줘서 고맙다며, 마치 구원이라도 받은 마냥 손을 뻗었을거다. 갑자기 차오르는 눈물에 손으로 벅벅벅 닦아내고 방긋, 그렇게 웃어보려고 했지만 아마도 못생기고, 괴상한 얼굴이겠지.)
 
정말, 걱정했어요. 많이 걱정했는데... 잘 지내지는거 같아 다행이네요. 이제 아프지 않으세요? 머리는 괜찮으세요? ...거기는 어때요? (분명 똑같이 다시 한 번 안부를 물었을 뿐인데 기분탓인가, 다른 의미로 들렸다. 왜 그렇게 가버리셨어요. 저는 그 날 아무것도 못하고 울었던 기억밖에 없지 뭐에요. 나의 구질구질한 짝사랑이다. 아니면 외사랑? 그러니까 더 슬펐던가? 머뭇, 머뭇, 손가락끼리 엮어 꼼지락 댔다.)
 
...저, 그러니까, 저, 리즈, 손, 한 번만... 잡, 잡아주시면 안될까요? 그게 아니면... (제가 거기로 갈까요? 마치 그렇게 말하듯 뒷말을 삼켰다. 나는 뭘해도 당신의 의사를 존중해 줄것이며, 거스르지 않을 것이다. 사실 안아달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분명 질색을 하며 물러날게 뻔해서. 그래도 손만은 잡고 싶었다. 온기를 느끼고 싶어서, 마지막으로 만나러 온거잖아. 먼 곳을 보듯 눈동자가 빈 느낌도 들었다.)
 
블레모어:(잘난것 없는 내 앞에는 다시한번 네가 있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네가 있다. 비록 너를 불러온것이 나의 지독한 후회와 아직 알지 못한 감정들이라면 두번다시는 하지말라며 선을 그어버리겠다는 누군가의 뜻일지도 모른다. 만약 후회함에 있어 너를 언젠가 저 멀리 다시 이렇게 불러낼 수 있다 한들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랬다.
 
갈곳없이 방황하는, 혹은 그저 이 세상에 맞지 않은 너를 주웠을적의 주 목적은 그저 제 말을 복종해줄 인간도 무엇도 아닌 살아움직이는 무언가이길 목적으로 삼아 너를 데려왔다. 너는 상냥한 아이였고, 아무래도 저를 길러주는듯한 나를 좋아하는 듯 했지만 그것 조차 바보같이 느껴져 나의 목적을 털어놨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너를 좋지않게 보는 내 절망적인 시야와 태도까지 사랑해주었고 마치 그것을 먹고 자란듯 보였다.
 
나보다 가진것 하나없이 돌아 갈 곳도 없었으며 유일하게 기댈수 있는 나라는 존재또한 네가 원하는 반응을 주지 않았기에, 내 손을 잡았다 한들 여전히 너는 홀로 이 세상에 서 걸어왔다.
 
 
블레모어:아무것도 가진게 없음에도 어째서 너는 그렇게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 가진게 없는 자에겐 잃을게 없어 단순하고도 멍청하게 자잘한것에도 웃으며 자기자신까지 희생할 수 있는걸까. 내가 하지 못하는 너의 것을 맛볼려 너를 소유할려고 했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결국 너는 내가 소유 하고 삼킬 수 있는 존재가 아니였다.
 
아무리 네가 나를 높이 보고 사랑한다 한들 정작 너보다 보잘것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나에게 너라는 존재는 없애고 싶은 존재였다고 그리 생각해왔다. 너를 좀더 거칠게 못되게 밀고 거부한다면 부서질 거라 생각했으나 그런 너는 그 절망속에서도 오직 나를 사랑한다는 그 감정 하나로 비실하게 하지만 끈질기게 살아왔다.
 
그렇게 모든 일이 폭풍처럼 지나가, 언제서부터인가 기억나는것은 하나 없었다. 그저 여전히 내가 해야 될것을 했고 그 행동을 언제서부터 시작했는지 조차도 기억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죽어서도 자신의 자존심에 의해 너를 한없이 외면한거겠지.
 
 
블레모어:이제서야 네가 사라진다고 생각하자 절박해졌고 그래서 너를 잡노라 한발자국 나섯다고 생각했다. 창피했고 낯설었으나 너로 인해 내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을 더 느끼고 싶지 않았다. 인정하고 받아드려 거기에서 다시 태어나듯 언젠간 너보다 더한 존재가 되겠다고, 그러니 네 앞에서 무릎꿇고 인정하며 내가 가지고있지 않은 네 부분들을 먹어버리겠다고.
 
결국 나는 또 한번 스스로 자만에 빠져 자신이 성장했다 착각했고, 나는 너를 갉아먹지 못했다. 스스로 인정하지도 못했으며, 너를 진실있게 칭찬 한번 해주지를 못했다)
 
아아 그래 걱정했겠지. 안아파. 죽었는데 뭘. 없는 존재한테 잘지내냐는 말이 의미있는 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패스.
 
 
블레모어:(..아아,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는 네 모습, 지독하게 봐왔는지라 얼추 네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또한 알 수 있게
있겠더라)
 
너 아까부터 내가 말 할려다가 그냥 삼켰는데, 아무리봐도 내가 생각한게 맞는 것 같아서- (몸을 낮추어 너를 바라본다)
 
날 좋아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네 심정은 알겠는데, 지금보니까 그럼에도 나랑 같이 가겠다고 죽지않고 살아있는거 보니까 칭찬해주고 싶거든? 그 칭찬으로 네가 원하는거라도 해줄까 생각하고있는데 그 칭찬 스스로 잃지 않도록 해. 스스로 뒤지거나 해서 찾아오면 모른척 할거라고. 평생
 
아니마 리즈샤:선생님은 정말 언제 어디서든 선생님이시네요. 그런 점이 정말로, 정말로 좋아요, 선생님. 혹시 너무 아파서 괴롭거나, 그럴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리즈는 모르니까요.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요. (태초에 아무것도 없이 태어났거늘, 그런 자신에게 당신은 신이었고 그 자체였다. 뭐든지 줄 수 있을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랬을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은 그에 대한 또 다른 자비라고 생각하니 알 수 없는 기분이 몰려들어 왔다. 다른 세상의 나는 어땠나요? 거기의 선생님도 이곳의 선생님과 같아요? 아니면 끝끝내 원하는 바를 이루었나요? 선생님만 무사하다면 어느 쪽이던 상관없지만요. 닿지 않는 자신에게 그렇게 질문하고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돈한 채 같이 마주보고 쭈그려 앉아 시선을 맞췄다. 항상 올려다 봐야했던 나의 선생님. 왜 그렇게 좋았던걸까요? 만나는 순간 저 사람이 나의 전부가 될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저는 당신에게 온갖 사랑을 준다한들, 그것엔 후회가 없을거에요. 눈밑이 따갑고 찢어질 것 같지만 그럼에도 웃었다. 그것이 내가 잘하는 것이었고, 익숙한 버릇과도 같았으니까.)
 
선생님, 선생님은 저를... 그러니까, 단 한순간이라도... 좋아해주신 적이 있을까요?
 
(분명 아니라고 하겠지? 어줍잖게 소름돋는 소리하지 말라고 이마를 툭툭칠까? 그래도 한 번쯤은, 이렇게 마지막인 순간에는 물어보고 싶었다. 아니라고해도 오히려 그 쪽이 이해갔기에 타격을 없을 것이다. 결국 머뭇거리는 손을 조금 뻗어서 제 선생님의 머리카락을 조금 옆으로 넘겨 문질거렸다.)
 
 
아니마 리즈샤:저는 선생님을 사랑해요.
 
(그것도 지독하게요.)
 
블레모어:(또, 언제부터 들려오는 네 목소리에 뭔지 모를 고요함을 느낀다. 항상이고 쉬지않고 정신없이 살아갈 굴리와 모든것을 취할려는 머리속은 정리할려 한들 제 마음처럼 쉽게 되지않았으나 네 목소리를 들으면 차츰 고요해지는 듯 싶었다. 네 순진하고도 바보같음에 그저 나는 어이가 없어, 네가 내 생각을 흐린다고 너를 혼내기 바빴지만, 아니야, 너는 그저 나를 그렇게 만들 줄 아는 봄같은 아이였으니)
 
(머리카락 사이로 느껴지는 가늘하고도 따스한 손가락. 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애절하도록 저를 바라본다. 비록 현실이 아닐지연정 떨어지는 벚꽃잎을 바라보면 결국 언제나 너에게 떨어지듯, 만개하는 봄 안에서도 그 아무리 찬란하게 피어있는 벚꽃도 내 시선을 너에게서부터 가져가지 못했다. 여태 시선을 못옮기게 만든 네가 그저 눈에 가싯거리라며 핑계를 둘렀고, 매년 봄 마다 열리는 벚꽃나무를 구경하자는 너는 나무 위를 바라보고있었고 나는 꽃을 바라보는 너를 보고있었다)
 
만나고, 그렇게 같이 있다가, 내가 죽어서 겨우 만난 순간까지 어쩜 너는 멍청하게도 똑같은 말을 해? 멍청한건지 아니면 정말 그게 네 전부인지. 그건 죽어서도 모르겠네.
 
 
블레모어:(마다하지않고 네 손길을 받아드렸다. 지금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고도 늦었다는걸 알지만 아무도 없는 이곳, 체면따위 세울 이유 하나 없었고 비록 질척거리는 후회라 한들 지금 이 순간이 먼 후의 후회가 되지 않으면 좋겠다며 내 가치관, 살아오고 보았으며 믿어왔던 것들을 던져버리기로 했다. 마치 처음에 아무것도 없던 너처럼 나는 이제서야 한참 네 뒤를 밟기 시작한다)
 
내가 후회 할 시간 조차 네가 희생해서 가져가지 마. 이제 그럴 필요 없잖아? 그야 희생할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는데.
 
(제 머리를 쓸어내리는 네 손을 잡아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를 제 두손으로 훑었다. 안아달라고 했었던가, 천천히 네 손을 잡고 당겨 제 품에 너를 안아보았다. 처음 만났던 너는 작고 가련해서 스스로 걷는것 조차 어려워 했고, 그런 귀찮은 너를 아득이며 거칠게 안아 주워갔었나. 그런 기억이 있어 지금 부드럽게 그리고 묵직하게 들어오는 너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블레모어:...아주 작아서 툭 쳐도 부서질 것 만 같았는데, 몰랐던건 아니지만 내가 어지간이 누구 하나 잘 주워서 먹이고 키웠어 안그래?
 
(너는 나의 자만거리. 그리고 나는 지금 여태것 외면했던 너를 하나하나 자만할련다)
 
나? 몰라. 내가 그걸 어떻게 기억해?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는 모르-.. 는건 아니고 눈치는 깠지만야 아니, 몰라~. 기억 안나.
 
 
블레모어:(그렇게 너를 안아,토닥이듯 네 머리를 한없이 쓰다듬는다. 조금 더 일찍 머리를 쓰다듬을걸, 후회 하나가 더 늘어났다)
 
그니까 안다니까... 항상 알고 있는데 왜 매번 그렇게 좋다고 말하는지 이해 못해서 진절머리 나도록 짜증났었는데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아마, 네가 유일하게 원하는것이 있어 조르는 아이처럼 조르고 답없을 질문을 꾸준히 물어본것이겠지)
 
사랑하고 좋아하는게 무슨 감정인지는 몰라. 겉으로는 사회생활때문에 한때 아무 여자나 사귀어볼려고 했지만 여자쪽에서 원하는게 더럽게 많았으니까 짜증나더라고.
 
 
블레모어:생각해보니까 그 여자들도 너처럼 똑같은 말 했다? 사랑한다니 뭐니 하는데, 이미 매일 수없이 사랑하다고 매달리는 계집애는 하나로도 충분하다고 당연시 생각했어.
 
(네 긴 머리카락을 만지며 한쪽 어깨에 머리를 푹, 한껏 네 향기를 맡았다)
 
아아.. 이제 알것같은데 말이야. 나 좋다고 말하는 계집애 한명이면 충분하다고 말한거, 그냥 너한테도 똑같이 하지말라고 했으면 된것을 받은거 보면 아마 그냥 너에게 그딴 말 하지말라고 항복한 그날부터 아마 널 사랑이니 좋아했다니 한거 아닐까. 미안하게도 선생님은 생각보다 더럽게 멍청이였거든, 살아있을때 말할려고 했다가 애새끼마냥 창피하다고 결국 죽어서 이 지랄 하지만서도...
 
 
블레모어:(여전히 네 어깨에 파고들어 중얼거렸다. 그래 아마 나는 너를 한순간이 아닌 꾸준한 시간동안 사랑했으나 애석하게도 자신은 멍청했기에)
 
아니마 리즈샤:(당신이 어떤 사람을 만나든, 무슨 여자를 만나든 나는 너무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질투를 했으면 했지, 억지로 갈라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고 그건 내가 그런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분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질책할 처지가 되지도, 같은 곳이 아니라 항상 뒤에서 쫒아가기 바빴으니까. 본래는 내가 매달려야 했는데, 좀 더 힘내야했고, 애써야 했는데. 어색하게 등을 두드리고 기어이 눈물이 여기저기 터져버려 차마 말도 하지 못할 정도로 목이 먹먹했다.)
 
타인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나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눈 앞에 있고 그걸 이해했을 때... 그건, 정말로 사랑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이것 또한 나만이 이해할 가치관이었다. 겨우 사랑한다고 들은 대답을 저것으로 돌려주는건 또 무슨 어이없는 상황이냐고 하겠지만 평생 고대하고 기다리던 대답을 막상 들으니 익숙하지 않아서, 거짓말같아서. 그럼 그런거네요? 저희는 서로 사랑하고 있어요. 그건 정말 근사한 일이고요. 말을 하는 내내 먹먹하고 삑소리가 났지만 웃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내 모든 것을 줘도 아깝지 않고, 심장을 달라면 네! 라고 하며 줬을거다. 의심은 단 한 톨도 없이, 어떻게 보면 순수하지만 너무 지독해서 상대가 질릴 정도로. 아, 이제 정말 시간이다. 그렇게 본능적으로 느꼈는지 네 등을 계속 계속 토닥이며 어루어 만졌고 귓가에 속삭였다.)
 
 
아니마 리즈샤:선생님, 부탁이 있어요. 부디 다음에도... 가능하다면 저를,
 
블레모어:부탁같은거 안들어.
 
(만약 이어갈 말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이번에는 내가 다음에도 후회하지 않도록)
 
다음에는 살아서 사랑하다고 먼저 할게.
 
 
블레모어:(작게 너에게 읊었으나 진심이였다. 지금은 맞추지 못할 네 입에서는 더 이상 부탁이 나오지 않길 바래, 부탁보다는 그저 원하는 것, 그리고 나는 그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참 좋았을련만, 혼잣말을 읊으며 네 볼에 입을 맞춘다. 맛보았던 나의 봄은 마지막까지 씁쓸해서 다행이다 싶었어)
 
아니마 리즈샤:하하... 그래도 들어주세요. 그리고 그 말, 꼭 지켜주기에요?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약속이에요.
 
그렇게 말한 리즈샤는 당신의 품에서
 
천천히,
 
바스라지듯,
 
꽃잎이 되어 블레모어의 앞에서 작은 재 한 줌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니마 리즈샤:언제라도 저를 다시 한 번 주워주세요.
 
그리고 눈 앞이 점점 흐려지더니 자신도 쓰러지고 맙니다.
 
그러자 블레모어는 어두컴컴하고 좁은 곳에서 다시 눈을 뜹니다.
 
방이 꽉 막혀 있어서 갑갑하고
 
움직이는 것조차 매우 불편합니다.
 
있는 힘껏 몸무림을 치자 일순 벽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는 듯 하더니
 
다급한 인기척이 다가옵니다.
 
블레모어가 눈을 뜬 장소는 나무로 짠 관의 내부입니다.
 
블레모어의 죽음을 애도하며 모여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깊게 판 땅 밑에 그가 누운 관을 내려놓고,
 
이제 막 매장이 이루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몸부림을 가장 먼저 알아채고 마치,
 
마치 익숙한,
 
어느 날의 부분처럼,
 
허겁지겁 뛰어가 관을 열려고 애쓴 사람은 바로
 
리즈샤였습니다.
 
얼핏 본 그 얼굴은 웃음은 커녕
 
매달리듯 눈물 범벅이었던 듯 합니다.
 
급히 구급차를 부르고,
 
되살아난 블레모어는 병원으로 옮겨집니다.
 
블레모어가 구덩이에서 나와 땅 위로 올라왔을 때는
 
부드러운 빛의 하늘에 맑은 햇살이 가득합니다.
 
문득 묘지 부근에 가득 심어둔 벚나무가 눈에 들어옵니다.
 
며칠간 내린 봄비에 벚꽃은 모두 지고,
 
가지에 드문드문 돋아난 새잎은 깨끗한 연둣빛입니다.
 
꽃이지고, 새잎이 나고, 빨갛게 물들며, 결국엔 저버릴 지라도,
 
봄은 돌아올겁니다.
 
실제로 그러지 않았습니까?
 
아이, 참. 또 무슨 말을.
 
만약,
 
당신이 그 약속을 기억한다면,
 
꼭 말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제부터,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삽시다.
 
부디,
 
안녕히 돌아가세요.
 
ED 1. 귀환(歸還)
 
블레모어, 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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