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C
작성일
2022. 9. 8. 08:52
작성자
굔정뱅이

2022.07.01 [토마카구] 자립법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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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few years later…
 
 
 ‧̍̊˙· 𓆝.° 。˚𓆛˚。 °.𓆞 ·˙‧̍̊ 
 
꽃1
 
COC 7th fanmade scenario
 
하지만 잊지 마세요.
 
이 이야기는,당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시나리오 타이포
 
ㅤW. 녹차라떼얼음조금ㅤ
 
KPC 스미레코 카구야
 
PC 토마 타쿠미
 
2022. 7. 1 PM 4:40 ~
 
꽃2
 
 ‧̍̊˙· 𓆝.° 。˚𓆛˚。 °.𓆞 ·˙‧̍̊ 
 
 
그를 잃은 지 벌써 5년째.
 
사실, 그보다 더 되었을 수도, 덜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생의 시계가 제멋대로 멈추어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시간과 날짜의 개념이 제대로 서지 않은지 꽤 되었으니까요.
 
당신은 그저 어떻게든 그가 쥐여 준 생을 움켜쥐고,
 
실낱같은 호흡만을 이어가고만 있을 뿐입니다.
 
그저 살아 있기에 살아갈 뿐인 삶.
 
오전 11시.
 
토마,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나요?
 
토마 타쿠미:(한참 굽혀있던 허리를 풀고 고개를 올려보면 시계는 오전 11시를 향해있다. 그저, 몸 상태와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관계로 그나마 이어가던 일상 스케줄에 큰 차질이 생겨 무엇을 해야할지 방황하던 시간이 지난이 어언 몇주가 지났을까.
 
얼마나 시간이 지났던, 지금은 오전 11시. 그뿐이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꽤나 한 자세로 오랫동안 있었던 덕에 무릎이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눈이 침침한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 시간까지 잤었구나, 눈가를 비비적 거리면 살이 아물시간도 없이 쓸렸는지 따가웠다.)
 
… …. 먹어야 겠지.
 
(일어서면, 발 디딜곳을 찾아 제 몸을 움직였다. 집안은 어질러있었으나 웃기게도 더럽지는 않았다. 그야, 제가 먹고 자야할 집이었으니 청결만을 유지했지만 어질러진것을 그대로 유지했을 뿐. 그렇게 발을 디디며 냉장고 안에 들어서면, 포장하나 까지 않은 온갓 먹을것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보자기에 예쁘게 쌓인 저것은 아마, 어머니를 만났을 적 먹으라 챙겨주신 반찬, 그리고 이것은 네 부모님이 챙겨주신 먹거리, 그 외 이런 꼬라지에도 트레이너가 챙겨준 식단들이라던지. 감사한 분들이다)
 
 
 
토마 타쿠미:(반찬을 꺼내먹는것도 일이라, 상했을지도 모를 부모님이 챙겨주신 음식을 뒤로하고, 포장되어있는 편의점 도시락을 꺼냈다. 뚜껑을 개봉하고 비닐을 까며, 전자레인지의 몇분을 돌리자면 또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이미 음식이 다 데워졌다는 알림은 삑삑거리다 꺼진지 10분은 지났을련정, 그저 전자레인지를 한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5분이 더 지나고 나서야 전자레인지에서 음식을 꺼내면, 여전히 미묘하게 따스한 음식을 꺼내 테이블에 놓고 앉으며 내용물을 두어번 씹었다. 삼키고, 다시 입에 넣는것을 한두번 반복하고 나면, 이상하게도 전혀 줄어들지 않는 도시락을 보다, 그대로 일어나 쓰레기통에 용기체 버렸을까)
 
 ˚𓆛。 듣기 판정입니다. ˚𓆛。 
 
토마 타쿠미: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평소와 같은 일과… 를,
 
보내고 있던 당신의 귀에,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 립니다.
 
띡, 띡, 띠리릭.
 
누구죠?
 
이 시간에 당신의 집을.
 
그것도 저렇게 자연스럽게 문을 딸 수 있는 사람이 있었나요?
 
스미레코 카구야:...후훗. 집안 꼴이 이게 뭐에요…~?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서는,
 
그보다도 익숙한 목소리와 당신의 눈 앞에 서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분명, 죽었잖아요.
 
있을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한 당신,
 
 ˚𓆛˚。 이성 판정입니다. ˚𓆛˚。 
 
토마 타쿠미:
SAN Roll
기준치: 20/10/4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합니다.
 
당신이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집 안을 둘러보며 의미 모를 얼굴로 웃습니다.
 
… 하긴.
 
저 아이는 항상 그랬으니까요.
 
게다가 당신도 그가 죽은 이후로 꽤 오래 버텨왔지만
 
그 마저도 이번에 들어선 자신에게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도 그러했는데 집은 오죽했을까요?
 
새삼 엉망인 집이 눈에 들어옵니다.
 
 외에도 음식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는 소파
 
먼지와 머리카락, 위험한 파편이 굴러다니는 바닥
 
잡다한 물건들이 쌓인 서랍장 위,
 
마찬가지로 엉망인 테이블 이라거나… 말 이죠.
 
그는 겉옷을 벗어두고,
 
소매를 걷어붙입니다.
 
스미레코 카구야:정말이지이... 안되겠네요~… 흐흐... 역시 청소부터 해요, 선배?
 
아니아니, 잠시만요.
 
뭐가 ...
 
“ 역시 청소부터 해요. ”
 
인가요?
 
그보다 중요한 것들이 잔뜩입니다.
 
대체 왜 그가 자신의 앞에 서 있냐거나,
 
그간은 뭘 했냐거나.
 
하여간.
 
궁금한 것이 많지 않나요?
 
토마 타쿠미:(지극히, 현실주의적인 사람이다. 나란 사람은. 잘 알고있다. 그래서, 네가 죽었음에도 겨우 현실적이지 않은 바램은 하지 않았다.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는 상상 따위, 스스로를 갉아먹고 아프게할 뿐이었다. 그것을 외면했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은 달라지지 않던가, 현실적인 자신도 결국 그런 얄팍한 희망에 네가 찾아오는 꿈을 몇번 꾸었으리라. 현실적인 나는, 그 꿈을 ‘악몽’이라 불렀다.
 
네가 무엇을 말하던, 도어락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네 목소리는 하나도 듣지 않았다. 이상하지, 그렇게 바라고도 다시 한번만이라도 들어볼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는 심정이 가득했을텐데.
 
주춤하고 발이 떨어지지 않을 줄 알았다. 내 눈앞의 너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줄 알았다. 그러나 몸은 꽤나 빠르고 민첩하게 온갓의 것을 밟으며 너에게 뛰어갔고, 네 손목을 그리 잡았다. 으스러질 정도로 잡았을지 모르나 오랜시간동안 활도잡지 못한 손인지라 힘조절하는법을 까먹었지. 그저, 몸이 먼저 반응한 그것은 아마 파악하기도 전에 앞의 것이 도망갈까 싶어 본능적으로 나온 행동이었으리라.
 
짧은 거리인지라, 오랜만에 격하게 움직였음에도 숨이 차지 않았으나, 어째서인지 헐떡이고 있었다. 과호흡이라도 온건지 손은 파릇하게 떨렸고 흐릿해진지 오래인 동공은 그나마 앞의 너를 담으려 한없이 흔들거렸다. 두 손으로 네 손을 다 잡고 나서야)
 
…..카구야.
 
(얼마만에 네 이름을 불렀을까. 스스로 봉인했을 네 이름이리라.
 
 
토마 타쿠미:반갑지 않았다. 네 얼굴을 봐서 기쁘지 않았고, 목소리를 들어 반갑지 않았고, 잡혀지는 네가 달갑지 않았다. 여전히 현실주의적인 자신은, 부정도 아닌 대부분이 내릴 판단력을 읊조렸다)
 
내가 드디어 미쳤구나. 카구야. 그래, 미칠때도 됐구나. ...
 
(다시끔 꾸고 있는 악몽인지, 현실인지 이제는 구분조차 못하는 자신이라 생각하고 나면, 새삼 한없이 망가진 자신이 불쌍했는지, 네 손을 잡고 고개를 떨구며 마를 틈 없는 눈물은 다시 제 볼을 타고든다. 여전히, 아물시간도 없는 눈가는 눈물이 닿자 다시끔 따갑고 붉게 올라왔다. 너는 여기 없고, 나는 결국 미친것이구나)
 
스미레코 카구야:네. 선배의 카구야에요. (힘을 주어 잡았는지, 혹은 아니었는지 어찌됐든 좋을 정도로, 그것은 사소해서 신경도 안쓰일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은 대답부터 자연스레 튀어 나왔다. 예상은 했다지만 무엇을 상상하고 예측했던간에 제 선배는 온전치 못한 성 싶었다. 어쩔 수 없지. 공백이란 시간동안 자신은 멈춰 있었으므로. 꽤 짧고도 긴 여백이었으나 그렇다고해서 자신이 제 선배를 모를리 없어서 감히 제대로 된 몰골도 못한 사람에게 위로와 공감, 다독여 주는 행위보다는 현실에서 일어났고 지금 필요한 해답을 내놓은 것을 선택했다. 상대가 당신이었으니.)
 
후후... 할로윈데이의 전설을 아시나요? 아시겠죠? 죽은 사람이 돌아와준다는 그런 하루 말이에요. (저와 어울리는 전설이지 않은가.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자신이 말하는 것이니 지독하게 현실을 보는 선배라도 신빙성 있게 그래, 그렇구나, 하며 어느 정도 납득은 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렴, 그러거나 말거나 이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실이고 현실인데 누가 무어라 할까.)
 
그런데, 아쉬워라. 얼굴을 보니 반가워 해주지 않는 모양이에요...~ 그냥... 안보는 사이에 많이, 많이... 울보가 되셨네요. 만지지 말아요. 아프겠다. 선배.
 
토마 타쿠미:…아아. 그래 할로윈. 그래, 참 잘 어울리는,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미쳐가는 자신이 불쌍해서 헛웃음이 다나왔나. 울다가 웃기를 반복하고 반쯤 이상 듣고 이해하지 못한 네 말에 추임새만 맞추듯 네가 뱉은 몇 단어를 중얼거렸다. 웃기게도, 정말 네 말 그대로, 눈가를 닦아보니 한참 붓고 터질듯해 닦을때마다 베이듯 아파왔다)
 
…그게 아니잖아. 미쳤어도 곱게 미쳐야지. 별 이상한 말을 다 하는군. 그딴 전설 따위 뭐든 상관없잖아.
 
(스스로에게 뱉는 말이었다. 미쳤다면 차라리 듣고싶은 말이라도 미친만큼 상상했으면 좋을련만, 별 의미없는 말만 하는 네가 꽤나 미웠다. 아니, 내가 밉다고 해야겠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하지. 내 부모님이고 네 부모님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참으로 좋아하시겠군, 혼자 중얼거리고 무엇이 그리 잡고싶어서 허공을 쥐어잡으며 우는 꼴이라니.
 
진심으로, 정말 내가 미치고 말았구나를 인지한것은 그럼에도 질문할려 입을 여는 자신이었다. 물어보고 그때 너만 일방적으로 내던진 영원한 헤어짐에 화도 많이났고 의문도 많았는데 있지도 않은것에 물어봤자 들려오는 답은 자신이 만든 허상이 아니면 무엇일까. 잘 알고 있음에도 자신이 생각하는것과 조금과는 다른 답이 들어온다면 그렇담 그것이야 말로 진실되게 네가 내 앞에 나타난건 아닐까 싶어. 이 상황에도 미쳐간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고 합리적으로 생각했다)
 
카구야. 윽….
 
토마 타쿠미:(이제와서 너에게 말을 걸자니, 목이 잠기듯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합리적이여서 나름 물어볼것을 머리속에 중얼거리고 고작 밖으로 내뱉으면 다인 말이 눈물에 잠겨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오랜기간동안 외면하고 살아왔던 너를 향한 원망스러움이 한없이 커졌을까. 언제 네가 사라지고 내가 다시 제정신을 찾아서 고개를 들면 네가 없을까, 그렇게 눈에 담고싶은 너를 아까워서 차마 보지 못하고 무릎 꿇며 잡은 두 손에 제 눈가를 기대었다. 목놓아 운다는것이 이런것인가 싶어, 막히는 숨통 사이로 숨을 들이킬려 했던것은 지쳐 고통에 울부짖는 남자의 목소리가 서글프게 끊기며 흘러내렸다)
 
아, 큭- 아아… 흐윽. 끅. 아. 윽-
 
(절규하듯, 합리적이게 정리한 질문들은 한참 잊은지 오래, 그저 제 머리속에 가득찬 울분만이 터져나왔다)
 
왜 찾아온거지. 왜. 언제까지, 얼마나 지나서도 너는 나에게 잔인할 생각인거야. 나를 어떻게 할 생각으로 찾아온거지. 왜, 네가 와달라고 부탁한적 없다. 있었다면 네가 떠나간 그날에 간절하게 바랬을뿐, 왜 이제와서 모든것이 망가진 나를 비웃고 싶어 찾아 왔나?
 
스미레코 카구야:...하지만. (그래, 이럴 줄도 알았다. 그저 자신의 희망사항대로였다면 차라리 더 나았을 정도로 단 한치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반응과 수긍에 입 안이 쓰다 못해 웃음이 나왔다. 물기 하나 없어 소리도 나지 않는 그런 마른 웃음이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이것은 필시, 살아생전 변함없는 나의,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버릇이리라.) ...하지만, 단 하루에요. 이런 저라도 그런 전설처럼 고작해야 단 하루. 저는 죽었으니까. 네, 맞아요. 미움받을대로 받을만큼 원망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네요. 그런 저에게 찾아온... 아주아주 우연찮게 얻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주시면... 안될까요? (나는, 자신은, 당신에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시험하고 있는걸까. 분명 아님에도 불과하고 자칫 잘못하면 말하는 모든 것들이 의미를 잃을 수 있음에 탄복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었다. 우리의 인생이 행복함에 찌들어 그 위를 찌를 때, 어쩌면 그 전부터 알아버렸다. 알고서도 그것을 받아준 것은 자신이었는데 모를 수 있을까. 스스로도 그렇지만 당신은 정말 내가 없으면 안되노라고. 그렇기에 말 한 번, 행동 한 번이 꼴 같지도 않고 같잖은 죄책감에 물들어 푹 젖은 솜 같았다.)
 
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여기를 올까... 말까,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으니까 그럴거면 차라리 부모님한테 가볼까, 그런데 이상하죠? 선배가 남은 생을 너무... 너무, 너무나도 허망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 같아서. 제가 감히 그런 생각으로 넘겨 짚어서. 그래서 저 하나 없다고 모든 인생을 망쳐버리기에는... ...그러기에는, 남은 삶이 너무 안타깝고 아까워서. (아주 많은 생각을 하고 당돌한 곳이 이곳이었다. 단순히 우리가 살아생전 연인이라거나 좋아 죽는 것만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모든 걸 다 생각하고 온 걸음이었다. 목적을 말하라고 한다면 있다. 있었다. 다만 이 또한 당신에게 잔인하기 짝이 없는 말이 될텐데 지금 여기서 어떻게 꺼낼지, 죽으나 사나. 혹은 살아돌아왔으나 제 선배 걱정이 먼저였다. 위로는 커녕 제 감정 하나 간수하기 힘든데 누가 누굴 보듬어준단 말인가. 그만 울라고, 아프다고, 그 한마디로 감당하기엔 너무 커서 기껏 한 일이라곤 소리 한 번, 기척 한 번 없이 네게 기대는 것 뿐이더라.)
 
그래도 저는 보고 싶었어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 눈 떠보니까 현실이었어요. 저는, 보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찾아 왔어요. 선배는 그렇다해도 저는... 보고 싶어서 왔어. 나 좀 반겨주면 안될까요.
 
토마 타쿠미:나도.
 
나는 안보고 싶어서-
 
아.
 
(결국, 네 눈과 내 눈의 시선이 같은곳을 닿고야 만다. 서로를 바라보는것을 보면 아마 네 말에 순간 저도 울컥하고 분노아닌 분노에 휩쓸려 사라질까 보지못한 너를 고개들어 보게 만드는구나. 기꺼이 너는, 나를 이리 만드는구나. 무릎꿇던 두 다리는 쓸리듯 급하게 일어나 네 양쪽 두 팔뚝을 파고들듯 잡았다. 원망이 가득쌓인 눈으로, 이미 터질때로 터져버린 눈물샘은 여전히 힘차게 볼을 흘리며 한마디 한마디 터져나갈때마다 두 손은 너를 흔들고 고개는 집요하게 너를 향해 다가갔다)
 
나라고 안보고 싶은 줄, 그래. 그래, 젠장 그래. 아아 그래, 감히 내가, 내가 감히. 감히 말하는데, 여기서 누구보다 죽고싶을 정도로 널 보고싶은건 나야. 나라고. 네가 아니라 나다. 너는 나를 찾아올 선택지가 주어졌지만 지금의 나는 너를 다시 떠나야한다는 선택지만이 남아있어. 너는 나를 찾아왔지만 나는 다시한번 너를 떠나보내야 한단 말이다. 그것에, 그것에 내가.. 내가 어떡해 누구보다, 누구보다 내 목에 칼을 들이내밀 정도로 보고싶었던 너를 반가워 할 수 있지?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나는 또 다시 내일이면 너를-.
 
아.
 
토마 타쿠미:아아..
 
(앓는 소리가 다났다. 말을 한없이 뱉자하니 무엇이 의미있는가 싶어. 그렇게 너를 바라보았다. 동그랗게 떠진 눈은 한없이 흔들렸고, 입안에는 안타까운 감탄사만이 연신 흘러나왔다)
 
………………….내가.
 
…누구보다.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너를.. 다시끔 이리 만지고 싶었는데.
 
…어떻게 다시 떠나보내야하는것을 아는 상태에서 너를 내가-
 
토마 타쿠미:(반겨줄 수 있겠어)
 
(.... 그래. 네 말이 다 맞았다. 네가 원하는것이 있다면, 지독하고 병적으로 사랑하고 있는 그녀가 원하는것이 있으면 그때 해주지 못한 후회가 더 커지지 않도록 너를 다시한번 만났음에 반가워하고 고마워하며 이 시간을 소중히 해야하는데, 아무리 잘해준다 한들. 결국 이 날은 또다시 나에게 그날처럼 커다란 후회가 될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면, 너를 힘차게 안고 있었다. 키차이가 꽤나 나는 우리들은, 이렇게 너를 힘껏 안을 때에는 너는 지상에 살짝 떨어져 발끝만이 겨우 땅에 닿고 있었고 그 순간은 중력도 무엇도 아닌 내 몸에만 의지하더라.
 
너를 안은것은, 다른의미 없었다. 너를 안고싶어서? 아니야. 사실, 지금 이 순간 너를 만지는 것 조차 저에게는 고문이었다. 손을 잡고 있는게 최선이었다. 너를 더 이상 닿고싶지 않았다. 너와 조금더 시간을 지내는 순간 그 후회는 배가 되며 아마 나의 미래는 이보다 더 참담하리라.
 
내가 너를 안은 이유는 얼굴을 보이기 싫어서, 그리고 야속하고 스스로에게 잔인하고 위로해주고싶을 정도로, 합리적인 머리는 결국 네 말에 수긍해버렸기 때문이다. 너의 심정을 어느정도 이해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잠깐만의 거짓말과 네 환상에 어울려주면 되는것이다. 그것만 들키지 않는다면, 너를 위해 반갑다고 거짓말 해주리라 생각했고, 그 깨달음에 남자는 너를 위해서도 아닌 자신 스스로가 그저 한없이 불쌍하고 비참해 다시 목놓아 울었다)
 
….보고싶었다 카구야. 보고싶었다. 무척이나, 애절하게. 불러보고싶었다.
 
토마 타쿠미:찾아와줘서-
 
..찾아와줘서.
 
(입술을 잘근 물었지만 피가나면 거짓말이 들통날까 입안까지 힘을 조절하며 울분을 표출하지 못하고 그리 파릇 떨었다. 목이 잠긴것을 고치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절대 진심아닌, 죽어도 내뱉고 싶지 않았던, 하지만 수긍해버리고 말아 내뱉을수밖에 없는 자해와도 같은 말을.)
 
찾아와줘서 고맙다.
 
스미레코 카구야:네. 맞아요. 다 맞아요. 전부 맞는 말이에요. 선배는 항상 맞는 말만 하니까. 맞는데, (그래도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어. 자신에게 있어서 사치스럽다 못해 그저 같잖은 절절함을 끝까지 내뱉지도 못했던건 다른 이유도 아닌 제 탓이었다. 자기보다 더 아프고 슬픈 사람이 있으면 자신은 덜 아프고 덜 슬플 줄 알았건만,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지. 자격없는 자가 무엇이 그리 잘났다고 끝내 울음을 터트렸으니 끝맺을 말도 없었다. 그 때부터 저는 당신에게 있어서 아픔과 고통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군요. 어느 것 하나 모르지 않았던 것이 없는데 끝내는 찾아온 이 모든게 사실이자 현실이다. 현실은 정말이지 지독한 삶의 연속이므로. 적어도 자신은 그 힘겨운 삶에 익숙해졌지만 익숙해 지지 않은 사람은? 말로 다 하지 못할 정도겠지. 선배는 똑똑하잖아요, 저를 잘 알고. 그럼 반대로도 말이에요? 나도 선배를 아주 잘 아는데. 바란 사람은 자신이면서 가소롭게도 그 속내를 짐작해버렸기에 가여웠다. 스스로를 위해 스스로가 안타까워할 권리가 아주 조금이라도 있다면 당신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안타깝게 여겨주었다. 결국 자신을 위할 수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니까. 살아서도 힘들었는데 죽고 나서도 이렇게까지 박복할 줄이야.)
 
죄송해요. 고마워요. 보고 싶었어요. (아는데도, 아는데도. 말만이라도 기쁜건 어쩔 수 없어서 그걸 선택했다면 나 또한 거기에 어울려줘야 하겠지. 예나 지금이나 제 사람이라면 껌벅 죽어 기어이 자신을 숙여가며 상대에게 맞춰주는건 그 시간 그대로였다. 달라진건 허상으로 보내온 세월일 뿐. 괜히 어색하게 안아본 팔이 지독할 정도로 익숙하면서도 반가웠다. 이게 이 시간의 시작이라면, 그렇다면 끝까지 맞추자. 서로 뻔히 아는 거짓말을 몸에 둘둘 감아 탑을 세우고 그 위에서 사교 파티 마냥 춤을 추자. 선배는, 당신은 어떨지 몰라도 이쪽은 보고 싶었던게 맞긴하니까.)
 
어쩌다가 온 이런 기회를 그냥... 보낼 순 없어서요. 그래서, 음, 응. 그래서, 준비를 하려고...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지저분하다 못해 널부러진 집을 지적하고 자연스레 주제를 돌렸었다. 당연하게도 원하는대로는 되지 않아서 이러고 있는걸테지만.) 선배가... 홀로 잘 살 수 있게 준비를 도와주려고.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제대로 챙겨먹고, 그렇게 하려고. 짧은 시간을 그렇게라도 써보려고... 이렇게... ...으... 그래서, 흐, 윽... (속없는 후배로 있고 싶었는데. 세상만사 정말 제 마음대로 되는게 없었다. 어쩜 이리 단 한 번도 저를 그냥 넘어가게 두지를 않는건지 모르겠어. 어디까지 이야기 했더라. 내가 어느 부분까지 꺼냈지. 사람은 죽는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순리이며 그 중간에 가까운 사람이 저였는데 순간이나마 후회했다. 나는 왜, 어째서 죽었지. 제 죽음에 대한 원인에 대해 원망하지는 않지만 아주 약간 후회는 있던 모양인지 알고 있는 현실은 괜스레 억울하게 다가왔다. 틈새로 세어나오던 것을 참을 재간이나 있던가. 어떻게보면 죽어버린 본인이 가장 억울해야 마땅한게 당연한 순리이지 않을까. 그 합리화와 가소로움이 한데 뭉쳐 두 손에 옷을 꾹 쥐고 어깨 위로 숨죽여 울었다. 너무 힘들다, 너무. 죽어서도 자신은 이렇게 아등바등 해야만 하는 존재로구나.)
 
토마 타쿠미:(서로에게 상처주고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멍청이는 아닌 자신이어서, 아마 너도 그렇겠다만 어느순간 정반대인 세상에 있어도 모자랄 사람이 감히 사랑과 감정을 나누니 이렇게 타들어가고 진 빠지도록 힘없는것이 저 둘이구나. 생각했다. 세상은 언제나 제 뜻대로 돌아가서 죽을만큼 행복했고, 네가 떠났음에도 세상은 큰 어려움없이 저를 중심으로 돌아갔지만 이미 세상을 너로 둔 남자로써 다른것이 잘만 돌아간다 한들 흐지부지함 뿐이었지.
 
나는 이렇게 울고 있음에도 너는 울지 않길 바랬다. 내가 아팠기에. 단순 내 감정에 흠이 가는것이 싫어 바란것이 아닌, 네 아픔과 고통, 죽음 모든것이 나와 동해있기에 그리 간절하게 바랬다. 육신이 죽어버린것은 너였으나 그 날 죽어버린 사람은 너뿐만이아니라, 관짝에 자신또한 누웠어야 했었다.
 
너의 눈물은 나의것이었고 너의 아픔은 나의것이었다. 애초에 너의 만남은 내가 너를 가져가겠다는 책임감에 이루어졌던 모든 약속들의 연속이었고, 육신없이 찾아온 네 창백함또한, 제 죽음과 헤어짐또한 온전히 자신의 책임감이고 자신의 것이었다.
 
눈물이 고이는것이 얼마나 아픈지를 잘 알았기에, 너를 더 힘차게 안으며 제 허리를 안으로 굽으며 너를 위로 보게 하였다. 눈물이 잘만 흐를 수 있도록, 그리고 너를 제 안에 가두며, 흔해빠진 듣보잡 소설속에서나 나올법한 표현을 빌리자면, 그래. 네가 그냥 내 안에 그렇게 들어가길 바랬다. 마치 힘껏 안으며 제 육신에 들어올수 있으리라 믿는지 한참을 강하게 안으며, 한손에 잘만 들어오는 그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서로를 잘 알아서 좋을것이 없구나. 둘이 서로를 이만큼 알지 않았다면 서로의 뜻을 차마 헤아리지 못해 화내고 욕보였을텐데, 공감과 이해는 이리 잔인하고 아프구나. 너를 잘 아는 나는 너에게 충분히 울 시간을 주며 네가 하다 만 문장을 이어갔다)
 
…그래. 집안 꼬라지가 말이 아니지. 내 성격에 집안을 이 꼴로 냅둔것이 어이가 없겠어. 정리할것이 많아. 발을 조심하도록 해. 한두번 베어본적이 아니라. 이렇게 지저분 해서는 어디서 시작해야할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노력해볼까. 그야. 네 말대로, 내가 홀로 잘.
 
토마 타쿠미:홀로.
 
..너 없이 혼자- 살. 수- ……큭……….. 으흑, 아. 큭-
 
…..흑, 윽, 아- 아아아아-...
 
(..... 못하겠어. 못할것같았다. 알고 있어, 머리로는 이미 결정난 사항이다. 나는 혼자 살지 못해. 네가 세상에 없는데 내가 할줄 아는것과의 별개로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이 무슨 소용이 있는거지? 결국 오늘의 하루는, 네가 찾아온 이 잔인한 시간은 결국 서로를 향한 거짓말을 하기 위한 시간이었구나. 참으로 비참하지, 마지막으로 만난 두 연인이 고작하는것은 사랑한다 마지 못했던 말들을 읊조리는 애뜻한 시간이 아닌 누구를 위한지도 이제는 모를 들통나버린 거짓말이라니.
 
제발, 그만 터져나와. 부탁한다 토마 타쿠미. 여기서 더 이상 감정을 쏟아 부어 버리다가는 이미 죽어버린 그녀가 망가지고 만다. 들통났음에도 나는 여기서 괜찮은 척을 하고, 네가 그것을 하지 못하면 선배인 노릇을 해줘야 하는것이 맞는데, 창피하기 그지없어. 너는 최악이다. 이래놓고 여태 책임감이라는 말을 빌고 살아온건가. 최악의 남자를 사랑하는구나 너는. 과분한 여자를 사랑하는구나 나는)
 
그만, 그만해. 괜찮아, 다 괜찮아. 해볼게. 할테니까 이 이상으로 슬퍼하지 않기로 하자.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대신 정리하는것을 도와주겠나? 시간이 얼마 없지. 그러니까 괜찮다. 괜찮으니 조금만 도와줘. 충분히 한다면 하는 남자다. 알고 있지 않아? 그걸 잊어버린건 아니겠지 카구야. 괜찮다. 그만해. 그만. 괜찮아.
 
토마 타쿠미:(몇번이고 네 뒷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달래는것이 서툴었음을 이 나이가 되서야 알아버리고 말았구나. 괜찮다며 그만하다는 말을 저도 울면서 내뱉는 말이라니. 누가 누구를 감히 위로하는가 싶어, 말로만 한없이 반복했다)
 
괜찮아. 괜찮아. 그만해 카구야. 그만하도록 해.
 
(그리 한참 너를 쓰다듬다, 양쪽이고 눈물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저 천천히 너를 떨어뜨리며 얼굴을 마주했다. 내 눈물을 닦기도 바쁜데 제 소매로 네 눈물을 닦아보이며, 아직 엉망진창인 얼굴로 너를 보며 쓰게 웃었다. 억지로 웃는것을 다 알고 있겠다만, 나도 네 거짓말을 잘만 알고 있으니 피차일반이라 생각하자)
 
…… 내가 울보가 된건 사실이다만, 너도 이제는 읽혀도 너무 쉽게 읽히는 여자가 되어버렸군.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말 그대로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다. 소파부터 치우는것으로 할까? 그 꼴로는 나 혼자 치우는게 훨씬 쉽겠어 카구야.
 
(너에게 닿고있는것이 여전히 괴로워 어쩌면 너를 놓아주고는 네 눈물로 젖어 소용없는 소매로 제 볼을 닦으며, 괜시리 먼저 몸을 돌려 소파를 향해 걸어갔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어쩔 수 없어요, 당신.
 
받아들여야죠.
 
사실 누구보다 잘 알겠지만요.
 
refinement:▶ 새삼스럽게, 당신이 아는 그 모습의 카구야입니다.
 
정말 이제와서지만 달라진 점이라거나, 그런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옷차림 정도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깔끔하고 간단한 한 벌 옷이지만 어쩐지 상복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옷 정도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니까요.
 
아닌가요? :)
 
refinement:▶ 그리고 쇼파는 깨끗한 것 같지만 어쩐지 뭔가, 지저분해 보이는 소파입니다.
 
그는 잠시간 보더니, 제 얼굴을 훔치고 애써 멀리 있는 청소기까지 뽑아와 차분히 정리하기 시작합 니다.
 
청소보다는 아무래도 본인을 위해서겠지요.
 
어? 잠시만, 저건…
 
 ˚𓆛˚。 관찰 판정입니다. ˚𓆛˚。 
 
 
토마 타쿠미:
관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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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refinement:▶ 저건… 뭉쳐진 처방전과 약입니다.
 
이런.
 
그렇지 않아도 꼴이 엉망인데, 이것까지 들킬 일이 있나요?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꼼꼼히 청소중인 그가 저것을 발견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토마 타쿠미:(순간 빠르게 처방전과 약을 쥐어보았으나, 한순간의 의문이 들었다. 숨긴다고 해도 네가 기억하는것은 어디까지인가.그만하라고 한것도 자신이다. 괜찮다고 한것도 자신이다. 어차피 죽어버려 앞으로의 네가 어떻게 살아갈지, 네가 흔히 보던 귀신처럼 세상을 돌고 내 주위를 맴도는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잠시나마 살아난 육신의 기억이 없어질지.
 
빠르게 쥐어본것과는 다르게, 이상하게도. 네가 이기적인걸까. 아니면 인간의 마음이 어떤 한 공간에 도달하면 이기적인것 조차 의미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걸까. 네가 보면 슬퍼하겠구나 보단 이젠 정말 이런것도 의미가 없겠구나 싶어)
 
…지저분하지 카구야. 미안하다. 미련이라는것이 참 사람을 이렇게 만들더군. 고작 와서 한다는것이 청소하는데에 가담하게 한다니. 그래도, 네 덕분에 깨끗해지겠구나 이젠.
 
(그것을 빠르게 치우지 않고 한없이 상표를 매만지며 바라보다, 끝말을 중얼거리더니 그대로 제가 가져온 비닐 봉지 안에 버리고 청소를 이어갔다)
 
스미레코 카구야:...선배 원래 잠 못자고 그랬던 것 같은데... (자연스레 보게 되는 것이 순리일 수 밖에 없는 이런 타이밍에서 구겨지거나 뭉쳐져 있거나 따로 떨어져 있는 처방전을 쥐고 바스락거리며 굳이 그것들을 펴냈다. 버릴 땐 버리더라도 이 채로 버릴 순 없지 않은가. 바랬던게 있었건만, 이제는 쓸모없다며 확신만 받은 꼴인지라 그저 일상을 보내며 대수롭지 않는 대화를 하듯 이었다. 그랬던 것 같은데, 그거 때문인가보네요. 겨우 그 정도의 말이. 그 의미없는 종이 뭉치들은 본래의 의도를 잃고 제 손에서 천천히 접혀 아무것도 아닌 쓰레기로 전략했다. 정말 그 의미를 방금 잃었을테니까.)
 
종이는... 봉지 안에 그냥 버리면 안되겠죠? 재활용이니까요.
 
토마 타쿠미:…아무래도 그렇지. 네가 남기고간 내 유일한 좋지않은 버릇 들 중 하나잖아. 너 없이 잘 못자는거. 뭐, 괜찮아. 안그래도 끊고싶었던 약이었던 더러, 오랜만에 널 봤으니 이참에 약을 끊어보는것도 좋겠지.
 
(장난스레, 웃어보았나. 그러게, 웃음이 다나오는구나. 이제는. 무엇으로 인해 그리 울었던지. 작은 네 손에 들려있는 종이를 바라보더니, 식탁 밑에 한때 이사할려 구매했던 빈 박스중 하나를 꺼내 조립하고는 방 한가운데에 놓았다)
 
종이는 이 박스 안에 넣는것으로 하자. 네가 가고 내가 정리해도 괜찮은데.
 
스미레코 카구야:저는... 저는, 네. 도와주러 온거니까요. (이상하다.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잘못해서 힘을 빼거나 말 한마디를 툭 뱉었을 때 또 다시 울컥할 것 같아 따라 실없이 웃었다. 처방전, 그러니까 이제는 종이가 된 분리수거 쓰레기를 상자 안에 차곡차곡 접어 놓고서 본래 목적을 올바르게 따라하듯, 아주 정확한 정답을 보기 좋게 내놓듯 어울렸다. 겨우 여기 안에 들어가는 것에 불과하게 되었구나.)
 
그러니까 도와드릴게요. 응, 도와드릴게요. 어떻게 됐든 그래도 그걸 위해서 온거니까. 그래도 소파는 흔적이 꽤 있는 것 같네요. 제 지레짐작이 아니라면.
 
토마 타쿠미:….그래. 사용감이 좀 있긴 하지. 침대에서 자는것은 포기했거든. 아무래도 너와 같이 자던 침대이니 제일 괴롭기도 했다만, 혼자서 쓰기에는 지독하게 큰 침대기도 해서 외롭더라고. 새 침대를 살까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면 집안을 정리해야하게 되는 상황이 오는데 마음이 아직 준비가 되지않아 미루다보니 결국 침대가 아닌 소파에서 자는것을 선택했다.
 
(어째서인지, 분명 너에게 대답하고 있는데도 눈은 아무리 보고 보아도 부족할 네가 아닌 소파를 향해 보고 있었다. 마치, 일기를 쓰듯, 전날의 일상을 되돌아 보듯, 흐릿하고 조용하게 웃는 얼굴은 그리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내 너를 바라보고)
 
이제는 저런 소파에서도 잠들 수 없어서 많이 곤란해 하고 있었는데 적어도 편하게 잘 순 있겠어. 걱정마,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침대에도 자볼거니까. 청소하는김에 저 침대는 버리고 새 침대를 들어보낼수도 있겠어.
 
(라고 말하며, 네 머리를 토닥여줬다)
 
소파는 이쯤되면 됐을려나. 오랜만에 청소하니 얼만큼 해야 괜찮은질 모르겠네 이거. 체면이 말이 아니군. (마치, 예전의 자신처럼 오랜만에 옛 버릇을 꺼내 소파를 보고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빠진듯 중얼거렸다)
 
스미레코 카구야:선배는 융통성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어요. (사실... 없는 쪽인 것 같기는 해. 내 기억에 남아 있는 네가 맞다면 정답이겠지. 그저 많이 누워서 썼겠구나, 하는 자리를 손으로 톡톡 털어낼 뿐.) 으음... 그래요~... 그럼 또 어디를 같이 치울까요.
 
토마 타쿠미:한번도 그렇게 생각한적 없지만, 지금 돌아보면 꽤나 그런 소리는 많이 듣고 지낸것같네. 특히 너에게 말이야.
 
(과거를 곱씹듯, 스쳐지가는 인물들에 후후, 하고 웃고는 손을 털며 너를 뒤로하고 서랍장을 향해 걸어갔다)
 
바닥은 마지막에 청소하기로 하지. 아무래도 쌓인 먼지가 많을테니 지금 바닥을 청소해도 결국 더러워질거야. 발은 조심하도록 해, 아직 네 슬리퍼는 현관 왼쪽 서랍에 있으니까 꺼내도 좋아,
 
refinement:▶ 엉망이 된 서랍장을 정리할 차례입니다.
 
사실 그 속도 꽤나 엉망이겠지만, 그 위에 얼기설기 놓여진 것들은 더욱 엉망입니다.
 
그는 그 말 그대로 왼쪽 서랍에서 슬리퍼를 꺼낸 다음, 정리를 도와 달라 말하네요.
 
그도 그럴 것이, 당신의 물건들이니까요.
 
 ˚𓆛˚。 그 전에, 관찰 판정입니다. ˚𓆛˚。 
 
토마 타쿠미:
관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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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inement:당신은 서랍장 위의 어질러진 물건 속에서, 스케쥴러 하나를 발견합니다.
 
이건… 당신이 생활 할 때에 자주 쓰던 것이네요.
 
그랬었죠.
 
왜인지 당신 이 온전히 일을 했던 것이 까마득한 옛날 같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분명, 당신은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스케쥴러를 집어들더니, 반갑다는 듯이 웃습니다.
 
스미레코 카구야:정말이지… 이게 왜 여기 나와 있나요…~? 그러고 보니, 계속 선수 활동 하고 계신가요?
 
refinement:추억이라고 부를 수 있나요?
 
그러한 기억들이 당신의 가슴께를 쿡쿡 찌르 는 듯한 미묘한 기분이 듭니다.
 
그것이 어떠한 감정이던 간에요.
 
토마 타쿠미:…그게 거기 있었구나.
 
(스케줄러를 집어든 너에게 다가가는 발걸음은, 처음에는 무거웠으나, 몇발자국 안가 이내 네 옆에 서서는 살짝 고개를 내리고는 네 어깨너머 스케줄러를 바라보았다)
 
그게. 새 스케줄러를 장만해서 그것은 안쓰고 있었어. 아무래도, 너에게 그런일이 있었던 해의 스케쥴러였거든.
 
(네 손에서, 스케쥴러를 꺼내보면 웃기게도 네가 떠난 날부터 한달정도의 스케줄은 여전히 적혀있었다. 그야, 너의 죽음은 계획된것이 아니였으니 아무래도 그때도 별 생각없이 스케줄을 작성했겠지. 이내 박스를 들고와 네 옆에 서서는 어깨를 으쓱이고, 박스를 내려놓더니 ‘실례’ 라고 중얼거리며 네 손에서 스케줄러를 가져온다. 촤르륵 펼치고는, 몇장을 훑어보더니 이내 실이 끊어지는 소리를 내며 가죽커버에 고정되어있던 노트더미를 분리하고는 노트더미는 종이박스에, 그리고 가죽커버는 봉지에 분리해 버렸고)
 
…걱정마. 쓰지 않는 스케줄러이기에 버리는것 뿐이니까. 이런것에도 미련을 가지면 어떻게 혼자 살아가겠어. 정말 괜찮다. 괜히 가끔 너는 별것도 아닌것에 걱정하니 미리 말해두는것 뿐이다. (으쓱이고는 괜시리, 네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어보았다)
 
선수생활은 당연 하고 있어. 내가 그걸 안하면 뭘 하고 있겠어. 임시 휴가기간이다. 컨디션 조절에 살짝 실패하고 말아서 의사측에서는 번아웃이라고 하더군. 그래서 잠시 쉬고 있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니 근질거릴 뿐이지만. 조만간 다시 복귀할 생각이다. 선수가 오랜기간을 훈련없이 비우면 안되는 노릇이니 말이야. 감도 떨어지기도 하고.
 
스미레코 카구야:그런가요? (여기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다른 것이면 몰라도 이 질문에 저 대답을 했다면 자신은 저 진위를 확인할 재간이 없다는 쪽에 더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가 잘못 알고 있는게 아니라면 여기는 자기가 죽고 거진 몇 년은 훌쩍 지나있었으니까. 그러니 당신이라는 사람의 개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알아챘을 지언정 그 생활까지는 판단할 증거가 없다, 정황이 없다, 그저 심리적인 유추만 있을 뿐인 그런. 거짓말. 거짓말쟁이. 선배는 정말 큰 거짓말쟁이야. 금방 맺히려고 하는 눈물 방울을 장갑으로 꾹꾹 눌러 애초에 흐리지도 못하게 했다. 그저 눈에 먼지라도 들어갈걸테지. 한없이, 한없이 눈물이 많아진다. 채 손을 어찌할 여유도 없이 이리저리 괜히 뒤적거리며 하나씩 세우거나 구분해가며 바르게 쌓았다.)
 
생리적으로 더럽지 않을 뿐이지 말도 못하게 엉망이잖아요~... 알고는 계신건가요? 흐...
 
토마 타쿠미:알고는 있다만… 그렇게 말해주니 조금 창피한감은 있군.
 
(곤란하다는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방 주변을 살펴보았다. 지저분하다는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 이상으로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 뿐, 정리를 해야한단 상황이 다가오자 정리할것이 산더미라는 사실에 차마 네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다시 눈을 돌리면 어색하게 몸을 움직이며 얼굴을 가리는 너를 보고는)
 
… 카구야.
 
(등돌린 네 앞에 서서는
 
볼을 쓰다듬다가
 
 
토마 타쿠미:네 눈 밑가를 매만지며 엄지로 닦아주었고)
 
울지마.
 
네가 울 필요는 없어.
 
(라고, 말을 끝맺고 슬 웃으더니 머리를 토닥이고는 먼저 일어서 테이블 위로 걸어갔다)
 
refinement:▶ 테이블 위는 엉망입니다.
 
인스턴트 식품의 용기, 다 비워져 두서없이 굴러 다니는 물병과 쓰레기나 다름없는 약봉지, 그리고 그 통의 잔향이라던가요.
 
그는 이미 병부터 분류해서 차곡차곡 옮기고 있네요.
 
청소합시다. :)
 
토마 타쿠미:…이건 좀 진짜로 창피하군.
 
(생각보다 엉망인 테이블 위를 바라보고는, 끙 소리를 내며 네 옆에 서서는 저 또한 용기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플라스틱.. 비닐이니 스티커를 제거하고, 이건 나무. 이건 씻어서 수거해야겠군, 따위를 중얼거리며 싱크대에 두었다)
 
인스턴트같은거 치우면서 이런 말 하는데에 크게 설득력이 없는건 잘 알고 있지만, 코치쪽에서부터 식단관리를 해주고 있어. 지금은 그니까. 잠시 휴식중이니 보는 사람도 없겠다 가끔 나 조차도 이런것이 먹고싶을때가 있어서 그런거니까.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괜히, 그는 네 눈치를 보며 플라스틱 뚜껑을 물통에서부터 분리했나)
 
스미레코 카구야:와아. 정말 설득력 없네요~... (상황이 어떻든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건 그저... 핑계가 아닐까? 아니, 절대로 핑계지... 이건. 어떻게든 둘러대는 사람의 전형적인 그것이라 어이가 없게도 울었다가 또 잠깐이나마 웃음이 나더라. 그 와중에 분리수거 하나까지 철저하게 하는 걸 보면 혼자서 살 수 있을텐데, 싶기도 했다. 말 그대로 정말 살고 있을 뿐인 삶이겠지만. 어디, 어디. 무얼 먹었나? 도와주는건지 그저 구경하며 방해하는건지 모르겠지만 기웃거렸고)
 
사실, 근처까지 들어왔을 때 음식 냄새가 나긴 했어요. 그 때 딱 식사를 하고 계셨나봐요? 시간이 어중간하던데, 뭐하고 있다가 그제서야 드신건가요~...? 정말~ 제 눈치를 볼거면 왜 그러신거람.
 
토마 타쿠미:….. 생각보다 많은걸 알고 있었네 너.
 
(뭐, 서로 얼추 들킨 거짓말속에 대화가 오고가는것은 알고 있었다만, 이렇게 되면 발뺌할곳도 없을것같아 싶어 곤란한 얼굴로 너를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푹 쉬고는 마지막 용기를 구겨넣으며 말을 이어갔다)
 
….하아, 그래. 늦게 일어났다. 알아, ‘선배’ 같지 않다는것쯤은. 칼같이 기상시간에 맞춰 눈을 뜨던 사람이니까. 말했잖아, 휴식기간이라고. 잠도.. 너 없어서 잘 못자기도 하다 보니, 수면패턴이 근례에 좀 엉망이긴 하더군. 항상 이랬던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도록 해. 것보다 이제부터 잘 할 예정이니 그거에 집중하도록 하자고. 오늘만 그랬어. 오늘만. 기가막힌 타이밍에 잘도 찾아왔군.
 
(콱- 소리를 내며 손을 불쑥 밀어넣고 마지막 용기를 괜히 꾸욱 밀어넣엇나, 가득찬 봉지를 단단히 묶고는 잠시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 손을 털고는 주위를 바라보더니)
 
..이제 바닥정리만 남았나. 둘이서 하니 어지간히 빠르네. …. 음.
 
스미레코 카구야:그게... 제... 잘못은 아니죠? (아무래도 그런 편이긴 하겠죠. 말이라도 가볍게 하면 뭐든간에 가벼워질 것 같아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들어오니까 냄새가 나는 걸 어떡해요? 따뜻한 편의점 도시락 냄새라는거, 선배 알고 계세요? 제가 생각해도 너무 기가 막힌 타이밍이긴 했어요. 정말 여러모로... 흐흐흐... (원래 이런 최악의 타이밍이라던가? 그런게 체질적으로도 선천적으로도 타고난지라. 그저 안타까운 점이 하나 있다면 정말로 기가막힐 정도의 타이밍이었다는거다. 당연하지만 나쁜 쪽으로.)
 
 ˚𓆛˚。 그 전에. 손놀림 or 행운 판정입니다. ˚𓆛˚。 
 
토마 타쿠미:
기준치: 70/35/14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refinement:▶ 당신은 빠르게 그 위에 놓인 것들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어휴. 평소에 좀 치우고 살걸. 이라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득 찬 봉지를 위에 올려놓자니, 그때, 그것이 빵빵한 봉지에 밀려 미끄러집니다.
 
물이 애매하게 남아있던 페트병을 떨어트립니다.
 
이런…
 
그렇지 않아도 바닥이 지저분한데 물까지 흥건해졌습니다.
 
 
refinement:운이 좋은건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젖지 않고 말끔합니다.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물때문에 흥건한 바닥을 밟고 있는 정도입니다.
 
 
토마 타쿠미:…..아. …쯧.
 
(흥건하게 젖은 물을 바라본다. 자신이 젖지 않은것은 행운이라 칠 수 있겠다만, 더욱 닦을것이 많아져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 상상인들, 네가 돌아온것이 사실이던 결국 정리를 하고 남은시간을 이제는 꽤나 홀가분한 마음에 소소하게 보내고 싶었으니 말이다. 혀를 차고는 짜증난 얼굴로 바닥을 바라보고는, 괜시리 물로 인해 젖어들어가는 물건들에 묘한 기분을 곱씹었다)
 
…. 미끄러질 수 있으니 잠시 비켜봐.
 
(부엌에서 키친타올을 가져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물을 닦기 시작했나)
 
오랜만에 만나서 꼴사나운 모습만 보여주는군. 조금, 그렇네.
 
…. (묵묵히 바닥을 닦았다)
 
refinement:▶바닥을 치우기 위해 움직이며 보자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파편이 물와 섞여 있네요.
 
오, 당신. 집 관리를 어떻게 한건가요? 깨끗하면 끝인가요?
 
정말이지, 위험하잖아요.
 
그런 그는 충고에도 불과하고 바닥을 보며 쭈그려 앉습니다.
 
당신. 어떻게 하나요?
 
토마 타쿠미:하지 말라고 했어. 위험하다니-
 
(파편들을 정리하며, 물을 닦고 있자면 그럼에도 쭈그려 앉는 너를 보고 단호하게 말을 뱉었으나, 이내 발끝부터 검정 스타킹이 더욱 검게 물들어가는것을 본다.
 
천천히, 천이 물을 빨아들이며 올라가는것을 보며, 시선은 따라가 네 다리, 무릎, 그리고 네 얼굴을 바라보면 새삼스레 아까부터 내 앞에 있는 네 얼굴을 한없이 바라본다. 언제나 운이 좋지 않아 자잘한것에도 자신은 쉽사리 비껴나가는것을 온몸으로 다 받던 너. 그 불운은 언젠가 너를 크게 삼켜버릴지도 모를 거란 걱정은 한두번 해왔으나 내가 옆에 있으면 문제없으리라 생각했던 그날, 그 불운은 예상하지 못했을뿐 결국 잠시나마 걱정했던 결과 그대로 너를 삼키고 말았다)
 
… 정말 찾아온거구나.
 
(그래, 새삼스럽게. 홀가분했던 마음은 다시 쿵 하고 가라앉기 시작한다. 더 이상으로 검을수 없을것같던 네 스타킹이 암흑으로 칠해지자 마치 어둠이 너를 삼키는것같아 불안했다. 이것봐 카구야. 사람은 이리 학습능력이 빨라서 네가 찾아온 절망스러운 순간에 잠시나마 숨쉴곳을 찾아 홀가분하다며 스스로를 착각하게 만들고 질식하게 만드는 슬픔과 너를 향한 비틀어진 갈망을 잠시나마 잊혀지게 해주지 않는가. 빠르게 찾아온만큼 길지 않았던 외면은 다시 파도처럼 저를 쓸어버린다. 저도모르게 키친타올은 바닥에 물을 다 흡수하지 못해 흐물거리고 있었고, 젖어든 손은 네 손을 다급하게 잡고 있었다. 크게 뜬 두 눈은 아까처럼 흔들렸으나, 아주 조용하게, 겨우 숨쉬는 소리만을 남기지 않는 이상 들리지 않을 작은 소리로 너를 잡으며 그리 속삭였다)
 
…아직, 아직은 가지마. 내일이 아니잖아.
 
토마 타쿠미:…카구야.
 
(크게 뜬 두 눈은, 떨림을 유지한 상태로 네 다리끝을 향해 굴렀다. 여전히 젖어든 발은 추워보였고, 그렇게 놔둘수는 없을 노릇이었다. 그야, 너에게 있어 다리는 제 손과 같이 중요한 부분이었으니까. 마치, 반쯤 미쳐 홀린 남자같은 얼굴로, 그는 네 손을 잡고 일으켜 소파에 앉히고는 그 앞에 무릎꿇을 만한 자리를 만들었다. 손으로 대충 바닥을 쓸은 덕에, 작은 파편이 스쳐 손날에 피부밑에 핏방울이 살짝 맺혔을지 모르겠으나 제 알바는 아니였다. 무릎을 꿇고, 네 다리를 매만지다 발목을 쥐어잡았다.
 
…한참을 쥐어잡았다. 손에 쉽사리 들어오는 작고 얇디 얇은 발목을, 주먹쥐고, 엄지로 쓸어보았다. 풀었다가 다시 움켜잡고, 너를 천천히 올려다 보았다)
 
….스타킹이 다 젖었어. 이러다간 감기에 걸릴 지도 모른다. 벗는게 좋겠어. 카구야.
 
스미레코 카구야:...안녕, 선배. (기이할 노릇이었다. 방금, 그러니까 불과 몇 분 몇 초만해도 그렇게 울 것 같았으면서 이렇게 생각치도 못한 타이밍에 찾아오는 자잘한 불행은 되려 저를 편하게 했다. 빗물에 양말이 젖는다거나 신호등에 걸린다거나 혹은 계란 노른자가 터진다거나 하는 것들. 남들에게는 짜증이 섞인 불운이겠으나 저에게만은 일상인 것들. 고작해야 하루를 산다고 해서 이 세상은 그 편의를 봐주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닥쳐오는 이 운은 그립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니까 아이러니 하면서도 어이없을만큼 소리없는 웃음이 흘렀다. 지금와서 다시 생각해보건데, 과연 그 일도 제게는 불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이 건든 것이 아님에도 손은 젖어갔다. 왜냐하면 당신의 손이 물기를 머금고 있으니까. 아주, 너무나도 간단한 해답이지 않은가. 네. 선배의 카구야에요. 사람 한 명 홀려낼 것 같은 물귀신처럼 걸을 때 마다, 끌려갈 때 마다, 앉혀지는 그 직전까지 철퍽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는 곳 현실이요, 살아있음의 증명이리라. 다시 말하지만 현실은 잔혹하며 잔인한 편이다.)
 
선배는 손에서 피가 나는걸요. 젓은 것 보다는 아무래도... 상처 난 사람이 급한 것 같은데. 그쵸? (귀여우셔라.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비꼬아서, 속내를 여러 번 감추고 어떤 의미로 뱉은 것인지 모르게 하는 그 말. 곧죽어도 말을 듣지 않는 미운 오리 새끼 마냥 네 얼굴을 지겨울 정도로 만져댔고 차마 만지지 못할 눈 주변을 서성이며 그 아래를 받쳤다가, 잡았다. 어쩜 시간이 그렇게 지났는데도 아무렇지 않을 말, 아무렇지 않을 행동으로 당신의 무언가를 건드는건지. 그것은 지금도 모를 일이었다.) 아시잖아요. 겨우 발이에요. 겨우 스타킹이구요. 선배도 그걸 아시잖아요, 그렇죠? 후후... 피가 나요. 네, 선배. 피가 나요. 저는 그게 걱정이에요. 그대로 두면 분명 낫지 않을테니까.
 
토마 타쿠미:아니.
 
(긴 말은 필요 없었다. 산 사람에 대해서는 내가 더 잘 알아. 라고 끝말을 중얼거렸을지도 모른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구나. 나를 향한 그 아래에서 내려다 보던 섬뜩하고도 기분나쁜 네 눈과, 그런 너를 어쩔줄 몰라해 그저 무리하게라도 잡아버리고 싶던 이 들끓는 비틀리고 좋지 않음을 인지함에도 참을수 없는 감정이)
 
…너는 그랬지.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것이 너의 사랑의 방식이라며. 너만의 그런 사랑을 하고싶다고.
 
(여전히 네 발목을 매만졌다. 내 상처는 알바 아니다. 네가 이렇게 젖어있는데,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는데. 네 말을 마다하고 그는 천천히 젖은 손으로 네 허벅지와 치마자락 안으로 들어가 허리에 걸쳐진 스타킹을 천천히 벗기기 시작했다. 도로 허벅지를 지나 무릎에 살짝 걸려 힘을 더욱 주면 종아리까지 쉽게 내려왔고, 발끝까지 내리면 이내 새하얗고 얇으며, 제가 기억하는 그대로 흉터가 길게 흉져있는 다리가 나온다.
 
‘겨우 발이에요’
 
그 한마디에 쉽사리 무너질수 있는 남자였다. 그야 너도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꽤나 불안한상태임을 서로 인정하고 알고있으며 그것을 무마시킬려 거짓을 뱉지 않았나, 그 짧은 순간안에서도. 그럼에도 상처받을만한 말을 내뱉는 너를 보자하니 지독하게 밉고 얄미운 그녀여서 더욱 자신의 앞에 있음을 다시끔 느꼈다.
 
토마 타쿠미: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날카롭기 그지없고 작아진 동공은 다시끔 눈물로 차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맨살로 느껴지는 이 작고 얇은 발목에, 너를 이리 잡고 있음에도 이제는 난폭함 조차 먹히지 않을 제 처지와 너의 존재에 대한 여부가 다시끔 밀려왔고. 아까는 차마 터질까 물지못했던 아랫입술을 꽉 물고는 맥빠지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 이기적인 여자야. 내가 살길 바라면, 혼자서 살길 바라면 반갑지 않은 너에게 반갑다고 한 나처럼, 너 또한 거짓말이라도 잔뜩 하란 말이다. 이 이기적이고 잔인하기 그지없는 여자야.
 
…윽….. 끅… 하….. 으윽-.. 아아.
 
…아아아… 아.
 
(발목을 잡고 허리를 굽으면, 네 무릎에 제 고개와 이마를 살짝 기대고는 헐떡거렸나, 네 차가운 피부위에 제 눈물이 지나치게 뜨거울 정도로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한번 떠나보내는것만으로도 차라리 칼로 난도질을 하라고 애원할 판에, 다시끔 너를 잃게 생겼는데, 그런 나에게 빌어먹을 네 분질러버리고 싶을 정도로 가련한 다리를 ‘겨우’ 라고 칭하지 말란 말이야, … 나에겐 겨우가 아니라는걸 네가 제일 잘 알것 아니냐고. 카구야, 아아… 아….!!
 
토마 타쿠미:젠장, 젠장, 넌 정말. 너란 여자는 잔인하다. 알아? 아냐고. 끅- 윽… 아.
 
어떻게, 홀로서기를 바라는 상대방에게,
 
겨우라는 말을 쓸 수 있어, 너는. 너는….윽.. 흐윽-....아..
 
진절머리가 나도록, 너를 미워하길 바라는거냐고. 카구야. 대답을 해봐, 도대체 왜 돌아온거야.
 
넌… 나의 행복을 바라는것이 맞나?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랑스럽고도 거지같은 주둥이로 다시는 ‘겨우’ 라는 단어를 빗대지 말란…말이다. 아아아-.... 제발… 끅, 흐윽- 윽..큭 하윽-
 
…너무. 힘들어. 나. 너무 힘들어, 카구야.
 
토마 타쿠미:(머리가 다 아파온다. 지나치게 울어댄 턱에 툭 하면 쓰러질것같았다. 몸에 수분이란 수분은 다 빠져나갔다는듯 이제는 입안까지 말라오며 그저 벗긴 네 스타킹을 쥐고 한없이 울분을 토하듯 울었다. 몇년간의 쌓인 너를 향한 원망과 간절함, 그리고 현실성 하나없는 희망을 이제서야 남자는 5년만에 네 앞에서 터트리며 오열했다)
 
2022. 7. 1 PM 11:40 CUT
 
 
2022. 7. 3 PM 4:30 ~
 
 
스미레코 카구야:(하지만 이걸 바라지는 않았죠. 나는 분명 그런 사랑이 하고 싶었다. 흔히 사회에서 말하는 비정상이 아니라, 나도 평범이라 치부받으며 그렇게 사랑하거나 애정을 퍼붓고 싶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었어. 당신이 내 사람이라고 인정받았고 인정한 순간, 내 우선 순위는 당신인데 어떻게 이런 결말을 바랬겠나. 결코 바라지 않았다. 이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상대방이 요구하는 그 애정 방식과 가치관, 그리고... 약간의 투정을 받았다. 자신 또한 그게 맞다고 생각했으니 받아주었고 반항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이렇게 될지는 몰랐지만서도. 그러니까 겨우 입고 있던 스타킹이 벗겨져 그 시절 그대로인 다리가 드러나도 가만히 있었던거겠지. 발은 여전히 차갑고 식어갔다. 시체마냥, 물귀신 처녀마냥, 그렇게. 그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어요. 어쩔 수 없다는 선택지였다면서. 차마 나오지도 못할 말을 그리 삼켰다. 지금의 당신에게 그냥 하는 말 조차 힘들텐데 가차없이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것 치고 지금 제 행동 자체가 모순적이지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한 번 완벽하게 죽음으로서 시작된 어쩔 수 없는 것들. 당신의 말이 맞다, 네 말이 맞아. 나는 참 이기적이라고 생각해. 부정하지 않는다. 사실이었으므로. 그런 이기적이고 못되먹은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없이 무너져 제 다리 위로 고꾸라진 남자의 머리를 퍽 상냥하게 어루어 만지는 것 뿐. 여전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다.)
 
그래도 아시잖아요. 제 말이, 못되먹고 꼬여있고 잔인한 당신의 후배가, 여자가... 어떤 의미로 말했는지 똑똑한 선배는 아시잖아요. 아니까. (이 일에 후회를 하려거든 원인을 탓해야하지 않았을까. 태초에 그래야 했다.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알 수 있는지 모를 만큼의 오래되어 낡아버린 원인 따위를. 분명 온전히 살아있음에도 고작해야 하루 값의 목숨이라서 그런가, 발끝이 시려웠다.)
 
제가 돌아온 것에 제 의지는 없었지만 여기까지 애써 찾아온건 확실히 제 의지였고 마음이었어요. 그 많은 선택지들 중에, 돌아갈 장소 중에, 여기를 온거니까. 그런 제가 돌아온 이유는. ('완벽하고 온전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나라는 사람은 기어이 완벽한 사내의 입에서 진심과 현실을 끌어냈다. 제 특기였다. 학생 때부터, 그 때부터. 그 때는 그 무게를 알지도 못했던가. 그렇다면 그걸 안 지금은? 알고서도 저지르는 이 용감의 이름 아래 무모함은 얼마나 먹혀들 것인가. 감히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청소를 합시다. 청소를 하고, 밥을 먹고, 제대로 씻거나 깨끗하게 입는거에요. 산 사람처럼. (그래, 산 사람의 강제적 의무나 나름없는 것들. 살아있다면 억지로 나아가야할 시간과 내일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이미 과거에 머물러 있을 뿐인 존재에 지나지 않으므로. 나는 그걸 돕기 위해 온거다. 아마도 세상이 그걸 시킨 것 처럼.)
 
토마 타쿠미:(머리카락을 쓸어주는 네 손은 어찌 이리 외롭고도 차갑던지, 창백하게 식어간 네 발목보다 분명 살과 살이 스쳤는데도 아무런 온기 하나 담지못하는 네 손가락에 오열했다. 섬뜩함을 가득 문 너의 손짓과 잔인하기 그지없는 말들을 뱉어낼때마다, 새삼 네가 내 앞에 진정 찾아왔구나 곱씹었다. 그저 자신의 상상속이었다면 이런 의미없는 감정소모 없이 내가 듣고싶은것을 줄줄이 말해주었으리라.
 
너의 부탁을, 말들을, 이해하지 못함은 아니었다. 충분히, 내가 네 입장이 되어도 누구보다 나는 네가 떳떳하고 건강하게 살길 바랬을것이다. 네 말을 빌려 깨끗한곳에서 따스한 밥과 옷을 입고, 쫌쫌따리 웃다 울기도 하며, 그 이기적임에 더한다면 나를 아주 잊지는 않되, 외롭지 않게 가끔가다 곱씹는정도의 추억으로 너와 함께 살아가기를 나는 바랬으리라.
 
허나, 차마 그것은 제 알바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네 그 바램을 충족해줘야하는것이 자신의 의무이자 머리속에서는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었으나 제 슬픔에 스스로 잠겨버린 남자였다. 누가 누구를 감히 이기적이라 하겠느냐. 그럼에도, 옳고 그름을 논할 정도로 제정신이 아닌 남자였다)
 
…… 진정. 내가 그러길 바라는건가?
 
(한참 목놓아 울어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언제나 침착한 남자가 목소리를 쓴다면 얼마나 쓴다고 목이 이리 나갈리가 있었을까, 목소리를 낼때마다 폐에서부터 혀끝까지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잘근 문 입술에는 이빨자국이 날 정도로 아마 제 눈덩이만큼 붉게 올라왔고, 아마 조금이라도 더 물고 있었다면 피라도 고였으리라. 이미 눈물에 지저분해질 정도로 보이지 않는 안경을 벗어들고, 닦을때마다 쓰린 맨 눈을 손등으로 비비적 거렸다. 한없이, 아이같고도 힘없는 손짓이었다)
 
….네가 없는 세상에, 그렇게 내가 기어코 살아갈 의미를 찾길 바라는건가? 그것이 죽은자가 바랄 수 밖에 없는 유일한것인가?
 
토마 타쿠미:….그래, 몸이 썩고 영혼도 간신히 남아보니 사는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말할 생각인건가?
 
…그만… 쓰다듬어.
 
….독하게 차가워서 썩 기분이 좋진 않군.
 
(쓰다듬어주는 네 손길을 마다하고 제 머리를 치웠다. 몇번 눈가를 닦다 이내 소매로 대충 닦은 안경을 다시 쓰더니, 너를 바라보지 않고 쳐낸 손가락을 하나하나 넘어가며 두 손으로 소중하게 만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리 있다 이미 그리 울어놓고도 눈물이 가득 찬 두 눈으로 애원하듯 너를 바라보고, 눈물젖은 목소리를 내며 다시끔 너를 향해 원망하듯 물어봤다)
 
… 얼마나, 얼마나, 네가 나에게 바라는것이 나를 죽이는것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하여도.
 
(기어코, 마지막을 꽉 문 입술은 작게 피가 터져나왔다)
 
토마 타쿠미:…그럼에도 너는 내가 살아가길 바라는건가?
 
(눈물과 숨을 삼키는 덕에 꼴사납게 끅 소리를 내며 말을 맞추고, 물어봤다. 진정, 얼마나 잔인한짓을 하는지 네가 알고있음에도 너는 나에게 그런 무겁고도 아픈 현실을 안고 살아가게 해줄것인지. 그것을 알고있는 너에게 그럼에도 만약 ‘그래’ 라는 대답을 듣는다면.)
 
스미레코 카구야:저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저의 우선은 죽으나 사나, 언제든지 선배니까요. (아마도 가장 좋은 상황은 애초에 내가 죽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일은 이미 일어났고 그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세상은 돌아갈 것이다. 알지 않던가? 당신에게 있어서 세상과 현실이 그런 것임을. 제 불운도 당신의 행운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저 그렇게 흘러갈게 분명했다. 원하지 않아도 그런 식으로, 죽을 때까지. 혹은 우연치 않은 기회로 산다 할지언정 그 하루마저도. 원망도 저주도 비현실적인 현상들은 익숙했는데 당신이라는 이유로 이 어찌나 가슴 아픈 일일까. 그래도 할 수 있는건 제 본심을 꼭꼭 숨기고 어렴풋이 웃는 것 뿐이었다. 사실이라는 말을 놓어놓은 주제에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할 수 있는지 여러가지 트랩을 몇 중이나 쌓아놓고서.)
 
...믿고 안믿고는 선배의 자유지만 사실은 이런 생각을 하는 저 자체가 가장 놀라워요. 저도 제가 이걸 바랄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한 때는 그런걸 바라기도 했어요. 저 사람이 나 없으면 못 살 정도로... 그렇게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했는데 지금이랑 그 때랑 무엇이 그리 다를까요. 아마도 그건 제가 선배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거겠죠. 사랑해서 놔준다는 말은 정말이지 바보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뭐랄까... 겪어보니까 대충 어떤 마음에서 어떤 의미로 하는건지 알 것 같은거에요. 조금... 웃기고 재미있네요. 저는 비록 달로도 가지 못하고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지상에서 발을 땠지만 선배를 너무 사랑해서, 평생토록 당신뿐이라, 그래서... 그럼에도 살길 바래요. 만약 멋 훗날이라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원망할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그런데 정말 왜일까요. 그래도 저는 선배가 살았으면 좋겠어. 죽는 일과 다름이 없는 일에도... 이게 얼마나 기분나쁘고 심한 부탁인지 알면서도 나는 선배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살아있다면 무엇이든지 되기는 될테니까. (죽으면 끝이다, 그래. 죽으면 끝인거야. 그것을 가장 잘 아는게 자신이다. 누구도 아닌 자신이라고. 저 말고 다른 이를 만나게 되면 저주라도 하며 저승에 끌고갈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우르르 무너졌다. 너무 사랑해서 상대를 놔주고 다른 사람에게 보낸다는 얼토당토 없던 드라마 스토리에 공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지 않기를 바랬으나 아마도 자신은 그걸 넘을 정도로 당신을 사랑했나보지. 그저 평범하게.)
 
그러니까... (청소를 합시다. 무엇이든간에. 뭐든간에. 당신이 너무 서럽게 울어서 자신은 흘릴 눈물도 이제는 없다고 생각했거늘, 피가 도는 몰이란 그 의지를 이뤄주지 않을 때가 있다. 지금처럼. 이미 다 헐어버린 네 눈가를 결국 만지며 쓸고보니 제 눈 앞도 흐렸다. 이기적인 여자의 건조한 눈물이었다. 아시잖아요, 아시잖아요. 사실은 당신 주변에 많은 것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아시잖아요. 그럼에도 나를 너무 잡아두어 남은 것들이 뒷전이란 것을 아시잖아요.)
 
일단 해봐요. 힘들어도 해보고 의미가 없어도 찾아보고 만약, 만약에 그래도 안되면... 되지 않는다면 그 때는 선배를 기다릴게요. 노력은 해봐요. 적어도 그 정도는... 그러니까, (이것은 타협점이다. 나는 당신을 돕고 싶은거지 억지로 싫은걸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러니까,)
 
...청소를 합시다. (무엇이든간에. 뭐든간에.)
 
토마 타쿠미:(너에게 그럼에도. 그러길 원한다는 대답을 듣는다면. 그럼 나는.)
 
….
 
….
 
…..그래.
 
(별 큰 말 없이 손을 꽉 잡아주었다. 잡아주고, 한참을 놓지 않았다. 다시 떨군 고개는 입만을 뻥긋거리며, 앓는 소리가 종종 났었다. 이 여자는 이제는 정말 나의 것이 되어주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는구나. 알고는 있었는데, 직접 듣고 나니 한없이 무너질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감정 쏟아내며 슬퍼했던적이 있는가, 막말로, 너를 잃었음에도 내가 붙잡고 있으면 그나마 괜찮을것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감정마저 끊으라는 네 말은, 네 죽음보다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그.
 
토마 타쿠미:래-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고작 우는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어서, 그러기를 택했다. 네 손을 잡고, 퍽이나 많이도 울고 안절부절하듯 네 손가락을 쥐었다 피기를 반복하며, 몸이 감정을 감당하지 못하듯이 온몸을 떨었다)
 
…그래.
 
(안일하게 생각했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그저, 다시한번 네가 내 눈앞에서 사라진다는 사실에 오열했지만 결국 마음속으로는 너를 붙잡고 머리속에 만들어낸, 한참 좋아하던것으로만 가득 이루어진 미화된 추억처럼 그런 환상속의 너를 마음으로 이어갔을지도 모른다. 네가 먼저 끊은 줄에 힘없이 남자는 무너졌다. 다시 억지로 묶을수도 없는 단정하게 잘린 단면을 보고 부들거리면, 그 실 조차 바람에 날라가 미련조차 잡을수 없는, 너는 오늘 네 손으로 자신을 묻었으리라)
 
…그래. 그럴게.
 
(나의 사랑은, 나의 그리움은, 나의 세상은 오늘부로 끝이 났다.
 
토마 타쿠미:원하지 않아도 세상은 그리 돌아갔고,
 
똑똑한 머리는 외면하지 못한 채 그 현실을 바라만 보았다.
 
사랑이 끊어진 내 앞에 여전히 남아있는 너는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내일이면 떠나갈거라 생각했던 너는, 네 방금 그 말로 이미 진작에 떠났구나)
 
그렇게 할게.
 
(첫번째에도 작별인사를 하지도 못한채 너는 떠나갔는데, 겨우 찾아온 두번째의 작별인사에도 정신 차려보면 너는 떠나고 이미 없구나.
 
토마 타쿠미:나의 사랑은, 그렇게 짧고 하지만 무겁고, 즐거웠으나, 질척거리고 지저분하게, 독한 냄새를 풍기다, 이미 진작 떠나갔을 때에는 늦었다는 후회도 느끼지 못하도록, 아무것도 남기지않고.
 
그렇게 끝났다.)
 
(연필을 쥐고 써내려간 끝말은 아마 이랬으리라.
 
네가 원망스럽다.
 
잘나고, 잘나게 태어나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하며 성공밖에 없었을 내 인생을 싸그리 망쳐놓은 네가 원망스럽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해. 반은 이미 그렇다고 생각한다.
 
토마 타쿠미:보고 싶어. 죽도록 그립고. 정신나갈 정도로 사랑해.
 
…이제는 이 말 조차 과거가 되었구나. 지우개가 없어 차마 지우지 못하는, 받는이가 사라져버려 의미를 잃은 편지는 곱게 접어 그대로 태우리라. 네가 내일 떠나면 무엇하나 남지 않게 태우리라, 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네 손을 꽉 쥐어 잡으며,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입으로 남자는 꼴사납게 이미 떠나 없어진 사람을 붙잡고 마지막으로 입만 뻥긋거렸다. 무엇이라 중얼거렸는지, 그 남자 조차 기억하지 못하리라. 그저, 똑같은 단어를 몇번이고 반복했다)
 
….
 
(천천히, 벗겨준 슬리퍼를 다시 신겨주고, 마른 수건을 가져와 네 손에 쥐어주며 저는 먼저 축축해진 바닥의 물기를 닦았다)
 
….바닥이 영 말이 아니다.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스미레코 카구야:응. (많고 많아 흘러넘치는 말을 삼켰다. 사실상 할 수 있는 말도 더 없었다. 그저 두루뭉실하게 무엇을 수긍하는지도 모를 말을 알 수 없게 내뱉는 것 밖에는. 그저 응, 하나면 어떤 것이든 넘어가고 어떤 점이든 그저 그렇게 대변할 수 있기에.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했지. 내가 방금 선배에게 무슨 짓을 한거야. 짧은 순간에 갖은 감정이 오가고 수시로 변해갔다. 힘들지만 현실을 살아가길 원한 다음엔 순간이나마 역시 저를 잊지 말기를 바랬으며 또 그 다음에는 타협점을 찾았다. 상대와 저를 망칠 정도의 진득한 사랑을 원했으나 질식하는 것 또한 자신이다. 그에 대한 무게와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현실은 제게 너무 힘든 것이었다. 아득바득 이를 갈며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는 그저그런 평범함의 현실을 쥐기에도 벅차서. 여기서 나를 완전히 잊지 말아 달라고 하면 역시 안되겠지. 그렇기에 숨겼다. 그저 멍청하게 헤헤 웃으며 그저 네 선택이 만족스럽다는 평면적인 자기 합리화 마냥 진심을 뭉쳐 어딘가로 감췄다.
 
훤히 드러난 다리가 되었으나 제법 괜찮았다. 슬리퍼가 따뜻했기 때문에.)
 
바닥만 닦으면... 그래도 집 안은 어느 정도 치운거 같아요. 방 꼴이 말도 안되긴 했는데 솔직히 청결로만 따지자면 뭐어... 그렇게 심한 정도는 아니었잖아요. 아시죠? 선배, 식사는 제대로 하면서 사세요...~? 아직 냉장고 확인은 안했는데... 있어도 없어도 왠지 걱정인거 있죠. 우리 다 치우면 장보러 갈까요? 후흐... 흐흐...
 
지금 선배 꼴로 밖에 나갈 수도 없겠다. 완전 엉망이에요~... 씻자. 깨끗하게 씻고, 옷을 입어요. 새옷으로 멀끔하게 입고 나랑 나갔다 오자. 발,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그럴테니까. 응? 그러자. 그 동안... 그래. 부엌이라도 치울까요. 저는.
 
토마 타쿠미:응. 다 끝나가.
 
(한참 갈라진 말로 네 말에 대답했다. 한없이 힘 없었고, 헤실 웃는 너에게 저도 웃어봤자 무슨 의미가 있으나 싶었지만, 다시끔 머리가 맑아왔다. 그정도로. 아마 별 의미 없는거겠지. 이런 감정 소요와 분통함이. 그래서, 너를 따라 웃어보았다. 산자가 죽은 자를 따라한다니, 기가막힐 노릇이지.)
 
그래, 식사는 억지로나마 잘 하고 있지만. 휴식기간동안은 제대로 못 먹은게 맞아. 네 말이 다 맞네. 장 보러 가자. …그래. 그것도 네가 도와주면 좋겠어.
 
(하하, 하고 웃다보면 네 말에 그제서야 제 얼굴을 반쯤 금간 거울에 제 얼굴을 바라보았고. 네 말대로 엉망이구나 싶어 다시한번 눈덩이를 손등으로 닦자, 이제는 정말 헐어버린 피부에 아파왔는지 작은 신음소리를 내었다. 이 꼴로 꼴사납게 네 앞에서 울었구나. 크게 외모에 신경쓰는 자신은 아니었다만, 사랑하는 여자의 앞에서는 멋지게 보이고 싶었거든.
 
그랬었어.)
 
(한참 바닥을 닦고, 마지막 조각까지 쓸어 전부 정리하고 나면, 아까보다 한층 깨끗해진 방이 제 눈에 들어온다. 그 관경이 말로 허용할수 없을 정도로 생각보다 아무런 감정도, 느낌도 다가오지 않아 어이없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깨끗하구나. 그 정도 뿐이었음을. 거실을 한참 바라보다가 너를 뒤로하고 옷가지를 챙겼고)
 
토마 타쿠미:씻을게. 이렇게 나가다간 오해살만 하니까. 애석하게도, 알아보는 이들도 이제는 꽤 있어서. 피곤하지. … 오래 안걸릴거야. 소파에 앉아있어도 좋고, 오랜만에 보고싶었던게 있었다면 찾아봐도 좋다. 네 물건은… 다 그 위치 그대로니까.
 
(슬, 웃었다가 다시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
 
화장실로 가면,
 
문득 거울에 당신이 비쳐 보입니다.
 
조금… 아니.
 
당신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만큼 초췌해 졌으려나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도 그럴게, 당신.
 
그를 잃은 후 자신을 돌보는 것에 퍽 소홀해졌으니까요.
 
어쩌면 방금의 심경변화 일수도 있겠습니다.
 
아침이라 포장하기에는 삐쳐 있는 머리라거나,
 
눈 아래에 드리운 다크서클과 헐어버린 살이라던가,
 
이전보다 살이 빠 진 듯 도드라진 얼굴의 선 이라거나,
 
그런 것들.
 
당신, 어서 씻도록 합시다.
 
토마 타쿠미:(거울은, 제 모습과 같이 관리하지않아 거울 모서리에는 먼지가 가득 차 있었다. 빨아야 하는 수건 하나를 가져와 대충 물을 묻히고 먼지라도 닦고나면, 좀더 잘 보이는 제 얼굴을 한참이고 바라보았나. 새삼 이런 얼굴로 잘도 남들을 속이고 살아왔구나 싶었다.
 
세수만이라도 할까 싶었으나, 워낙 크게 감정을 소모한 탓에 피곤했는지, 간단하게 씻기로 마음 먹었는지 윗옷을 벗어 옆에 곱게 접어 두고 다시끔 거울에 비춰지는 제 자신을 바라본다. 살이 많이 빠져있었으나, 상관없었다. 멀쩡한 상태로 되돌아가는것이 중요했다. 방의 모습과 같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래. 정리하고, 누가봐도 멀쩡한 그때의 자신으로. 네가 바란다는 그 모습으로)
 
(따스한 물이 제 몸을 감싼다. 괜시리 차갑게 느껴졌던 네 체온이 비교되어 조금 이질감을 느꼈으나, 머리에서부터 흘러 턱을 타고 발끝에 내려와 배출구로 빠져나가는 물을 한참 바라보았다.
 
기분좋게 온기를 찾은 몸이 되면 끼릭 소리를 내며 샤워물을 멈췄고, 나는, 네 체온과 비슷해질만큼 머리카락에 떨어지는 물방울 조차 마를때까지 서늘하게 젖은 몸으로 바닥만을 바라보았다)
 
…기다리겠구나.
 
(그제서야, 작게 읊조리고는 수건을 꺼내 차가워진 몸을 닦았으나, 워낙 오래 서있던 턱에 물이 말라 수건은 비교적으로 뽀송했다. 덜 말린 머리카락을 털며, 샤워실을 나와 나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울의 자신을 한번 더 바라보았고. 방을 나왔고. 기다리는 너에게 말을 걸었다)
 
토마 타쿠미: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다 씻었다.
 
스미레코 카구야:아, 선배. 주방 청소도 얼추 끝났어요.
 
그가 주방 쪽에서 고개를 듭니다.
 
정말 열심히 청소했는지
 
물이 떨어지는 고무장갑을 낀 손을 들고 있네요.
 
그것을 벗어놓더니,
 
당신에게 다 가옵니다.
 
아직 젖어있는 머리를 털어주고
 
젖은 수건을 손에 듭니다.
 
당신이 씻는 동안 집안을 깨끗하게 만드느라 퍽 고생을 한 것 같지만,
 
아무 렴 어떠냐는 듯 엷게 웃은 그는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멀끔한 당신의 모습이 좋았던건지, 뭔지.
 
별 다른 말을 잇지 않고 나갈 채비를 합니다.
 
장면전환
 
마트는 당신의 집에서 차를 타고 10분 거리입니다.
 
 
걸어가기에는 제법 먼데.
 
 
어떻게 갈까요?
 
 
토마 타쿠미:..있잖아.
 
(그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어쩌면 익숙하다는듯,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하며 턱에 잠시 내리며 당신을 바라본다)
 
차로 갈 생각이긴 했었다만. 워낙, 네가 걷는걸 좋아했으니까. 원한다면, 걸어가도 좋으니 어떻게 할래? 너는 오랜만일터이니.
 
 
스미레코 카구야:흐음... (생각해보면 자신도 뭔가, 얼굴을 가려야 하지 않을까? 싶기는 했다. 죽은 사람이 깨어나 멀쩡하게 돌아다니는걸 아는 사람이 목격할수도 있는 노릇이었으니까. 아닌가. 이 거리에서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까? 나보다는 제 선배만 걱정하면 되나?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이렇게까지 걱정하다니, 정말이지 웃길 노릇이다.슬 웃으며 장난스레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네요. 걸어가면... 아무래도 가까운 거리는 아니라서 택시를 타는 방법도 생각했어요. 저는... 역시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걸 좋아하긴 했어요. (과거형이 나열된다. 오직 했다는 그 말들이 하염없이, 거침없이.)
 
괜찮으시겠어요?
 
 
토마 타쿠미:…그래. 괜찮아.
 
그럼 걷는것으로 하자. 이젠 진짜 마지막일텐데. 좋아하는건 하고 가야지.
 
(그리 말하고는, 너를 한참 보더니 모자를 하나 더 챙겨 너에게 씌어주었다. 한참 큰 모자에 살짝 헐렁거려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조금이나마 살짝 지친감이 드는 얼굴로 픽 웃어보았나)
 
크네. 신경쓰이면 이렇게 라도 하고 가자. 중간에 힘들면 언제든지 택시를 불러도 좋으니 그렇게 하고.
 
그럼, 갈까.
 
(라는 말과 함께, 먼저 네 손을 잡고 문밖을 나선다)
 
 
스미레코 카구야:(진짜 마지막이라는 말을 기어코 꺼내도록 했을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나. 스스로도 몰라 되물어 보는 정도라면 아마 그 누구도 제 속을 모르겠지. 선배도 모르겠지. 삐뚤게 쓰여진 모자에 그저 철없이 웃는 아이처럼 보이면 결국 눈 위까지 푹 눌러 썼다.)
 
별로 상관없는 말이긴 한데요~... 저, 아무래도 양산파에요. (그게 어울리는 상이기도 하고. 정말 아무래도 좋을 말이었다. 의미도 없는. 손을 잡으면 믿을 수 없도록 산 사람 같은 손이다. 피가 돌고 살이 돋아나 있는 죽기 직전의 그 모습 딱 그대로. 햇빛에 나간다해서 녹아 쓰러지는게 아닌 그대로 집 밖을 나섰다.)
 
 
우리는 결국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차장 너머로 익숙한 풍경이 지나가는 걸 보는 것도 괜찮지만…
 
 
어쨌거나 중요한 건 우리는 느리게라도 걷는 걸 선택했다는 겁니다.
 
 
그저 가능한 걸 할 뿐인.
 
 
문득 당신과 눈이 마주칩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뿐이라고 했었죠.
 
 
. …당신에게 빛을 안겨주고,
 
 
다시금 빼앗아가려는 현실이 야속한가요?
 
 
그런 당신을 바라보며 안심하라는 듯,
 
 
부드러이 손을 쥐어 매만지던 그의 상이 이지러집니다.
 
 
울고 있나요?
 
 
아뇨.
 
 
그보다는 조금 더 암전에 가까운-……
 
 
장면전환
 
 
눈을 뜨면,
 
 
당신은 온전한 백색의 공간에 앉아 있습니다.
 
 
. 주위를 둘러보아 도 상 · 하 · 좌 · 우 모든 것이
 
 
백색으로 가득 차 자신이 앉아 있는 곳이
 
 
바 닥인지조차 의심이 갈 정도로 기이한 공간입니다.
 
 
 ˚𓆛˚。 이성 판정입니다. ˚𓆛˚。 
 
 
토마 타쿠미:
SAN Roll
기준치: 19/9/3
굴림: 60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합니다.
 
 
장면전환
 
 
 ˚㆛˚。 이어서 강제 지능 판정입니다. ˚㆛˚。 
 
 
토마 타쿠미: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당신은 분명 걷고 있었죠.
 
 
그럼 여기는 꿈이라도 되는건가요?
 
 
자각몽일까요?
 
 
무엇을 하든 현실이 아니라는 것이
 
 
더욱 명확하 게 자각이 될 뿐입니다.
 
 
가만히 앉아있어 봐야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곳은 마치 죽음처럼 고요해요.
 
 
토마,
 
 
당신은 앞 · 뒤 · 오른쪽 · 왼쪽.
 
 
어느 쪽이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토마 타쿠미:(아무것도 없는 공간. 네가 눈앞에 없어졌음에 놀랄만도 했다만, 이상하게도 평온했다. 만약 그 걸어가던 길가에 너만이 사라졌다면 원통하고 다시끔 지칠때로 감정을 소요했으리라, 허나 아무것도 없는 이 공간속에는 제 자신조차 현실성이 없음에 그저 편안했다.
 
죽은걸까. 결국. 정리한걸까. 그게 아니라면, 여태까지 꿈이라도 꾼걸까. 그게 더 현실성 있겠구나. 깰 이유가 있을까, 그건 또 없는 것 같아서, 머리를 그닥 쓰고싶은 마음도 없었다. 언제나, 제 의도와는 다르게 항상 빠르게 돌아가는 머릿속이었으니. 지칠대로 지쳐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고요함에, 무 속에서 잠기고 싶었다.)
 
(고요함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허나, 네가 나에게 부탁한것이 있어. 의미없이 이어져가던 삶에 그나마 목적이 하나 생겼기에, 그것은 제대로 이루고 가고싶었던 마음에,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어느쪽으로 갈까 싶었지만, 별 망설임 없이. 다리를 움직이면 결국 앞으로 움직이게 됨으로. 앞을 향해 걸어갔다)
 
 
refinement:나아가던 당신의 앞에 어느 순간 하얀 테이블이 놓여있습니다.
 
백색 일색의 공간에서 이것이 테이블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아챈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은 그곳에 놓여 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습니다.
 
종이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생의 전이
 
 
refinement:토마.
 
…타쿠미.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나요?
 
 
당신이 모든 내용을 읽은 후,
 
 
그것을 머릿속에 새겨 넣고 나면,
 
 
백색의 공 간이 뒤틀리는 것을 느낍니다.
 
 
장면전환
 
 
♬♪
 
 
어렴풋하면서도 익숙한 소리가 당신을 흔들어 놓으며,
 
 
어느 순간 수면 밖으로 끌어내어지듯 급작스럽게 정신이 듭니다.
 
 
이건… 당신의 전화벨 소리입니다.
 
 
스미레코 카구야:선배. 괜찮아요?
 
 
당신의 옆에서는 그가 걱정스럽게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전 화기는 끊임없이 울리고 있네요.
 
 
전화기를 확인해 보면,
 
 
당신의 어머니 입니다.
 
 
토마 타쿠미:…아.
 
(잠시 뜬 눈을 한번 더 감으면, 익숙한 벨소리에 제 폰 화면과 너를 바라본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야.
 
(천천히, 뭔가를 곱씹고 생각하듯 주먹을 쥐고 피더니. 그리 너를 바라보다가, 그는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전화를 받으면,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이 걱정되어서 전화를 했다 합니다.
 
 
언제건 집으로 돌아오거나,
 
 
들러도 좋다는 말도 함께요.
 
 
네 삶에 너무 큰 참견을 하는 것 같아서 많은 고민을 하였지만,
 
 
너에게는 항상 자신이 있으니 믿어보라고.
 
 
다정한 걱정과 안부였습니다.
 
 
당신을 아주 걱정하고,
 
 
사랑해 마지 않을 가족입니다.
 
 
토마 타쿠미:네.
 
죄송합니다. 전화 드리지 못해서. 예. 별일은 없습니다. 잘 쉬고 있습니다.
 
…예. 저번에 챙겨주신 음식은 다 먹었습니다. 네. 네.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인데, 당연 입에 맞았죠. 네.
 
..네.
 
(대답하는 그의 표정은, 조금은 온화하게 보였을까, 어쩌면 편해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조만간.
 
 
토마 타쿠미:…조만간 한번 들리겠습니다.
 
네.
 
아버지는 잘 지내시죠.
 
아즈키도요. 네.
 
…저는.
 
(전화를 하다 문득 멈춰서 너를 보더니, 이내 슬 웃고는 다시 이어갔다)
 
 
토마 타쿠미:..저는 방정리를 마치고, 지금은 장을 좀 볼려고 잠시 나왔습니다. 네.
 
오랜만에 걷고싶어서요. ..네.
 
 
…어머니.
 
 
아닙니다. 예. 아니요. 중요한건 아닙니다. .. 까먹었어요.
 
 
토마 타쿠미:… (작게 웃어보이며)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다 까먹기도 하네요.
 
..네. 들어가세요. 네. 조만간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그는, 전화를 끊고, 너를 바라보았다)
 
미안. 어머니한테 전화가 와서.
 
 
전화를 끊고 나면 시선이 마주친 그가 말합니다.
 
 
스미레코 카구야:그럼 다 온 것 같은데, 들어갈까요?
 
 
장면전환
 
 
마트입니다.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는 오늘 저 녁에 무엇을 먹을지,
 
 
이게 나을지 저게 나을지 고르는 것이 고작인 장소.
 
 
아무래도 장바구니보다는 쇼핑카트가 좋겠죠?
 
 
자유롭게 마트를 돌아다니며 장을 볼 수 있습니다.
 
 
토마 타쿠미:(그는, 적당히 카트를 끓고, 조금은 답답했는지 마스크를 살짝 턱에 걸치고 모자를 푹 고쳐쓰며 너에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네. 여러의미로. (끝말을 흐리더니 너를 바라보고)
 
먹고싶은거 있나? 내일까지라며. 내가 해주는 음식도 마지막이 될 지 모르니 네가 먹고싶은것으로 하자. 요리는 ... 조금 오랜만이긴 하다만. 괜찮겠지.
 
 
스미레코 카구야:아무래도 그렇죠~... (그래도 마스크는 꼭꼭 쓰기~ 내린지 얼마나 지났다고 다시 마스크를 코 위까지 올려주었다가 씩 웃어) 으으음~... 저는 선배가 좋아하는 걸 샀으면 좋겠는데요. 간식이든, 음식이든 상관없어요. 좋아하는거, 기억하고 있죠? 자기 일이니까.
 
 
토마 타쿠미:… 내 말은 결국 하나도 안들어주고 갈 생각인가 보군.
 
(별, 가볍게 웃어보이고는 그래. 라고 끝말을 이으며 카트를 끌었다. 너에게는 보였을진 모르겠다만. 정말, 네가 먹고싶은것을 해주고 싶었는데.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지만 어째서인지, 감사해야할까,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어떤 음식이 좋을까. 한번 많이 하면 나름 일주일정도는 먹을수 있고, 음식물 쓰레기 없이 버리는것도 별 남지 않는 깔끔한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각종 야채코너를 들어설때 감자를 쥐어보더니)
 
…카레로 할까. 괜찮나?
 
 
스미레코 카구야:이런 똥고집이 아니었다면 예나 지금이나 선배가 고생하는 일이 조~... 금 적지 않았을까요? (알긴 아는건지, 알고서 하는 말인건지. 그저 그런 식으로 가볍게 치부하며 카트 옆을 뚜벅거리는 발걸음으로 장난 쳐가며 걸었다. 곧 멈추게 되버린 것 같지만. 아주 잠깐, 입만 곱게 다물며 감자를 보고 다시 슬 웃었다.)
 
괜찮네요~... 혹시해서 그냥 하는 말이지만 한 번 해두고 오래 먹을 작정으로 메뉴 선정한건 아니죠? 아닐거라고 믿을게요? 후훗... 중요한건 뭐가 어쨌든 스스로 생각해서 정했다는 그 자체니까요. 그럼 야채랑 이것저것 많이 사게 되겠네요. 무겁겠다.
 
 
토마 타쿠미:….그럴 생각이라면 어쩔거지?
 
어차피, 많이 사둬봤자 오래 못먹어. 휴식기간에도 먹는것은 관리되고 있거든. 그저, 그냥. ..그래. 앞으로 언제 또 내 스스로 요리해먹을 날이 있어도 얼마나 있을까 싶어서.
 
그리고, 오늘 외에는 다 나만 먹게 될텐데. 네가 그리 많이 먹는 쪽은 아니었다만, 네가 가고 난 후 내가 다 처리하지 못해 버린 재료들만 엄청났어. 조금만 살거다.
 
괜찮아. 먹을때는 제대로 해 먹을게. 씻으면서 몸을 보자하니, 적어도 예전처럼 돌려놔야하긴 할것같더군. 너무 빠졌어
 
….괜찮아. 걱정마.
 
(네 머리를 살짝 토닥이고 보면, 조금 내려온 시선은 감자만 덩그러니 돌아다니는 카트 안을 바라보더니, 이내 소량 정도의 야채만 담기 시작한다. 당근.. 양파… )
 
 
토마 타쿠미:… 고기 잔뜩 넣어 먹을까. (비록, 마스크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약간 울다 지친 눈은 슬 웃어보이는듯 했다)
 
 
스미레코 카구야:뭐어, 어쩔 수 있나요~... 그냥... 그렇다는 의미에요. 정말 그럴 뿐이에요. (하나하나 따지고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게 뻔 했다. 그러니까 가장 맞춰야 할 초점을 우선적으로 맞추자. 그렇게 생각하면 그리 어어울 일도 아니더라. 분명 조금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 역시 깡그리 무시해버리듯 제멋대로 야채를 우르르 담으니 감자만 있던 처량한 카트가 덜컹덜컹 흔들렸다. 얄밉게 혀나 삐죽 내밀면서.)
 
흐흐흥... 그럴까요... 아무래도 역시 사람이 살기 위해선 고기가 필요해요. 많이 드세요, 많이요. 저말고요. 메뉴가 해결되면 간식도 사요. 선배가 좋아하는 걸로.
 
 
토마 타쿠미:…하아.
 
그러니까. 그만큼 필요 없대도.
 
..있지, 난 기껏 정리를 다 해놓은 집에 더 정리할것을 만들고 싶지 않거든.
 
(지독하게 말을 듣지 않는 여자구나. 이런식으로 피곤한것도 참 오랜만이다. 한숨을 푹 쉬고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덜겠다고 야채 두어개를 집어 도로 돌려놓고 카트를 밀었다)
 
어디가서 이렇게 챙김 받을 사람은 아닌데, 기분이 다 묘하군.
 
(카트를 밀다보면, 팩으로 포장되어있는 소고기를 들고 이리저리 바라본다. 오랜만에 나온 장보기였다만, 오랜 고유의 성격은 무시 못하는듯 유통기한과 그람수, 다른 가격과 비교를 한 후 비교적으로 괜찮아 보이는 두 팩 정도를 골라 카트에 넣었고)
 
 
토마 타쿠미:…카레가루랑 쌀은 집에 있으니 이정도로 할까. 간식은 네가 먹고싶은게 있지 않으면 난 딱히 괜찮아. 군것질을 하던 이유도 네 덕분이었지, 원래부터 먹는 성격은 아니었어.
 
 
스미레코 카구야:(돌려놓은 걸 다시 집어넣으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건 아니지만 저가 봐준다는 느낌으로 으스스하게 히히덕거리며 으쓱거렸다. 자신은 그저 거들기만 할 뿐, 정작 하는 거라곤 카트 옆을 걷거나 고르는 걸 구경하는게 전부였다. 여기까지 오는 것만 해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제와서 괜한 곳까지 침범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뭐가 됐든 아마 당신은 잘하겠지, 비록 중요한게 빠졌을지라도.)
 
그래도 이 참에 사두는건 어떨까요? 모처럼이니까요~... 그러니까 괜찮은게 아니에요. 그걸로 끝나기엔 여러모로 아쉽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둘러보면 여러가지가 있잖아요. 네에, 맞아요. 여러가지가 있을거에요. 그걸 아는게 중요한거랍니다.
 
 
토마 타쿠미:(피곤함이 조금은 밀려왔을까. 어째서인지, 여기서 제가 먹고 쓸 물건을 더 늘리는것은 그저 정리할것이 늘어나는것 뿐. 한숨을 쉬었지만. 그래. 머리를 잡고 생각해보면 그정도만큼은 괜찮을것같아서, 다시 한번 한숨을 내뱉더니 코너를 돌며 카트를 돌렸다)
 
…그래. 그렇게 하자.
 
(라고는 해도, 과자가 잔뜩 진열된 코너에 들어서자, 정말 모르겠다는듯 아무거나 집어들곤 이리저리 바라봤다. 네가 없으니 단것을 먹을 이유도 없었고, 칼리로를 보자하니)
 
… 이 칼로리로는 코치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 …하아. 정말 사야해?
 
 
스미레코 카구야:사람이 숨을 쉴 틈이 있어야 산다니까요? 아. 선배의 경우는 그게 아니라도 잘 살았으니까 괜찮은거였나? (아. 정말 의미없이 지구 젤리나 생각났다. 왜 하필 지금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생각나는거람. 아주 잠깐 혼자 픽 웃음을 흘렸다가 보란듯이 뒷짐이나 지고 까닥거렸다.)
 
저는 아무 말도 안할테니까요? 정말 꼭, 어떻게든, 반드시, 사야할게 없거나 모르겠으면 강요하지는 않을게요. 저는 선배에게 그걸 바라는게 아니니까. 스스로 선택하세요. 끝내 그게 맞다면 저는 받아드릴게요.
 
 
토마 타쿠미:이제와서 맘 넓은듯한 소리 하지마. 해달라고 해준거는 다 안된다고 한 주제에.
 
(조금의 찡얼거림이었을까, 툴툴거리고 괜히 마스크 넘어 너를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다 보면 카트를 잡던 손은 네 머리카락 끝을 매만지고 있었다. 몇번을 봐도 바깥쪽과 안쪽이 다른 머리카락은 신기하고 서늘했다. 오랜만에 보니 더욱 신기하구나.
 
괜찮은 줄 알았는데, 찌꺼기가 남은 감정덕에 퍽이나 울컥 하고 눈끝이 젖어왔으나 울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끝난 모든것에 찌꺼기같은 감정이 무슨 소용이 있으리라. 그저 자신이 조금은 불쌍해 퍽 웃어보았다)
 
…그럼 마지막으로. 너도 같이 먹어줘. 그래주면 살게. 군것질 만큼은, 인생에 있어서 너로 인해 바뀌게 된 유일한것들 중 하나니까.
 
남으면,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게.
 
그러니.
 
 
토마 타쿠미:..그래주면 안될까.
 
(작은, 낱개로 포장되어있는 팥이들어간 작은 모찌를 들어보이곤, 너에게 건네주었다)
 
 
스미레코 카구야:(정말로 그런가? 정말로 그건 의미가 없는건가? 정말, 정말로 그런 것일까. 애써 입 밖으로 꺼낼 필요도 없는 의문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해줄 수 있는건 그저 짧은 손길에 좀 더 편히 만지라며 고개를 기울여주는 것 뿐이었다. 정말 의미가 없었나. 단지 내가 여기에서 고민할 것은 그 질문에 어찌 대답해야 하냐는 것이다. 어렵지 않은 부탁이다. 그냥 먹어주고 가는 것. 딱 그뿐인 질문과 부탁에 자신은 쉬이 받아주지 못했다. 선을 긋는건 어디까지인가, 어디까지 허용이 가능한가. 작디 작은 떡이다. 고작해야 모찌 하나가 제 두 손에 닿아 부시럭거렸다. 쥐면 터트려질 고작해야, 그런,)
 
... 좋아요. 그럼 많이 사요. 박스에 담긴 걸로. 그게 아니라면 타협은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나는 헛된 희망이 담긴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토마 타쿠미:응. 그렇게 하자 그럼.
 
(꽤, 간편하게 빠른 대답이었다. 무언가 자꾸 늘어가는 느낌이었다만 이제는 뭔들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 한박스면 될까 싶어 박스 하나를 들고 가볍게 카트안에 넣었다. 살은 찌워야하니, 그래. 간편하게 찌울 수 있는데 도움이 된다면 이것도 나름 나쁘지 않겠구나 싶었다.)
 
이젠 됐나. 더 살건 없는 것 같은데. …나. 선수촌에서 대부분 생활하고 있거든. 장을 그닥 보지 않아도 거기서 필요한것은 다 챙겨주더군. 이정도로 할까. 아니면, 너라도 더 먹고싶은게 있으면 둘러봐도 좋아.
 
 
스미레코 카구야:힘들게 걸어온 것 치고는 꽤 정말 필요한 것만 샀네요. 으흠... 그래요. 카트를 끌고 온 것 치고는 말이죠.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것 보다는 훨씬 적은 것들이 카트 안에서 나뒹군다. 좀 더, 이 카트 안이 미어 터지도록 담고 싶었어. 사실은 그렇게 하고 싶었어. 큰 의미가 없더라도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어. 야속했다. 또 다시 알고서 모른 척 하지만 그럼에도 현실을 직면하는 이 꼴이, 보이지 말아야 할 약간의 미래가, 당신과 나의 끝이, 그저 빗나가길 바라며. 그럼에도 그어야 했다. 끝까지 여지를 주지 않았다. 이 여자는.)
 
아뇨. 저는 됐어요. 선배가 좋아하는거라면, 그게 담긴거라면. 제가 먹고 싶은건 됐어요. 계산하러 갈까요.
 
 
토마 타쿠미:…한번 왔다 해서 가득 채우고 가는것은 시간단축면에서는 이득일진 몰라도, 전체적으로 합리적이진 않으니 말이야.
 
(아까부터, 계속이고 자신의 존재는 잊으라며 나의 것만 챙기는 너의 말이 하나같이 맘에 들지 않았으나 싹둑 자신을 잘라버린 너에게 매달릴 생각은 없었다. 그래, 가능성만 있다면, 매달리는것이 아닌 더욱 독한것이라도 했으리라. 그래서 그리 대충 넘겨본다. 합리적이지 않고, 주변환경을 잘 알수 있는 선에서. 내가 해낼수 있는 것. 잠시, 생각에 잠긴듯 카트를 몇초동안 바라보았으나, 이내 카트를 밀고는 계산대로 걸어갔다)
 
계산하자.
 
 
 ˚𓆛˚。 그런 당신, 지능 or 관찰입니다.  ˚𓆛˚。 
 
 
토마 타쿠미: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68
판정결과: 보통 성공
 
 
refinement:계산대에 가까워진 당신의 시선에 문득 쇼핑카트 속의 내용물이 보입니다.
 
어느 것 하나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정말 새삼스럽게 꺠닫습니다.
 
그 속에 그를 위한 것은 없습니다.
 
어쩌면 이미 채념한 현실이 물밀듯이 당신을 덮쳐옵니다.
 
 
refinement:그를 볼 수 있는 것은 오늘 하루뿐이라는 것.
 
 
어렴풋이,
 
 
오는 길에 보았던 꿈속의 주문이 생각납니다.
 
 
당신이 이런 생각 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까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당신의 바램과는 아주 조금 다르겠지만
 
 
다정하게 차곡차곡 준비되어가는 이별을,
 
 
이번에는 바로 맞이할 각오가 되었나요?
 
 
아니라면…
 
 
상념에 빠진 당신을 그가 툭 건드립니다.
 
 
스미레코 카구야:벌써 차례 다 됐다. 선배. 이 정도면 한동안은 안심이겠네에. 얼른 하고 가버릴까아... 걸어와서 시간이 꽤 걸렸으니까요.
 
 
2022. 7. 3 PM 9:55 CUT
 
 
2022. 7. 4 PM 4:05 ~
 
 
그는 귀찮아도 꼬박꼬박 챙겨먹어야 한다며
 
 
가벼운 어조로 말합니다.
 
 
당신은 집까지 오는 내내 심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다홍빛의 노을이 당신을 온통 적셔놓았으니까요.
 
 
네.
 
 
맞습니다.
 
 
하루가 끝나갑니다.
 
 
어떤 심정인가요, 당신?
 
 
장면전환
 
 
우리는 당신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 음식으로 가득 찬 장바구니를 내려두고,
 
 
그는 냉장고를 꼼꼼히 채워 넣기 시작합니다.
 
 
냉장실, 냉동실, 찬장.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구석이 없습니다.
 
 
허리를 편 그는,
 
 
시계를 한 번 보더니,
 
 
주저하던 입을 뗍니다.
 
 
스미레코 카구야:후훗…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선배. 죄송해요. 아무래도 걸어오느라 시간이 늦어서 저녁 먹을 시간까지는 안될 거 같네요. 차라도 타고 왔으면 괜찮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걸어온걸 어쩌겠어요~ 안에 원래 있던 반찬도 앞으로 꺼내 놨으니까 그거 먼저 먹는거 잊지 말고 음. 가볼게요.
 
 
그는 엷은 웃음을 내비칩니다.
 
 
마치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기라도 했다는 양,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토마.
 
 
이대로 그를 보낼까요?
 
 
아니면,
 
 
당신이 꿈에서 보았던 것에 대하여 이실직고를 해서라도
 
 
그를 붙잡아야할까요.
 
 
그마저도 아니라면…
 
 
토마 타쿠미:(너와같이 냉장고를 정리하고 있었다. 버림받았다 생각했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일상은 퍽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정리하는것을 좋아했던 저에게 오랜만에 차곡차곡 물건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지. 버림받았다 생각했지만, 그런 자잘한 너와의 일상이 새삼 저에게 얼마나 소소한 기쁨이 되었었는지, 다시끔 느끼게 해주었다. 앞으로 그립겠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있다 한들, 오늘 하루는 결국 다시 돌아오지 않을 후회가 되리라)
 
….후회가 되기전에.
 
추억으로 만들자.
 
(그는, 아주 작게, 입술조차 뻥긋거리지 않을정도로 잠시 숨을 쉬려 벌린 입술 틈으로 중얼거렸다)
 
…있잖아.
 
(네가 내일이면 돌아간다는 말을 아주 믿었을까, 애석하게도 믿었으면 좋으련만 머리가 좋은 그이라서 네가 얼굴을 비추며 찾아온 순간부터 어떻게 헤어지고, 어떻게 인사를 나눠야 할지. 어떻게 해야 너에게 제대로된 질문 하나 물어봐도 답을 듣지 못해 후회심에 낙심할 과거가 되지 않을지, 몇번이고 곱씹고 생각해 보았다.
 
 
토마 타쿠미:탁, 소리를 내고는 냉장고를 닫고, 너를 뒤로 하고 문을 열려 현관을 나섰다. 너를 보내주기위해 스스로 신발장 위에 있던 열쇠를 들고 구멍에 밀어넣었나.
 
네 얼굴을 바라볼수가 없었다. 열쇠를 차마 돌릴 수 없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온 헤어짐의 시간이 밀려오자 세상이 흐릿해지는것을 보면 아마 자신은 또 눈물을 조금은 터트린 채 바닥을 보고 떨궜으리라. 열쇠머리만을 잡은 채 돌리지 못하고 한참을 그리 있다 뒤돌아 보지도 못한 채 너에게 말을 걸었다.)
 
…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죽음은, 얼만큼 괴로운지. 그래도, 견딜만 하는지.
 
(입술을 물자 아까 터져 살짝 딱지진 딱딱한 살갗이 다시끔 갈라지고, 쓰라림이 몰려왔다)
 
너에게, 해주지 못한것이 아직 많았어. 가보고 싶은곳도 많았고, 먹고 싶은것, 하고싶은것, 이제 겨우 시작한것 같은데. 그리고 돌아보니, 못되게 굴던 것들도 참 많더라.
 
 
토마 타쿠미:…그게. 그게 제일 미안했어. 제일 미안하고, 후회스러웠다. 과연 너의 이상적인 사랑에 내가 맞는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응해준 것 자체가 잘못된건지. …아직도 그에 대한 대답은 찾지 못했어.
 
있잖아 카구야.
 
(천천히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보면, 어째서인지 살짝 어둑해진 방안에 삼켜질것같은 네가 서있었다. 최대한 버림받은 개가 무엇을 꼬리쳐 난리친다 한들 달갑게 들려올까. 마지막까지 나는 참으로 이기적이구나. 결국 내가 듣고싶고, 조금이나마 네가 이어주길 바라는 이 애석한 앞으로의 자신에 인생에 있어, 물어보고싶은것이 있었다.)
 
이미 끝나버린 상태에 물어보는데에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 멍청한 선배를 위해서. 하나만 알려주면 안될까.
 
…살아있는 동안. 나와 있어 행복했어? 나를 사랑은 많이 하고 갔는가? 그건 의심하지 않고 살아도 괜찮을까. 한동안 아주 조금이나마 너는 날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그것 하나는 믿고 살아가도 될까.
 
 
토마 타쿠미:(결국 터져나오는 울음에 너를 바라보았다. 아, 정말 이제는 마지막이 될 너의 얼굴인데, 눈물이 앞을 가로막아 물속에 웅어리지는 네 모습만이 가득 차 있었다. 허나 조금이라도 눈을 비비면 그 순간에 사라질까봐 두려워 눈을 감지도 못한 채 그리 쓰게 웃으며 너를 바라보았다)
 
 
스미레코 카구야:(죽음은 어떠한가. 이 세상의 온갖 사람들도 가끔씩 생각하는 비현실적인 문장, 만약이라는 가능성, 혹은 단순한 흥미. 그 중에서도 그것과 가장 닿아있고 가까운 자신에게는 평소 무엇으로 생각해 왔던가. 현실적이라곤 할 수 없지만 죽은 이를 보고 죽은 이와 대화 할 수 있는 것 또한 저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자신도 훗날 그들처럼 되겠지. 단지 그게 아주, 엄청나게 빨리 찾아왔을 뿐. 그럼에도 대답해야 무엇이든 나아갈 것이다. 나아가지 않으면 정체되는 것 밖에 되지 않으므로.)
 
...많이, 아팠던 것 같아요. 어제같이 선명하기도 하면 또 반대로 아주 아주 오래 된 일 같거든요. 그런게 막 바뀌어요. 계속... 저는 그래요. 분명 아프고 힘들고 괴로웠는데 근데, 선배. 저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일에 후회를... 하지 않을 것 같아요. (당신을 생각해도 나를 생각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실제로 지금 이러고 있지 않나. 죽음 그 자체에 후회는 할지라도 행동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면, 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았다. 못했다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사람을 살렸을 때의 일이, 순간이나마 얼마나 기쁘고 안도되던지. 넘어서야 할 경계선에서, 현관에서 단 한발자국만 나아가면 되는 곳에서.)
 
그러니까 미안해 하지 마세요. 제가, 죽었다가 어쩌다 운이 좋아 한 번 돌아온 사람이 앞으로 살아갈 사람한테 할 말하는건 너무 이기적이고 그렇지만... 미안해 하지 마세요.그 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제게는 첫 사랑이고 마지막 사랑이고 또... 완벽한 애정이자 사랑일거에요. 제가 가장 싫은건 달로 돌아가는거에요. 가장 두려웠던 일이고요.
 
행복했어요. 그 점에 있어서 단 한치도 미안해 하지 말고 의심하지도 말아요. 그러니까 선배 나랑, (잘 보내려고 했다. 저 완고하기 짝이 없는 선배 입에서 이렇게 말하기까지, 말하게 만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던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며 이제 단 한발자국만 현관 앞에 서면 될 것을 어째서 내딛지 못했는가. 급하게 입을 막았다. 나는 방금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 미친건가? 다 잘된 곳에 재라도 뿌라자는건가? 분명 제 마음을 감추는 일엔 넌더리가 날 정도로 잘해왔는데 왜 하필 이제와서. 왜 이제와서 못할 것 같을까. 끝까지 웃으려고 했던 입꼬리가 두 손에 맞혔다. 아무렇지 않으려 했던 눈 앞이 흐렸다. 마른 곳에 굵은 물방울이 결국 기어나와 스며들지도 못한 채 손등을 타고 떨어졌다. 말하지마, 말하지마. 이제 바로 코 앞인데, 사실은.)
 
사실은 죽고 싶지 않았어. 아이를 구하는데에 있어서 절대로 후회는 안하지만 죽고 싶지는 않았어. 나는 왜 죽은거야...? 나는, 나는 왜? 사람을 구하고도 산 사람은 많은데, 다쳐도 불구가 되어도 산 사람은 많은데 나는 왜, 대체 왜 죽은거였, 어, 아, 흑... 나는 왜... 대, 대체 왜...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윽... 하는거야. 내가 뭘 그렇게, 잘못, 잘못했어. 그냥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랑하고 평범하게 일생을 보내다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평범하게 손을 잡으며 죽고 싶었을 뿐인데... 왜. 왜야. 나는 그것도 안될 정도로 불행하다는거야?
 
모르겠어. 선배가 살아있었으면 해. 살아갔으면 좋겠어. 그런데 모르겠어. 나는... 나는 그냥... 선배랑, 평범하게 사랑하며 같이 죽고 싶었어요.
 
 
토마 타쿠미:(항상 너는 솔직하지 않았지. 그 속마음을 알다가도 모를것같아 겉모습으로만 판단하고 이해하려 들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쩌면 너에게는 나의 행동이 당황스러울때가 많았고, 무거웠을때도 많았으리라. 살아생전 솔직한적 없던 네가. 결국에는 죽어서야 처음으로 원통함을, 분함을, 자신의 불행에 ‘나는 불행한 사람이니깐요’ 가 아닌 원망을 표출하는것이.)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웃음한번 지어본 그는)
 
(주먹을 꽉 지고, 손을 번쩍 들었다.)
 
 
토마 타쿠미:(살이 빠진 덕에 손을 들자 손목까지 내려오던 소매는 갑작스레 흘러 내렸고)
 
…..
 
‘-끼익’
 
‘콰직’
 
….
 
(오른손이 뜨거웠다.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다들리고 틈새사이로 공기가 통해 저려오는것을 보니, 보지않아도 제 손의 옆 날은 아마 꽤나 심각하게 찢어져 있으리라. 손을 제 자리로 천천히 내리자, 말려 올라간 소매는 다시 천천히 손목까지 내려왔다. 소매끝이 축축해지기 시작했고. 뜨거움과 차가움이 섞이자 이질적인 감각이 맴돌았다.)
 
 
토마 타쿠미:(열쇠구멍에 박혀있던, 머리만 빼꼼 나와 있던 열쇠는 ㄱ자로 굽어있었고, 단단히 구멍에 박혀 찌그러진 열쇠가 박힌 문은 열려면 꽤나 애를 써야 할것이다. 애초에, 내가 그것을 하게 냅두겠냐만)
 
사람은, 비로서.
 
죽어서 못이루는 것을 이루게되는구나.
 
그러니,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잘 안나왔구나.
 
(퍽 웃어보고 안경을 고쳐썼다. 지지리도 많이 울은 덕에 그나마 닦았던 안경알이 다시 좀 더러워졌다만.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저벅저벅 걸어가는 길에 제 오른손에 계속해서 송글 맺히며 떨어지는 핏방울이 제 움직임을 따라갔으리라)
 
(칼을 급하게 집어들면, 영화에서나 들리던 효과음이 나는구나. 새삼 신기했다. 오른손에 제법 힘이 들어가지 않을만도 한데 용감하게 이제서야 제가 원하는대로 솔직하게 불러대는 너의 모습에 아플 틈도 없었다. 참으로 그런 너에게 감사했다. 애초에, 내가 배울것이 없고 끝까지 멍청한 여자였으면 언젠가는 정이라도 떨어졌으리라. 너를 지독하게 사랑하는 많은 이유들 중 하나였다)
 
 
토마 타쿠미:(정신을 차려보면, 아마 너는 바닥에 누워있으리라, 그리고 그 위로는 내가 타올라 있고. 이미 죽은 육신에 상처가 가면 어떻게 적용될 지 잘 모르겠다만, 그럼에도 네가 다치는 것은 싫어 와중에 네 뒷 머리를 살짝 손으로 받쳐주었으리라. 네가 제대로 누운것을 확인하면, 아무래도 칼이라도 잡고 있는 내 덕에 네가 다칠까 싶어 다리로 고정하였다.)
 
조금은 생각했거든. 그러다가, 생각하는것을 그만둔적도 있었어. 아마, 네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생각하는것을 그만둔 채로 살아가지 않았을까.
 
(네 손을 빼앗어 칼을 쥐어주었고, 네가 혹여나 떨구다 다칠까 싶어 네 손을 내 손안에 가두듯 칼과 함께 힘차게 집어보았다. 다른 손은, 이미 잔뜩 피가 맺힌 손으로 칼날을 잡고 그대로 슥 내리며 제 상체를 눕혔다. 칼끝이 겨우 제 가슴팍의 옷깃을 누를 정도로 멈췄나. 딱히, 너를 무섭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몸을 낮춘 이유가 있다면 너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하필 잡아도 오른손을 써서, 활시위는 당분간 못하겠구나. 싶었다)
 
아까 내가 물어본 질문 기억해?
 
(잔뜩 베인 오른손이 아플 법 했으나, 생각보다 괜찮았다. 어두운 옷을 입은 너라서 다행이구나. 어느때보다 온화하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만이 가득했다. 이리 지속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에도, 너는 내가 살아가길 바라냐고. 너는 그 질문에 그래주길 바란다고 했지. 지금도 그러는것을 보니 그 뜻이 변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야.
 
 
토마 타쿠미:..네가 그때. 차라리 괴로워하는 나를 보고 죽자고 이야기 했으면. 이렇게 해서라도 나를 옆에 두고싶어 하는 너에게 책임감을 이어갈 필요가 없었을테지.
 
죽고 나서야 솔직해 졌지만. 그럼에도 아직 모르는게 많구나. 어리석고, 네가 뱉은 약속조차 잊어먹기를 반복하는 너구나. 그 점 만큼은 변하지 않는구나. 이상하지, 네가 살아있을때는 그런점이 피가 끓도록 화가 났는데, 이제는 고마울 나름이야. 그냥 그게 맞는거지 싶어. 너에게 나란 존재는, 그래야 하는 사람이니까.
 
(입이라도 맞추고 싶었다, 끈적할정도로 올라오는 손은 혈액덕에 더욱 잘만 미끄러져 손바닥 전체를 천천히 파고들고 찢어갔다. 조금더 슥 내려온 손은 네 손과 손잡이를 주먹쥐고있는 제 손에 도달하여 엄지로 제 손에 갇힌 예쁘고 작은 네 손을 쓰다듬었다)
 
조금, 오랜만에 머리속이 맑아지니까 깨달은게 한두가지가 아니라서. 말을 정리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말하게 되는건 미안하다.
 
…어디까지 이야기 했더라.
 
…아 그래. 무엇을 생각하길 그만뒀냐고. 그거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어.
 
 
토마 타쿠미:우리 사이에, 이 관계에 무엇이 그리 잘못된걸까. 본질적인 부분부터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국, 인간으로 태어나서 남녀가 서로 사랑하기를 택한것에 무엇이 그리 잘못된것이 있어서 이렇게 비극으로 치닿는지. 그저 네가 불운하다는 이유로는 글쎄, 나에게는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 그닥 와닿지도 않았고, 그것을 이유랍시고 끝내고 싶지도 않았어. 그래서, 본질적인 부분부터 생각하기 시작했다.
 
………
 
다가왔던건 너였으니까.
 
그게 정답이었던거야.
 
(온화한 남자의 얼굴은, 무척이나 편안해 보여서, 잠이 들기 전의 얼굴마냥 늘어진 얼굴은 슬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도서관에서 처음만났던 그날부터, 나의 비밀까지 어떻게 알았는지 다가왔던 너. 그것부터 잘못되어있었던거야. 내 잘못이지. 내가 미안해. 근데 그걸 벌써 이렇게 사과해주고 괜찮다고, 미안해하지 않다고 하니 얼마나 고마워, 카구야.
 
 
토마 타쿠미:네가 다가왔으니, 네가 이 손을 잡았으니, 이 손을 놓는것도 너에게 결정권이 있게 된거였어. 그래. 그러니까 너란 여자와, 너에게 얽힌 그 불운이 결정할수 있는 권리가 생긴거야.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 쉽지. 반대로 생각하면 되니까.
 
그래. 내가 너를 먼저 잡으면, 너를 놓을 권리도 나에게 있는거야. 너는 아직 어리석고 착해빠진 여자니 제대로 생각 할 줄을 몰라. 그것이 나쁜것은 아니야. 그래서 그걸 내가 책임지며 알려주는거고. 항상 그래왔잖아 우리는.
 
..그래. 우리 관계는 이렇게 시작했어야만 했어. 애초에 내가 찾아왔다면, 나는 너를 버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텐데. 그것에 내가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기로 했어. 나는 아직 살아있지 않은가, 그러니 살아있는 나는 너에게 그런 책임감이 남은거야. 그것을 아마 하지 못해 나는 몇년이고 분해있었겠지.
 
미안해. 여기까지는 괜찮았지만, 조금 슬픈 이야기가 남아있어. 어쩔수 없다. 이 슬픔만 잘 넘긴다면 우리는 아마 오랫동안 행복할거야. 누구에게 간섭되지도 않고, 불운이니 네가 보는 귀신이니 뭐니 그런 것들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 정도로 행복할테니 참고 들어주길 바래.
 
난 현실적인 남자다. 어쩌다보니, 우연치 않게 너를 살릴 수 있다는 꽤나 오컬트적인 방법을 찾았으나, 그래. 그건 네가 잘 알고 있을테니 간략하게 설명이라도 해주지. 죽은 너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나의 생을 소모하며, 너를 살릴수 있나 보더군. 뭐, 방법은 피로 어떻게 하느냐 마냐인데. 중요한점은. 그래. 그 비율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는거다.
 
 
토마 타쿠미:너를 살려놓고 동등하게 살다 죽으면 네 바램대로 얼마나 행복할지 싶지만. 만약, 너를 기껏 살려놓고 네가 또 먼저 가버리거나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 한마디로, 이득이 될 것이 별 없다는거야. 무엇이, 누구가, 나에게 이런것을 알려주었는진 모르겠지만, 믿고 말고를 떠나서… 그래. 이득이 없어도 아주 없지.
 
그러니까.
 
난 그걸 하지 않을거야.
 
그럼 무엇을 할까. 미안해. 여기가 너에게 지독하게 아픈 부분이다.
 
나는 아마, 네가 오늘부로 떠나간다면, 어느정도 정리를 하고 너의 뒤를 따라갈 생각이야. 안심해도 좋은 점은 아마 나는 꽤나 편안하게 갈 생각이다. 흉하지도 않고, 남들도 모르게, 어쩌면 갑작스러울 정도로 평소의 건강한 나를 되찾고 나면 따라갈 생각이야. 하지만 그런 아픔을 너에게 주고 싶진 않아. 그래서 네가 살길 원한다는 대답을 들었을때, 이 방법은 아마 좋지 않은 방법이라 생각했어.
 
그래서, 평범하게.
 
 
토마 타쿠미:사랑하며, 같이 죽고싶었다 말하는, 내가 살아주길 바란다는 네 그 대답과 그 바램에.
 
이 세상이 준 현실성 하나없는 기회를 놓쳐버리지 않고. 같이 가는건 어떨까. 그렇게 하자. 사랑을 하고, 평범하게. …평범하지 않다고 하지 말아줘. 너의 사랑도 평범하지 않다고 누가 그랬을때 아프지 않았을까. 이것은 나에게 있어 지극히 평범한 방법이야.
 
… 같이 가자. 마땅한 일이다. 이것이 나의 책임감이야.
 
평범하게, 사랑하다, 같이 죽자.
 
이 일이 후회가 되지 않도록,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도록.
 
 
토마 타쿠미:같이 가자. 카구야.
 
너는 나를 버렸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다가가도록 할게.
 
그러니, 나는 같이 가자는것을 택하고 싶어.
 
기쁘게 받아줘.
 
…이것이. 우리의,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 평범한 사랑이다.
 
 
스미레코 카구야:하지만, (새끼 손가락이든 뭐든 아무래도 좋으니 제 것을 걸고 감히 말하는데, 결코 이런 식으로 바라진 않았어. 마지막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솔직해져 이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의 생각은 어떻지? 미치거나 멍청이가 아닌 이상에야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솔직해져서 다행이라고 했을까? 천만이다. 절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어. 단지 누군가에게 말하면 속이라도 시원해진다는 정도였을 뿐인, 그런 우발적인 행동이었다. 정말 결단코 이걸 바라진 않았어.)
 
하지만... 나는, 나는 그냥, 선배가 선배가 선배의 인,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 선배. 제발. 선배... 꼭 그럴 필요는 없어. 그렇게 얻어야만 하는 사랑이라면 포기하는게 바른 길일 때도 있어. 그건, 그건 분명 정상이 아니잖아. 알잖아. 알잖아... (기어코 이 말을 뱉는다. 제 입에서 가장 잔인한 말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자기를 크게 상처 입히는 말이, 당신을 위해서. 알고는 있었다. 알고 있었는데. 장난스럽게 말한 것들이 이제와 밀려왔다. 평범하지 않고, 정상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는 이 꼴이 얼마나 처참하고 잔인하고 지저분한가. 이리저리 다리를 굴려도 제 뜻대로 움직여지는 곳이 없었다. 분명히 반항하고 있음에도 손은 털끝 하나 움직여지지 않는다. 싫어, 싫어. 이런건 아니었어. 결코 이걸 바라며 한 말은 아니었단 말이야.)
 
타쿠미 선배, 선배는 할 수 있는, 일도 있, 있고, 좋아하는 것들도, 있고... 선배를... 선배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잖아. 나는, 나는... 선배가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그 다음은 뭐라고 해야하지. 믿는다고? 그럴거라 믿을게요, 그렇죠? 뭐, 이런 식으로? 안될 걸 뻔히 아는 사람에게? 그게 무엇이든 비단 이런 결과를 바라지 않은 것은 명확하다. 차라리 그 비과학적인 이야기를 믿는 쪽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그런거라면 자신이 더 전문이니까. 피냄새가 났다. 지독하고, 지독한... 산 사람의 냄새가. 그런 얼굴을 한 주제에 감히 삶을 포기한다는 선택을 하지마. 그러면 안되는거잖아. 말도 안되잖아. 그건 일종의 기만이다. 이제 곧 으스러져버릴 이 나에 대한, 기만일 뿐이란 말이야. 그런 마음은 야속할 정도로 주인의 손을 움직이도록 도와주지 못했다. 발버둥쳐도 벗어나지 못하는 이 처지가 안타깝고 분했다. 당신의 말은 궤변이다. 문제는, 그 궤변에 항상 힘을 싫어주는건 자신이라는거였고. 또 다시 반복하려 했다. 계속, 죽어서라도.)
 
싫어, 절대로 싫어, 싫어... 절대로 이런걸 바라지는 않았어! 멋대로 말하지마, 멋대로, 윽, 흐... 멋대로... 당신은 항상 그렇게, 내가 안되는, 으, 흑... 안되는 걸 쉽게, 너무 쉽게 쉽게 해버리면서... 이런 식으로 멋대로 치부하지마! 하루도 안되는 이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내가 뭐때문에 그렇게, 노력하고, 노력, 하고... 그랬는데... 이제, 이제 코 앞인데... 싫어. 선배, 싫어... 이런 식으로 끝내지 말아줘. 나는...
 
나는 절대로 이걸 바라지 않았어...
 
 
토마 타쿠미:…….울지마.
 
왜 울어.
 
왜 울어.
 
왜.
 
왜.
 
왜.
 
 
토마 타쿠미:…시발. 도대체
 
도대체 왜 울어.
 
왜……….
 
왜……..!!
 
(아아, 모르겠다, 아주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내가, 이런 내가 무엇 하나 틀린적이 없을 터 인데. 이것이 정답이 아니야? 그러면, 무엇이. 무엇이. 이런 거지같은 상황속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하고 나까지 속이면서 제정신이 아닌 사람인것마냥 굴어서도 이게 아니라면 도대체 방법은 무엇이라는거야)
 
‘쨍그랑-’
 
 
토마 타쿠미:(칼을 저만치 던졌다. 워낙 가까이 몸을 낮춘 덕에, 너를 쥐어잡던 손과 함께 내던진 덕에, 볼과 턱밑에 칼끝이 슬쳐 길게 그어졌고, 너를 고정하던 손은 제 턱과 볼 사이를 손바닥으로 누르며 고개를 떨구었다. 파릇하게 떨리는 손, 입안은 목소리 하나 나오지 않고 뻐끔거린다. 손에 잔뜩 묻은 피가 새로 그어진 상처에 나오는 피인지, 아니면 아직도 흘러내리고 있는 피가 엉킨건지. 몰골이 말이 아니겠구나. 한참 그어진 상처를 손바닥으로 누르다가. 결국 터트렸다. 모든것을. 간신히 참고 있던 모든것을 터트렸다. 태어났을때도 이렇게 울어보지 않았으리라. 안으로 굽은 허리와 함께 온몸이 떨리자 눈물은 피와 섞여 후두둑 소리를 내고 네 볼 위로 떨어졌으리)
 
….어쩌라는거야
 
….어쩌라는거야 카구야, 카구야.
 
….제발 아아-.
 
미치겠어, 정신이 나갈것같아. 몇번을, 몇번을.. 몇번을 쳐 말해야 네 그 고집으로 가득한 귀에 들릴까. 몇번을 말해야 알아 듣겠어, 못한다고. 못산다고. 너 없이는 못 살아. 알아? 못살아. 미안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그래, 나를 포기할 정도로 너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네가 할수있음을 나에게… 정당화 하지마. 못하겠어. 못하겠다고, 젠장 못하겠어. 난, 나는..
 
나는 안돼 카구야. 제발.
 
 
토마 타쿠미:..나는 너 없이 안돼. 너 없는 하루를 다시는 상상도 하기 싫어. 죽지 못해 사는 나에게 오늘 나타난 너는 마지막으로 나를 도와주듯, 죽지 못하는 나에게 죽는것을 허락해준것과 같았다. 기쁘고, 기뻐서. 이제는 정말 끝낼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런 희망을 안겨준 나에게 살라는 너의 말이, 이해하지 못하는건 아니야. 하지만, 하지만 ..
 
나는 안돼. 못해.
 
너 없이는, 살아갈 이유가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나는, 아-.
 
윽.. 큭, 하아.
 
(숨을 쉴수가 없었다, 컥컥 막히는덕에 앓는 소리를 다 냈고 고통스러웠는지 네 위에서 한참 부르르 떨었으리라. 목소리가 터지지 않자 목을 쥐어잡듣 손톱은 한없이 피부를 파고들었고 겨우 틈세사이로 나오는 소리로 간신히 말을 이어갔다. 그래, 네 앞에서는 나도 필요 이상으로 솔직해지리라. 이제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한참이고 틀어진 너와 나의 사이를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일방적인 감정만을 앞세우기로 했다)
 
…난.
 
 
토마 타쿠미:난 그날 죽었어.
 
네가 떠난 그날, 카구야.
 
난 그날 죽었어.
 
살아있다는 것은 뭐지.
 
살아있다는 정의가 뭔데.
 
상처가 나면 이리 피로 엉켜지는것이 살아있는것인가.
 
 
토마 타쿠미:숨만 쉬는것이 사는것이라고 할수 있어?
 
죽음보다 가까운 너였잖아.
 
어때, 네가 보던 귀신과 살아 숨쉬던 사람이 많이 달라보였나?
 
인간이 아닌, 헤엄치고 가끔 공기를 머금으며 먹고 자는것을 다하는 잉어 조차
 
육신을 다 썩혔음에도 자신이 원하는것이 있어 그리 헤엄쳤는데.
 
그것을 과연 죽었다고 할수 있을까.
 
 
토마 타쿠미:너또한 원하는것이 있어 그 썩은 육신인지 뭔지 모를 것을 겨우 끌고 나에게 돌아와
 
이렇게 네가 원하는것을 바라고 그리 아프게 울고 있는데.
 
죽은자와 산 자의 차이점이 무엇이라는 말이냐.
 
나도-
 
..나도.
 
너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어.
 
 
토마 타쿠미:네 주변에도 너를 지독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친구들이, 가족들이
 
..내가.
 
내가 있었어.
 
…………………나는 그날 죽었어.
 
네가 떠나간 그날 모든 의미를 잃고 나는 죽었다.
 
 
토마 타쿠미:죽은사람에게, 제발 살아달라는 말은 현실성 하나 없잖아.
 
안그래 카구야?
 
내가.. ….내가.
 
내가 너에게 부디 살아 돌아오라고 한다면, 그래 줄 수 있어?
 
…….. 불가능해. 나에게도 같은거야..
 
그러, 윽-...큭..하..흐,흐윽….
 
 
토마 타쿠미:윽….아.. 악-...윽… 크.. 카구. 야.
 
불가능을. 나에게.
 
바라지마.
 
난 그날 죽었어…. 윽, 흐으…..큭…..
 
어떻게 해주길 바래.
 
최대한, 네가 아프지 않기를 바래.
 
 
토마 타쿠미:진심이야. 네가, 네가 아프지 않기를 바래.
 
그놈의 거지같은 ‘살아달라는’ 말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해줄 수 있어. 내가 못하는것을 바라지 마.
 
못한다고 할수록 들어주지 못하는 너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너는 못한다는 사실에 끝까지 절망할 뿐이야.
 
…..
 
 
토마 타쿠미:제…발.
 
(정신차려보면, 제 아래에 깔려있는 너의 볼을 쓰다듬으며, 입을 맞추다 떨어지고 있었다. 더욱 길게 입을 맞추고 사랑함을 애원하고 보여주고 싶었으나 끊기는 숨과 터지는 울음에 중간 중간 떨어질수밖에 없었다. 입을 맞추고 다시 한번 ‘제발’ 이라 읊으며 다시 머금고, 피로 가득찬 손으로 네 볼에 제 손자국을 그렸다. 다시 떨어지고 ‘제발’ 이라고 중얼 거리며 삼키듯 맞추었고, 그 조차 체력이 남지 않아 떨어진 그는 너를 한껏 안으며 머리카락을 쓰다듬었고, 네 어깨에 고개를 떨구며 앓는 소리를 다냈다)
 
…미안해. 미안해.
 
…………..못할것같아.
 
너 없이는. 나 너무 아파.
 
사는것이 너무 아파.
 
 
토마 타쿠미:제발, 편안하고 싶어.
 
너를 다시는 떠나고 싶지 않아.
 
이렇게 빌어….제발 윽-
 
으.. 으흑….. 아아아.
 
아아아아아아-.....
 
제발…카구야. 아아.
 
 
토마 타쿠미:아아아…….큭..하으…..으흑…-
 
아.
 
아아아..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모르겠어.
 
 
토마 타쿠미:태어나서 처음으로,
 
시작부터 끝까지, 아무것도.
 
너는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것도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토마 타쿠미:어떻게 해야할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안돼?
 
무턱되고 살라 하지 말고,
 
우리 한번 생각해보면 안될까.
 
제발.
 
제발…
 
 
토마 타쿠미:제발.
 
 
스미레코 카구야:(왜 우냐고. 왜. 왜 우냐고 물었나, 지금? 지금 그렇게 말한거야? 하지도 못할 책망만이 누구도 모르게 떠올랐다가 다시 물 속으로 풍덩 빠졌다. 감히 말하건데, 자신은 이런 이유없이 못마땅하고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익숙해져 있었다. 작은 불운도 그저 그렇구나, 한마디로 넘어갈 만큼 자신은 익숙해져 있었다. 자 그럼 반대로 생각해보자. 반대로 당신은 어떻지? 갑자기 다가온 이 불공편하고 불가능한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지? 아마도 그 안에서 답을 찾았을 것이다. 그럼 답을 찾았는데도 안된다면? 또 다른 방법을 찾겠지. 안되면 다른 것을, 또 안되면 다르게, 또, 또 그렇게. 그렇게 만약 끝까지 안된다면. ...그 때는 어떻게 되는걸까. 당신에게 있어서 이렇게까지 몰린 적 있던가. 아마 살아있는 삶을 통틀어서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막막한거겠지. 자신은 자신과 너를 안타깝게 여겼다. 이제껏 선배 덕에 험한 일 당하지 않고 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나. 그냥 내가 그 이상으로 불운해서 그것이 선배를 덮친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니까. 역시 이 세상은, 이 세상은 제게 너무 잔혹했다. 이렇게 끝까지 둘을 괴롭힐만큼이나.
 
눈물이, 커다랗고 따뜻하며 미지근한 물방울이 제 위로 떨어졌다. 그것은 비단 당신의 것만이 아니리라. 마치 제가 우는 것처럼. 알고 있었어. 사실은 다 알고 있었잖아. 그럼에도 나는, 이 모든 세상은, 그냥 이 자체가. ...당신에게 억지로 자립을 권했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지 않은가? 우연이든 뭐든 어떤 병사이든 자연사든 사람은 죽고 아직 죽지 않은 그 주변은 남는다. 남는 사람은 죽은 사람을 어찌할 도리가 없으며, 그저 그것을 딛고 어떻게든 살아가야하는게 산 사람으로서의 의무이자 도리이다. 가끔 그걸 못하는 사람들이 있긴하지만 보통은 그럼에도 산 사람은 살겠지. 나는 당신 못지 않게 고집이 쎄고 굽히지 않는다. 그게 제 울타리 안의 사람이라면, 부모님에겐 미안하지만 혈기왕성한 젊은이로서 제 연인이 제일 우선 순위라면 더더욱. 기어코 당신에게 인정을 받아내는구나.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니지 않을 수 없다. 당신 입에서, 제 선배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일은 평생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되다니. 슬픔에 막혀 질식할 것 같았다. 아니지. 익사가 좀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끝도 없는 연못에 풍덩 빠져 그대로 공기 방울을 뱉어내며 깊고 차가운 물 안에서 익사할 것 같았다. 그런 연못이라면 잉어조차 살지 않을 것이다. 괴로우니까. 맞아, 당신 말대로 살아도 살지 못하는 걸거야. 이제는 저 대신 네가 울어주는 듯 해서 마른 눈물조차 끊어져 갔다. 네가, 당신이, 너무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죽을 것 같아서.)
 
...그럼 지독하고... 낭만적이고...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불온한 희망사항에게 걸어볼까요. (그렇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방법이란, 최선의 선택지는 뭘까. 당신은 내가 아프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미 그러기엔 뭔가 많이 틀어짐을 모를리가 없다. 무엇보다 그 여자는 남자가 우선이므로, 끝까지 그를 중심으로 방도를 찾아냈다. 말하자면 제 연인을 흉내낸다고도 할 수 있겠다. 왜, 사랑하면 닮는다니까. 숨을 불어넣어주고 다시 받듯 저항이라는 것도 더는 하지 않았다. 그저 소중한 걸 껴안듯 그 머리를 껴안았지.)
 
흐, 흐흐, 흐흐흐... 아... 정말이지 낭만적이고 로맨틱해서 저조차도 감탄이, 나오네요... 영화였다면, 이게 영화였고 근사한 소설 속, 드라마 속이었다면 숨겨져 있던 복선이 튀어나와 해피엔딩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었겠죠. 그런데 현실은 아니네요. 아니었네요. 그저 받아들이는 수 밖엔. (그러는 수 밖엔. 제 선배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젖어든 제 손 안에서 머리카락이 살살 스쳤다가 빠져나갔다.) 이것도 저것도 못하겠다면, 그렇다면 불길하기 짝이없는 비현실에 우리의 마지막을 걸어봐요. (사실은 하고 싶지 않았어. 이 방법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의 삶과 생을 받아가면서까지 살고 싶지는 않았어. 당연하지 않나. 애초에 당신을 홀로서기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고민하며 찾아온 나였다. 아마 당신이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끝까지 모른 채 절망했을 그런. 그런 방법. 그런데 당신이 그걸 말했다. 어쩌면 일생 단 한 번, 나도 당신처럼 운이 좋게 흘러갔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걸까. 결국 선택하는건 당신이겠지만.)
 
이득이 없는 짓을 해봐요. 처음으로 못함을 인정했다면, 그랬다면. 그 다음으로는 불분명하고 이득도 없을 짓을 해봐요. 거기에 그냥 이유없이 걸어봐요. 정말 우연치않게, 이 세상은 아직도 선배를 사랑하고 아껴서, 잘될지도 몰라. 그러니까...
 
같이 손해보는 일을 하자.
 
 
토마 타쿠미:….
 
(천천히 일어났다. 악몽과 달콤한 꿈을 반복해서 꾼 기분이었다. 잠에서 막 깬듯, 몸의 이곳저곳이 느릿했고 브레이크가 걸린 듯 했다. 무엇하나 이제는 확신이 서지 않는 몽롱한 머리속에 천천히 일어나 여전히 제 아래에 앉아있는 너를 보면, 얼마나 울었는지 턱끝에 여전히 맺힌 피섞인 눈물이 두어번 에 볼에 떨어진다. 나는, 그런 너를 닦아주었다.
 
몇분이고 아무 말 없이 너를 바라보았나, 닦아주던 손은 이윽고 아련하게 네 볼을 쓰다듬었고. 그 짧고 소중한 시간에는 아마 많은 감정과 시간이 교차했으리라. 끓도록 달아오르다가 갑자기 식어버린 이 공간속에 공기조차 차가워 삼킨 속은 한없이 얼어갔다. 내뱉은 숨은 따스했으나, 입안은 서리가 낀듯 자잘하게 얼음조각이 씹히는 착각까지 들었다.
 
천천히, 네 손을 잡아 일으켰다. 내 손이 잡는곳마다 네 새하얀 살결에 제 엉킨 혈이 자국을 남겼다. 영 꼴이 말이 아닌 남자와 그 여자는 과연 제대로 마주어보고 있었을까. 앞으로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갈지, 앞으로의 선택이 이들에게 어떤 결과를 안겨줄지. 그들은 알았을까.
 
평생 뱉지 않을 말이라 생각했다. 불가능에 이겨보겠다는것이 아닌,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것은 불가능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철저하게 결과에 도달하기 전의 길을 탄탄하게 빗어가는것이 자신이었다. 불가능을 마주치지 않고도 가능성만을 유지하는, 그것이 그 남자의 방법이었다. 그것이 때떄로는 되지않아 몇번이고 무너지며 갈등하는것이 아마 대부분 네 앞이었고, 제 인생에 처음과 마지막의 불가능은 보잘것없는, 고작 어떤 걱정과 아픔 없이 네 손 한번 오래 잡아보고싶다는 바램이었다. 그래, 그렇게 보잘것 없고 어려움 하나 없어야 할 바램이어야 했을텐데)
 
……..
 
 
토마 타쿠미:(바뀌는것이 많구나. 너란 사람으로 나는 이리도 변하는구나. 매번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불안해 했으며, 하지만 결국 받아 들었을 때에는 잔잔한 호수 위 처럼 그보다 편안하지 않은것이 없었다. 나의 치부, 나의 첫 거짓말을 네가 알았을때, 숨못쉬어 괴로웠던 나는 그것이 죽고 나서야 평온함을 찾았고, 네가 나의 곁을 떠나려 들었을때 몇년을 다시 수면위에 올라온 잉어처럼 괴롭다며 온 몸을 비틀었지만 이번에도. 저는 아가미가 달린 잉어가 아니라 역시 숨을 쉴수 있었다. 고요함이 밀려왔고, 그것은 남자의 인생에 있어 두번째로 맛보는 평온함이었다)
 
(네 소매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하도 저에게 엉킨덕에 네 손바닥은 엉망이었지만, 옷에 잘 감싸져있던 네 손은 충분히 새하얗고 깨끗했다)
 
…하하.
 
(이 상황에도, 어이가 없으니 웃음이 다 나오는구나. 진정 못하겠다며 인정하게 만든것도 모자라 이 여자는 기어코 나의 머리로. 이득 하나 없고, 현실성 하나없는 짓을 스스로 하도록 만드는구나. 확률은 커녕 자신이 이제는 무엇을 원하는지도 흐지부지해진 상태에서 알지도 못하는 이유를 걸어야 한다니. 예전의 나라면, 하지 않을 일이다. 아니, 지금의 나라도 하지 않을 일이다)
 
(웃기게도, 살짝 펼친 제 손바닥에 깊게 베여진 상처는, 어느새 주위만 붉게 올라왔을뿐 피가 굳어 더이상 흐르지 않았다. 그런 제 손바닥을 한참 보다가 주먹을 꽉 쥐고 다시 펴보면, 굳어 으스러지는 피와 함께 다시 송글송글 작은 피방울들이 커지다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손바닥 위에 웅어리진다. 다시한번 주먹을 살짝 쥐어보면 손끝까지 질척하게 물든 피를 검지와 엄지로 살짝 눌러보았나. 진득하고, 뜨거웠다)
 
‘................ㅡ’
 
 
토마 타쿠미:(안쪽에서부터, 손바닥까지 뜨거운 혈을 그었다)
 
‘……. 斗’
 
(천천히, 피가 부족할때마다 글씨 하나 틀리지 않도록 주먹을 쥐어 충분히 마를쯤에 다시 적신 후 제 이름을 써내려나갔다. 누가보아도 그의 글씨라고 알 정도로. 정갈하고, 올곧은 글씨체였다)
 
‘......真....’
 
(획을 긋고, 새삼 새하얀 네 피부위에 제 혈은 더욱 도드라지는구나. 살아있었을때에는 워낙 따스한것에도 뜨겁다며 반응하는 너라서, 아프지는 않을지. 이질적으로 느껴지진 않을지.)
 
‘..........ノ ……………. — …………..’
 
 
토마 타쿠미:(마지막 제 이름의 두 획을 긋고 나면 검지는 네 피부위에 꾹 하고 눌려 멈춰진 채로, 자신의 인생의 시작이자 끝일 지독하게 아픈 너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될지 몰라.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고 네가 없어질수도 있어.
 
반대로, 너를 남기고 내가 사라질수도 있어.
 
웃기게도. …그래. 웃기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토마 타쿠미:많이 아프게 했다고? 알아.
 
알지만, 그건 너도 나를 꽤나 아프게 했으니. 넘어가는것으로 할까.
 
(웃어넘겼다. 그렇지 않으면 울것같았다만. 빌어먹을 시야가 또 흐려지는것을 보니 별 소용은 없었던것같지. 참으로 많이 우는구나. 입안이 마를 정도로 제 몸에 수분이란 수분은 더이상 나올것도 없는 것 같은데, 인간은 참 감정앞에 아무것도 할수 없는 생물이구나. 우는것에 살짝 지칠만도 했는지 버텨주지 않는 몸은 앉아있음에도 눈물이 터지자 살짝 휘청거렸다. 어질거리는 눈을 겨우 뜨며 몽롱하게 당신을 바라보았나)
 
아아…어쩌다가 너같은 여자를 이렇게 사랑하게 되어서.
 
..윽… 아.
 
으흑.
 
 
토마 타쿠미:..큭.
 
..…밉네. 정말 미워. 미운 여자야.
 
(빈 다른 손으로 네 볼을 연신 쓰다듬었다. 풍성한 속눈썹을 매만지고 작고 오똑한 코끝을 만지다, 작아 음식에 겨우 조그만 잇자국을 내는 입술을 만졌다. 다시 볼을 쓰다듬었고, 네 귀를 만지다, 머리카락을 걸어주었다)
 
(마지막 몇획을 남긴 제 적다만 이름위에 검지를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입술을 한참 꾹 깨물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이제는 정말, 정말 흐를것도 없는지 마지막 눈물이 볼을 타고들어 턱끝에 맺힌다)
 
…..괜찮을까, 우리.
 
괜찮을까. 원망하지 않을거지.
 
 
토마 타쿠미:아무런 방법도 결국 찾지못한,
 
나를. 너를. 우리는.
 
……괜찮겠지.
 
(결국, 고개를 차마 들지 못하고 떨구며 부르르 떨었다. 처음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그는 눈을 감고 누구에게 그리 기도를 했는가)
 
..신이든 뭐든. 제발, …. 그녀를 더 이상 괴롭지 않게 해주시고, 빌어먹을 저에게 그녀와 다른 행운을 주셨다면. 제발. 헛된짓이 아니게 해주세요. …. 제발. 제발…
 
(그렇게 아슬하게 맺힌 마지막 눈물은 톡 소리를 내며 바닥에 흔적도 없이 스며들었다)
 
 
스미레코 카구야:자신이 아니라면 누구든 타인이에요. 사전적 의미에서도... 무엇으로도. 선배. 우리는 결국 타인이기 때문에 완전히 이해한다는건 아주, 아주 어려운 일이에요. 잘 아시잖아요. 사랑하면 닮다는건 상대방에게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그래서 그런가보다. 우리는 그래서 서로를 아프게 하는거야. (닮고 싶지 않은 부분을 닮았을지라도. 당신도 그러하겠지만 자신도 손바닥 뒤집듯 기분이 넘나들었다. 이게 산 사람의 특권인걸까, 그게 아니면 그저 생명을 가진 존재 자체가 본래 그런걸까. 사람이란 생물이란 대단히 모순적이지 않던가. 더이상 남을 속여먹을 체력이 없는건 저도 마찬가지기에 얼굴 하나 제 뜻대로 하지 못했다. 아마 그래서 그랬던건지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 사람이라도 된 마냥 그 다정하다 마지 않을 손에 제 얼굴을 대고 낮고, 얕게 웃었다.)
 
...하지만, 그래도. 저를 사랑하죠? 나는 사랑해요. 이렇게 아픈 것 밖에 남지 않는 사이인데 그래도 저는 사랑해요. 원래 미친 사람을 상대하려면 자신도 미쳐야 하는 법이에요. 미운 여자를 상대하려면 자신도 미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거죠. 저, 이런 분야에 전문이잖아요? 후흐, 흐흐흐... (채 어디가서 보여주지 못할 꼴을 하고서 뭐가 그리도 좋은지 웃어댔다. 정말 미친걸까. 드디어 이 여자가 미친걸까. 적어도 미치지 않은건 아니었을터였다.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여자였다면 이 모든 행동을 하지 않았겠지, 상대가 그걸 원치 않거나 방법을 없애도 끝까지 홀로 설 수 있도록 했겠지. 아마도 그 피로 당신의 이름을 써야하는거겠지. 우습지 않나요. 그럴 작정으로 낸 피는 아니었겠지만 결국 써먹는다는 것이, 결국 최악의 상황에서 그나마의 차악을 끌어내 선택한다는 점이. 역시나 이 세상은 당신을 위해 돌아가는거야. 퍽이나 다정한 손길이었다. 자신이 받은 것처럼, 당신이 해준 것처럼. 여기에 당신의 이름을 써야한다면 그 마지막은 내가 대신 장식해주리라. 다시 겹친 손 안에 이제 서늘한 날은 없다. 당신처럼은 못되지만 아주 잘 보이도록 마지막 한자음을, 이름을 죽 그어내듯 적었다. 그거 아시나요. 이번이 두번째임을. 첫번째는 돌아갈 달을 없앴고 두번째는 나갈 현관문을 없애버린 것. 그 길은 네게 없었다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괜찮아.
 
 
토마 타쿠미:(크게 다른 말이 따라오지 않았다. 평온할리가 없었다. 찢어지게 원하도고 쉽사리 내주지 않는 둘이 감히 어떻게 이런상황에 평온함을 느낄리가. 허나, 폭풍이 지난 바다의 수면처럼 잔잔했다. 그저 아주 작은 파도가 가끔 으스러지게 퍼질 뿐. 그저 네 손을 그리 잡고, 부디 마지막이 되지만 말라며 그 수면위에 몸을 맡겼다.
 
달에 돌아가기 싫어하는 너를 위해 일찌감치 돌아갈 곳 조차 없는 하늘 위 달 마저 부셔버렸다. 결국 떠나버린 너였지만, 조금이라도 제 곁을 떠나지 말라,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현관문을 없애 순간 너와 나의 세상은 작지 않지만, 마냥 크지도 않은 적당한 두사람많이 먹고 살기 좋은 방안을 둘만의 세상으로 만들었다.
 
멋있는 말을 해야할까, 아니면 길이길이 기억될 말을 하는게 좋을까. 웃기게도, 일찍이 머리가 돌아가지 않은 자신이었다. 근사하게 포장되는 말이 아닌, 단순하고도 담백하고 나온 그 몇마디. 그게 전부였다)
 
…달을.
 
달을 없애니, 어디에 가도 이 세상 땅만 닿는다면 못찾지 아니할 너라서 안심했어.
 
현관문을 없애니, 이제는 넓은 세상이아닌 작은 방 정도의 크기가 우리들의 세상이 되어, 더욱 너를 닿기가 쉬워졌다.
 
 
토마 타쿠미:안심하고, 평온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만.
 
점점 좁혀져 가는거겠지.
 
그러면 이번에는, 아주 작은 공간에 너와 나만 남아,
 
숨만 쉬어도 코끝에 닿을 그런 세상에 만나자.
 
카구야. 네가 몇번을 도망쳐도.
 
내가 꼭.
 
 
토마 타쿠미:….내가 꼭.
 
닿을수 있도록 할게.
 
사랑해. 카구야.
 
(입이라도 맞추면, 마지막의 작별인사가 될까봐, 그저 코끝이 닿는 거리에서 네 이마와 제 이마를 지근 누르고 그렇게 속삭였다)
 
 
장면전환
 
 
그는 당신에게 순순히 팔을 주어,
 
 
그리고 스스로 그 이름의 끝을 맺습니다.
 
 
붉은 선이 팔뚝을 따라 그어 내려지고,
 
 
그 손바닥에 한 획씩 당신의 이름이 그어 내려집니다.
 
 
그의 얼굴이 웃는 것 같습니다만,
 
 
당신의 후배는 끝내 솔직했어도,
 
 
그럼에도 여전히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의 감정은,
 
 
체념.
 
 
슬픔.
 
 
미안함.
 
 
무언가에 대한 실없는 희망.
 
 
그러한 것들입니다.
 
 
모든 문자가 새겨 지면,
 
 
그것은 마치 영혼에 새겨진 각인처럼
 
 
피부 속으로 스며듭니다.
 
 
당신은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의 얄팍한 피부 아래의 고동이,
 
 
이제는 오롯이 당신의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요.
 
 
우리는,
 
 
어디까지 살아나갈 수 있을까요?
 
 
어디까지,
 
 
살아 나가볼까요.
 
 
ED 3. F
 
 
KPC, PC 생환?
 
 
refinement:둘은 208 시간 후에 죽습니다.
 
 
2022. 7. 4 PM 10:53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