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C
작성일
2021. 5. 6. 03:06
작성자
굔정뱅이

2021.5.4 [루시베타] 여름, 꽃,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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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정말로 준비 됐다면 저널바꾸고 캐입으로 이모 화이팅! 해주기!
 
루시 칼드웰:.... 저 알아요? 아 하여튼 이모 화이팅-! (;;)
 
그래 우리 멍멍아 성격 안죽었네... 이모 힘낼게 시작합니다!
 
△▲△▲△▲△▲△▲
 
2021.05.04 PM 4:50           루시베타 - 여름, 꽃, 우울
 
 
당신은 눈을 뜹니다.
 
방과 후,
 
아무도 없는 교실입니다.
 
지금 시간은 7시 23분.
 
창에 쳐진 커튼에 노을의 붉음이 베여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린 커튼이 스치는 소리만이 들려옵니다.
 
그에 따라 붉은빛이 일렁이며
 
어두침침한 교실 안으로 흘러듭니다.
 
깜빡 잠이 들었나 봐요.
 
슬슬 집에 돌아갈 시간인데,
 
그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요.
 
그때,
 
당신의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립니다.
 
그의 문자 메신저입니다.
 
확인 해볼까요?
 
루시 칼드웰:(비몽사몽한 눈을 어렵히 뜨며 매미소리와 어우러지게 시끄러운 제 폰을 들어본다)
 
미리보기는 일찌감치 지나가 사라져
 
사라져 내용이 왔다는 아이콘만 상단에 표시됩니다.
 
그것을 확인하면
 
그의 이름으로 된 대화방에 남아있는 단 두개의 문장.
 
PM7:23 좋아해.
PM7:23 그러니까 우리, 다음 번에는 정말 만나지 말자.
 
내용은 그걸로 끝입니다.
 
커튼 너머로 사람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갑니다.
 
루시 칼드웰:....아?
 
방향은 아래쪽.
 
누군가 추락합니다.
 
눈 깜짝할 사이였습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둔탁한 충격음.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만큼 아무렇지 않게,
 
무심하게 들려오는 소리였습니다.
 
평화롭게 흔들리는 커튼,
 
이마를 간지럽히는 산들바람,
 
아찔할 만큼 붉은 노을의 색채…
 
그가 사라진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갑니다.
 
2020년 8월 4일,
 
그 달의 첫자락.
 
그렇게 너는 순식간에 나의 인생에서 사라졌습니다.
 
장면전환
 
 
당신은 눈을 뜹니다.
 
공기가 불쾌하게 호흡을 방해하는 것만 같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에 눈이 따갑습니다.
 
오늘은 그의 기일,
 
그 아이가 사라진 지 딱 1년이 되는 날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당신은 집 안을 살필 수 있습니다.
 
당신의 방에는 침대, 책장, 책상이 있습니다.
 
루시 칼드웰:(잊을 수 없는 이유는 단순 그 아이의 존재에 대한 기억보다, 네가 떨어진 그날의 하늘은 세월이 지나도 똑같게 흐리다가 맑고 탁해지는지라 그렇게 세상은 억지로라도 너를 각인시키고 또한 무마하듯 반복되며 지내왔다. 일어나 다소 옅게 쓴맛을 주는 공기를 삼키며 제 몸을 가볍게 누르던 이불을 치운다. 그닥 무엇을 적어내리는 성격은 아닌지라 새것처럼 하얀 달력에도 유난히 달리보이는 오늘의 하루. 그저 잠기운인걸까, 생각보다 오늘의 몸은 무겁지 않다)
 
...음.
 
(웃기게도 제법 착실한 나여서, 구겨진 이불을 털고는 자연스레 침대를 정리하듯 살핀다)
 
summer:당신이 깨어난 침대입니다.
이불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습니다.
뭐, 그것도 잠깐이네요.
어느 새 반듯해진 이불보가 놓여졌습니다.
침대 위에는 당신의 휴대전화가 충전되어 있습니다.
 
루시 칼드웰:(눈에 보기 좋게 정리된 침대. 만족스럽다. 몸을 가볍게 털고 마지막으로 이불끝을 조금 피며 일으키며 자연스레 핸드폰을 확인한다)
 
summer:휴대전화의 오늘 일정에 '납골당 방문' 알림이 떠 있습니다.
우습게도, 그의 번호도 아직 남아있습니다.
 
루시 칼드웰:'납골당 방문'
 
(알고는 있었지만, 까먹기라도 할까 두려워서인지 그저 누가 탓하지도 않을 죄책감에 맞춰둔건지, 어이가 없으면서도 읽는 와중 손끝이 작게 무거워지는것을 보니 아침의 가벼운 몸은 그렇게 오래 갈지 않을 것 처럼 보인다)
 
....
 
 
루시 칼드웰:(나도 알아, 라고 중얼거리며 일정을 밀어버린다. 밀어버린 손끝에 보이는 너의 메세지가 아직 들어있는 어플을 보고 괜시리 누를까 망설였지만 아마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제 맨 밑의 대화창에 남아있을 너의 흔적을 아직 보기에는 너를 만나러 가는 날이 무거움만으로 가득하길 원치는 않아 핸드폰을 도로 제 주머니에 넣는다)
 
(책상으로 다가간다)
 
summer:책상 위에는 달력과 메모지 한 장빈 편지지가 놓여 있습니다.
 
루시 칼드웰:(메모지 한 장을 확인한다)
 
summer:납골당의 주소와 가는 방법이 적혀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한 번 환승해야 합니다.
 
루시 칼드웰:(준비도 철저한 새끼. 메모를 한번 접어 제 핸드폰이 들어있는 주머니에 넣어본다... )
 
무슨.
 
(빈 편지지를 확인하며)
 
summer:잊어버리지 않는건 중요하니까요.
제일 위에 사라에게. 라고 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그에게 전할 편지일까요.
 
루시 칼드웰:...지랄이다 지랄.
 
(어이 없어라. 지금도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마 과거의 자신은 조금 더 솔직하게 표현했나 보다. 편지까지 쓸려고 하셨을까. 그럼에도 이름만 쓰고 결국 이렇게 빈종이로 하늘과 함께 그렇게 맑고 조용하게 지내왔겠구나)
 
쓸거면 확실히 쓰던가...
 
 
루시 칼드웰:(누구 둘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결국 나에게 하는 말인데. 조금의 낯간지러움과, 그럼에도 한때 무엇이라도 해볼까 발버둥친 제 모습이 그리 싫지는 않아서 가져가보면 마법처럼 네 앞에서 쓰고 싶던 글들이 물들여질까 싶어 이것도 가져가야겠다 싶다)
(책장을 살핀다)
 
summer:글쎄요. 그 당시 어떤 의중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다 날씨 탓이겠죠.
책장에는 당신의 책들이 가득 꽂혀 있습니다.
 
<자료조사> 판정 합니다.
 
루시 칼드웰:
자료조사
기준치: 20/10/4
굴림: 56
판정결과: 실패
 
이어 <관찰> 판정 합니다.
 
루시 칼드웰: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summer:당신은 책 한 권을 발견합니다.
제목은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입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연인을 구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다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루시 칼드웰:'하필 눈에 들어와도 저런게 들어오고 지랄이지'
 
(지금의 나라고 다르다 할 수는 없지만, 아마 그 날 이후로 한번도 펼쳐본적 없을 책이다)
 
'콜록-...'
 
 
루시 칼드웰:(무심코 열어본것이 내 잘못이지. 햇살 사이로 먼지가 제법 운치있게 날리지만 안그래도 맛없던 공기에 잔기침까지 하니 괜시리 하루가 길어질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먼지들을 불어보며, 펼친 책 속 문장이라도 눈에 들어올까 싶어 도망치듯 빠르게 책을 닫아 조금더 구석진 곳에 책을 멋대로 구겨넣는다)
 
갔다와서 정리라도 해야지. 목아프게 젠장-...
 
(투덜거리면서도 제 스스로 행동이 조금은 뻘쭘하듯 몸을 털고는 이제 가볼까 하는 찬라, 엿이라도 먹이겠다는건지 눈앞에 들어온 달력. 누가 여기다가 뒀는지, 누구긴 누구겠냐 나겠지 젠장-..)
 
summer:오늘 날짜에 '그 애의 기일'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오늘따라 꼼꼼하네요. 그 애 일이라서? <지능> 판정 합니다.
 
루시 칼드웰: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65
판정결과: 실패
 
summer:맞아, 당신은 그의 납골당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었죠.
분명 어젯밤에 가는 길을 알아보다 잠들었습니다.
 
루시 칼드웰:(괜시리 저마다 온전히 그아이를 가르키는 것에 조금은 화가 난다. 너를 잊기 싫어서가 아니라, 멍청한 나는 아마 너를 잃는것이 두려워 이렇게라도 단순하게 흔적을 남긴건가 싶어서. 질척거리게도 나는 너를 한번도 잃은 적이 없음에도 온통 과거부터 현재의 나는 너를 잃지 않겠다고 발버둥 친것이 괘씸하고도 한심하다. 역시 시간이 답이라는 흔한 말이 맞는걸까, 현재의 나는 너를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보타 일년이라는 시간속 잠시나마 그날을 다시 봐도 너에게 해줄것 없는 나라는 현실을 받아드리기가 무서운것 뿐이라는걸)
 
'그게 거기서 거기지만-'
 
(스스로 물어보고 말하고, 잘도 하는구나. 중얼거리며 달력을 놓지않는다. 먼지묻는 손가락으로 네 이름을 쓸어내린다. 다시한번-)
 
좋아요. <지능> 강행 판정 합니다.
 
루시 칼드웰: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summer:흠, 뭐.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요?
슬슬 나갈 채비를 하도록 해요.
여름이라 해는 늦게 지겠지만 바쁜 하루가 될테니까요.
 
루시 칼드웰:(저 하나 쓰는 방에서 참으로 잡생각도 많이 하는구나. 이러다가 나갈수는 있는지. 달력을 내려놓고 나갈 채비를 한다. 웃기게도 그렇게 궁시렁 거린 주제에 입을것, 가져갈것 등등 다 준비해놓은 착실한 자신이라, 그리 나갈 채비를 하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다)
 
음. 오케이, 가자.
 
(다행이도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이 마냥 무겁게만 싶었지만 우습게도 거울앞 말끔히 차려입은 제 모습을 확인한다. 너를 만나는 길이 어떠한 길이라도 여전히 나에게는 아프지만서도 설레이는 길인지라. 오랜만에 느껴보는 간질거림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 오래가진 않겠지만서도)
 
준비를 마치고 집 밖으로 나오면,
 
푸른 하늘이 펼쳐집니다.
 
한없이 맑은 깨끗한 여름날의 아침 하늘입니다.
 
그래, 분명 이런 풍경을 봤었죠.
 
그때는 그 아이도 함께 있었는데.
 
어떤 표정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던가요.
 
분명 그때…
 
장면전환
 
당신은 등교 중이었습니다.
 
푸른 하늘과 아무렇지 않게 흐르는 구름.
 
눈이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는 햇빛과
 
지면에서 올라오는 후끈한 열기.
 
어디선가 들리는 매미소리.
 
그 아찔한 푸름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던 것도 같습니다.
 
<듣기> 판정 합니다.
 
루시 칼드웰:
듣기
기준치: 45/22/9
굴림: 3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요란한 매미 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누군가의 다급한 발소리를 듣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가 뚱한 얼굴로 노려보며 뛰어옵니다.
 
당신의 옆에 바르게 선 는 다 들리도록 콧방귀를 흥, 하고 뀝니다.
 
땀방울이 의 턱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사라 발렌티나:몇 번이나 불렀는데, 그걸 못 들었니? 너 때문에 뛰어왔잖아.
 
루시 칼드웰:알겠네, 땀범벅이라. 운동도 하고, 좋잖아? (큭큭 웃으며)
 
사라 발렌티나:(뭐지? 왜.. 까불지? 진심을 반.. 정도 담아서 주먹쥐고 옆구리 친 다음 흥! 하고 자기 먼저 가는...)
 
루시 칼드웰:(신음 소리 하나 없이 제 옆구리를 쥐면서)
 
아오 씨, 너 손 맵다고 내가 존나 말했는-...어?
 
(멀어져 가는 너를 보며 정신을 차리듯 멀뚱 바라보다는 늦게 발걸음을 옮긴다. 여전히 옆구리는 많이 아프고.)
 
 
루시 칼드웰:야, 사과해. 사람 치고 가는게 어딨어? 야? 저기요?
 
사라 발렌티나:어머. 무슨 일이 있었나? 매미소리가 너무 커서 뭐가 뭔지 전혀 못들었네. (사과할 생각은 요만큼도 없어보이고 뻔히 보이는 핑계를 얼렁뚱땅 대는 꼴을 보아하니 일부러 그러는게 확실하구나, 싶다. 말하자면 심통을 조금 부르는거라고 해야할까. 보란듯이 제 머리카락만 등뒤로 휙! 넘기고)
잘잘못은 따지자면 사람이 불렀는데 대답도 없거나 땀범벅을 보면서도 웃는 사람 쪽이 더 잘못이 큰거 아닐까, 싶은데? (오... 명백한 저격!)
 
루시 칼드웰:뻔뻔한거 봐...
 
(아차, 들었을래야 옆구리를 쥐던 손은 자연스레 제 입가를 가리며 눈치를 본다. 그래, 시끄럽던 매미의 소리도 이럴때는 도움이 되는구나)
 
(듣고보니 맞는말 뿐이지만, 그래도 옆구리가 아픈것이 먼저인지라. 아니 그래도, 정말이지 맞는말이라서 자신 답지 않게 너앞에서는 오늘도 한없이 말을 더듬을수밖에 없지)
 
 
루시 칼드웰:이제와서? 눈에 보이면 보이는대로 말하는거 알만하지 않아? 젠장-... 그렇게 땀범벅 소리 안낼려면 그 긴 머리라도 묶던가.
 
(힐끗, 더워죽을 빌어먹을 여름임에도 어째서 신기하게 네 머리는 마다하지않고 엉키는 곳 하나 없이 저리도 뻔뻔하게 넘기는지. 중얼거리며 제 근처를 살랑이는 머리카락을 만지며 중얼거린다)
 
존나 더워보인다-... 묶어라 좀. 내가 묶어줄까? 어울릴것같은데.
 
사라 발렌티나:말돌리는거 봐. (말 돌리는걸 보면 할 말이 없나보지? 그렇게 따지고 들듯이 말할 뻔 했다가도 일부러 네 말을 따라하듯 되갚아 주자니 그래도 꽤 상쾌했다. 네가 봐주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중요한건 오늘도 자신이 이긴 흐름이니 만족스러워 하는걸로 덧붙이지 않았다. 사실, 누가 제 머리카락을 만지면 손이라도 쳐내고 째려봤을텐데... 너니까 봐주는거지. 아래춤에서 힐끔 올려다보곤 대수롭지 않게 다시 휙 돌아 걸었다. 보폭이 느려진걸 보면 허락이라 봐도 좋을 법하지만 솔직하지 못해서.)
등교하다 말고 길가에서 무슨. ...그래도 뭐! 네가 먼저 말을 꺼냈으니 특별히 만지는걸 허락해줄게. 얼마나 잘하는지 보겠어.
 
루시 칼드웰:아이고 범생이 나셨어. 아니, 그리고 내가 무슨 지금 길가에서 당장 하자고-... 아?
 
(뭘 해도 거절이니 아니라고 토를 다는 너인지라 그렇게 승낙해줄거란 생각 없이 물어본것을, 진짜 해도 되는거야? 어이 없어 가던 길을 다시 멈추자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너로인해 손가락에 좋게 휘감겨 오던 머리카락이 절로 풀려간다)
 
어? 진짜로?!
 
 
루시 칼드웰:(천천히 앞장을 보며 걸어가는 네 뒤에 한없이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는다. 여름내음에 제법 잘어울리는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속에서 아싸- 라며 작게 중얼거린다)
 
하, 놀라서 매일 부탁하지나 마. ...라고는 말해도 나 처음인데.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바스러질것같아 괜시리 네 머리카락을 힘주어 잡지 못하고 마치 허공을 가르듯 네 머리카락을 천천히 모아본다. 좋게 모여지는 머리카락에 집중할려던 찬라 가려진 머리카락 사이로 조금은 땀에 젖은듯한 네 목덜미를 보자니 괜시리 오늘이 여름이라는게 다행이다 싶다)
 
 
루시 칼드웰:흠- 흠흠...
 
(정신차리자, 정신차려. 지금 표정을 들키자니 옆구리가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아서)
 
.... 야, 나 근데 머리끈같은거 없는데. 어? 어 야 지금 이거 놓으면 나 다신 못할정도로 지금 제법 좋게 잡았는데 어- 아 제기랄 그니까-
 
 
루시 칼드웰:(형편없음에도 제손길에 완성된 네 모습을 놓칠까 한없이 중얼거린다)
 
사라 발렌티나:본인이 먼저 물었으면서 다시 말하지마렴. (괜히 듣는 쪽이 더 창피해지니까. 필요없는 속마음을 평소처럼 삼키면 당연히 쏘아붙이는 말 밖에 남지 않겠지만 그런다고 네가 거기에 신경쓸 타입도 아닐거 같아서 크게 걸리지도 않았다. 애초에 이 생각 자체가 무례했지만 자존심이 높은 사람이 그걸 알리가 없지. 아닌 척 하면서도 뒤쪽에 서서 졸졸 따라오는 모양새가 된 너를 훔쳐보기도 했지만 새삼 정말, 저렇게 웃는걸 보면 개가 따로 없다고 해야하나. 큰... 큰 개. 개 같다. 그리고 여름이랑 잘 어울리는, 그런 같은 반 동급생.)
아니, 처음이라고 뻔히 말할거면 그런 뻔뻔함은 보이지 말지 그래. 그건 그냥 근거없는 자신감이라고 하는거야. (그래도 뭐... 시원하네. 제대로 하는지 못하는지도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훤하게 들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바람이 불어 괜찮은 기분이었다. 미적지근하고 후더운 열기가 담긴 바람이었지만 덥긴 더웠나보지. 묶으라며 허락한건 제 쪽이라 지금와서 고개를 휙 돌리며 빨리 안해? 라고 재촉하는 것도 조금, 그랬다. 그래서 네가 뭘 하고 어딜보는지도 모른 채로 점점 걸음걸이만 늦어졌을 뿐.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도 않아 황당하기 그지 않는 발언을 들은게 아닌가. 결국 조금 돌아보며 약간, 아주 약간! 경멸이 담긴 눈으로 뭐하는 짓이냐는 얼굴로 봐버렸다.)
... ...하. (와중에 놓치지는 않다니. 능력이 좋다고 해야해, 말아야해? 이 아이.. 대체 왜이렇지? 그러니까, 왜이렇게 멍청하지? 평소에 좀 더 뭐랄까, 잘하지 않나? 결국 제 왼손을 휙 들어보이며 검은 고무끈을 흔들거렸다.) 원래부터 여차하면 묶으려고 이 정도는 항상 가지고 다녔어. 네가 묶어준다고 하지 않았어도 말이지.
 
루시 칼드웰:아.
 
(제 시야에 갑작스레 들어오는 고무끈에 솔직히 쫄아서 머리카락을 놓을 뻔 했을지도... 어쩜 사람이 저렇게 칼같을련지. 무서운 놈.)
 
야, 내가 머리끈같은거 가지고 다니게 생겼어?!
 
 
루시 칼드웰:(여름의 날씨라 치자, 조금은 버럭거림에 제 손에서 머리카락 몇가락이 슬쩍 떨어진다. 아, 젠장...)
 
아니, 그렇게 말해도 그럼 그간 그 긴 머리 볼때마다 묶어보고싶다고 하루하루 머리끈 가지고 다녔게?
 
...아.
 
 
루시 칼드웰:(멍청이, 멍청아. 멍청아 이 존나 멍청한 자식아. 물론 어느순간 부터 눈에 들어올 수 밖에 없는 머리카락에 관심은 많았고, 솔직히 날씨가 더워짐에도 머리묶은 너도 보고싶다는 생각은 진작에 했지만 이놈의 주둥이는 생각하는것을 그만두지 않고 그대로 또 나오는구나)
 
....아 하여튼! 있으면 그냥 주, 주든가 젠장.
 
(창피함을 얼무리듯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여름의 날씨라 치자며 스스로를 다독인뒤 네 손에서 고무줄을 낚아챈다. 한손으로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을 잡고 고무줄로 그것을 고정한다. 조금은 잡았던것과는 다르게 느슨한 느낌이 있지만 이정도는 처음인데 잘한것같지 않아? 그렇게 제 입에 나왔던 발언은 까먹은체 이번에는 얼굴에 대놓고 쓰듯 너를 대형견마냥 바라본다)
 
 
루시 칼드웰:... 야, 존나 잘된것같은데? 잘어울린다. 예쁜데? 거봐 내가 잘 한다고 했어 안했어? 하하
 
(딱히 못할거라고 한 적도 없지만 제 첫 작품이 나름 마음에 들었는지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이 묶은 머리카락 끝자락을 만지작 거린다)
 
좋아. 여름이 끝날때까지 네 머리카락 묶는거는 이몸이 해주도록 하겠어. 아싸-
 
 
루시 칼드웰:(음-! 팔짱을 끼고는 너를 바라본다. 거절도 허락도 없었지만 그의 기분은 마냥 좋아보이니 내버려 두는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사라 발렌티나:... (솔직히, 아주 솔직히 돌아보자면 머리카락을 묶어준다고 했을 때 먼저 묶을 끝은 있니? 따위를 물어볼 생각이긴 했었다. 그런데 너무 자연스럽고 자신만만하길래 뭐라도 있는 줄 알았지. 근데 그런 제 넓은 아량과도 같은 사고를 아주 아무렇지도 않게 틀어버리는구나. 대체 뭐가 그리 걸리는건지 딱히 알고 싶지도 않은 그 속마음을 알아버린 자신은 또 뭐란 말인가? 무슨 벌받기야? 창피하게 하는 벌인거야? 네가 한 말인데 왜 나까지 부끄러워 해야해? 기가 차서 말도 안나왔을 뿐인데 멍청한 표정을 보이는게 싫어 일부러 힘을 줬으니 어쩌면 아까보다 더 심한 얼굴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대답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오죽했을까?
...그래도 뭐, 솔직히 아주 조금은 귀엽다고 생각... ...하지 않지! 미쳤나? 미친게 분명해! 더위를 먹은거야! 결국 깔끔하게 묶어줄 때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네 손길을 받아들이고 눈썹 사이에 힘만 주는게 다였다. 너든 누구든 남들에게 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냥 한 곳으로 모아 묶을 뿐인데 땡볕 아래, 등교하다가 이 무슨 일인지. 머리끈이 있었던, 이제는 텅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손을 다시 놀려 제 머리카락을 앞으로 쓸어 당겼다가 묶은 부분을 더듬거렸다. 쏘아붙이는건 쏘아붙여도 잘한 점에는 솔직하고 객관적으로 말해주려고 했다. 했는데... 방금 엄청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 않았어? 나만 아는거야? 왜 말한 본인은 몰라? 꽁해있듯 부르르 떨었다가 주먹이 아니라 가방으로 냅다 휘둘러 배에 박아 넣었다.)
예, 예쁘, (예쁜데?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거야? 어이없어! 진짜 어이없어! 앞으로도 계속 해주겠다고 은근슬쩍 끼워넣는 것도 마음에 안들고! 입만 뻐끔뻐끔 고장난듯 삐걱거렸다가 빼액 소리를 지르고 냅다 달렸다. 묶어준 은혜도 모르고...)
바, 바보, 바보야! 나 따라오지마!! 따라오면 죽을 줄 알아!
 
루시 칼드웰:억-
 
(호탕하게 웃는 소리도 잠시, 아까의 옆구리와는 다르게 웃을려 삼킨 숨은 억 하는 소리와 함께 크게 뱉어진다. 정신이 아찔하다. 나 방금, 저 아이의 가방으로 얻어 맞은거 맞지?)
 
야, 야 잠시 어디-...
 
 
루시 칼드웰:(말이 이어가질 않는다, 더불어 폐안에 뜨거운 공기까지 들어오니 죽을 지경이지 이게. 나름 괜찮게, 청춘스럽게 가는거 아니였어? 왜 엔딩은 항상이지 저 아이의 힘을 과시하는것으로 끝나는건지, 곧잘 달려가서 뭐라도 따지고 싶지만 안그래도 들어있어봤자 두꺼운 책밖에 더할뿐인 가방을 그렇게 진심으로 휘둘수가 있는가. 너에겐 미안하지만 낯간지러우면 어쩌냐, 느끼는 그대로 말하는게 나인것을 너도 잘 아는 주제에 매번이고 잊을 만 하면 저런 반응을 보여.)
 
.....이, 이게 진짜 등교길에 사람을 두번이나 쳐- 야, 야-!!!!!!
 
(이제서야 나오는 목소리를 겨우 뱉어내며 식은땀은지 여름의 뜨거움에 흐르는 땀인지를 한참 손등으로 닦으며 벌써 멀어져간 너를 따라간다. 아니, 작은 주제에 달리는거는 왜 또 저리 빠른지, 볼때면 매번 책읽는것이 다 인것 같던데)
 
 
루시 칼드웰:사람을 쳐놓고도 모자라서 바아보오?! 바보?! 그래 너 잘났다 이 책벌레야 칭찬을 해줘도 뭐라고 해- 야 너 내 말 안듣지, 어디가?! 야!!!!
 
(매미소리는 작아진지 오래, 꺅꺅 거리는 너와 버럭이고 소리지르는 자신. 학교에 다가갈수록 저둘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아지고, 같은 교복을 입고 걸어다니는 이놈 저놈 사이들에 너를 놓칠까 괜한 걱정을 했지만 유독 묶었음에도 보기 좋게 날리는 머리카락을 놓치지는 어렵겠구나 싶다. 그래도 조금은 청춘같아 싶어 아픔도 잠시 어째 네가 그리 갑자기 말을 더듬으며 나를 떠나 토끼마냥 뛰어가는지, 그런 너에게 뭘 원한다고 나는 죽어라 이 더운 여름속에서도 너를 향해 뛰어가는지 이유와 목적은 까맣게 잃어, 큭큭 웃어본다)
 
햇빛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그 아래를 뛰어가고 있는 두 사람의 얼굴에 땀이 맺힙니다.
 
달콤한 향이 나는 것 같아요.
 
그래,
 
분명 너는 이렇게 나와 길을 걷고 있어야 하는데.
 
올해의 여름에도 내 곁에 있었어야 했는데.
 
너는 어째서,
 
… …
 
장면전환
 
눈을 깜빡이는 순간,
 
풍경이 뒤바뀝니다.
 
당신이 있는 곳은 집 앞.
 
여전히 푸른 하늘에 아무렇지 않게 구름이 흐르고 있습니다.
 
여전히 요란한 매미소리와 간간히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줄지어 선 가로수의 잎들.
 
평화롭게 흘러가는 여름의 풍경입니다.
 
환각이라도 본 것일까요?
 
버스정류장은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주위를 살피면 벤치와 버스노선표가 보입니다.
 
당신은 벤치에 앉아 있습니다.
 
루시 칼드웰:아, 존나 덥네-...
 
(앉지말걸 그랬나, 달아오른 벤치에 다시끔 여름이라는걸 알게 해준다. 딱히 잊은적도 없는데 말이지 빌어먹을.)
 
...어디보자.
 
 
루시 칼드웰:(중얼거리며 버스 노선표를 본다)
 
summer:이곳에 오는 버스들이 적혀 있는 노선표입니다.
당신이 타야 하는 버스도 있네요.
그걸 타면 그의 납골당으로 갈 수 있습니다.
아래 기둥 쪽에 주인 없는 자전거가 묶여 있습니다.
꽤 긴 시간 동안 묶여 있었는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군데군데 녹이 슨 부분도 보이네요.
 
루시 칼드웰:(손가락으로 버스 노선표를 흝어 내리다 시선끝에 보이는 주인 없는 자전거. 주위를 살펴보듯 이리저리를 둘러보았지만 딱봐도 퀘퀘한 먼지냄새와 거칠어보이는 녹슨 자전거, 주인이 있을리가 없겠구나 싶어 자전거를 더욱 이리저리 만져본다)
 
... 버스 올려면 얼마정도 있어야 하는거지.
 
summer:뜨거운 벤치는 조금 낡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아이도 자전거를 가지고 있었죠.
 
주인이 사라진 너의 자전거도 저렇게 아무렇게나 묶여 있을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와 같이 그 자전거를 탄 적도 있었습니다.
 
작년 여름이었죠.
 
그때, 그는…
 
장면전환
 
그는 갑자기 자전거를 끌고 나타났습니다.
 
아닌 척 하지만 들뜬 듯 자전거를 끌고
 
당신에게 자랑을 합니다.
 
사라 발렌티나:어때. 이 더운 날에 도보는 너무 효율적이지 못해서 하나 장만했어. 어때. (어때, 앞뒤로 두 번 말하면서 생색도 한 번 내보고 주인치고 꽤 넉넉한 자전거 덜커덩 덜커덩)
 
루시 칼드웰:...얼씨구.
 
(어쩌면 너 답지 않게, 그렇게 칼같이 제 자신을 내리지 않고 똑 부러지던 아이가 자전거 하나로 이리 어린아이처럼 구는지, 어이없음에 피식 하고도 웃어본다. 오랜만에 보이는 모습인데 장단에 맞춰주지 않을수가 없지 않는가... 라고는 말해도 덜컹거리는 모습에 아무리봐도 조만간 자전거랑 함께 흙먼지 날릴것같은 불안감이 든다고는 차마 말하지를 못하고)
 
이야, 이거 어디서 샀어?
 
 
루시 칼드웰:(그래 어디 한번 더 들뜨게 해줄까, 몸을 낮추고 네 자전거를 이리저리 만지고 바라본다. 딱히 자전거를 볼 줄 아는 자신은 아니지만 적어도 부활동때문에 틈틈히 스스로도 타고다니는 중이라.)
 
좋은거 샀네. 근데 이거 좀 너에 비해 큰-...
 
(눈치를 보다 아차 싶어 황급히 말을 바꾼다. 혹시 몰라, 자전거라도 휘둘고 또 때리고 도망갈지)
 
 
루시 칼드웰:아니 흠흠, 그게 아니라! 너 갑작스럽게 자전거 산건 좋은데... 탈 줄 알아? 이거. (자전거 손잡이를 툭툭이며)
 
사라 발렌티나:요즘이야, 세상이 좋으니 전문점에 구입해서 따로 집으로 배달 받았어. 앞에 바구니도 있고 제법 마음에 들어. 전부 내가 보는 눈이 높아서 그런거 아니겠니? (그래. 솔직히 들떴다. 새 물건을 마음에 드는 조건과 금액으로 차지했다는게 반, 그리고 다른 이유가 또 반. 그래서 스스로도 수다스럽다는걸 깨닫지 못한 채 열심히 자전거와 제 자랑을 섞어 늘어놓았다. 네가 띄워준 탓도 있었겠지. 원래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인걸 어쩔 수 있겠나. 기분좋게 내뱉었다가 큰, 소리에 뚝 끊기듯 계속 말해보라는 듯 꼬라... 쳐다봤다. 말을 돌리는 노력이 가상해서 봐줬지만.)
그거야, 뭐. ...나니까. (그러니까 자신은 뭐든 잘하니까 자전거쯤 문제없다는 뜻일건데, 다르게 말하자면 이거야말로 근거없는 자신감이었다. 못해도 굽히지 않고 되려 가슴을 떳떳하게 내밀며 뭐, 뭐, 하는 꼴이... 퍽 어이없었을지도.) ...너... ...탈 줄... 아니?
 
루시 칼드웰:(떳떳한 만큼 거짓말 한번 할때는 어쩜 이리 티가 잘도 나는지, 어이없음뿐인 상황이 이어짐에 어쩌면 아주 오랜만에 자신에게 이 대화의 멋진 주도권이 잡힌것같아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꽤나 재수없는 얼굴로 말을 이어나간다)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는거냐? 당연히 탈 줄 알지. 부활동때문에 여태 자전거 타고 다녔는데?
 
(물론, 너와 등교시간 맞출려고 자전거는 한참전에 창고신세가 되었지만, 라는 말을 들릴듯 말들 웅얼거리고 괜시리 머쩍인듯 뒷목을 한참 긁적거린다. 하여튼, 하여튼,)
 
 
루시 칼드웰:어, 어찌되었든. 그래 탈 줄 알지. 서서도 타고 손놓고도 탈 수 있다? (와중에 자랑이라고, 또 다시 뻔뻔해져서는 너를 빤히 바라본다)
 
..너 설마, 탈 줄 모르면서 산건 아니겠지? (장난끼 발동한듯 네 눈높이에 키를 맞추고는 씨익 웃어보인다)
 
사라 발렌티나:...? 그래? (그런 것 치고 나랑 다닐 땐 그런거 없지 않았나? 뭐지. 알 수 없네. 세모눈으로 치켜떠 봤지만 결국 이 대화에서 밀리고 있는건 자신이라고, 그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어서 구구절절 더 말하지는 않았다. 본래 빈수레가 요란하듯 아무것도 없으면서 내뱉으면서 꼴사나운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의 침묵을 덧붙였다. 아... 이걸 어떻게 처리한담. 좋은 머리가 팽팽 돌아갈 때 문득 더운 바람이 불어서 얇고 긴 머리카락들이 보기 좋을만큼 흔들렸다. 네가 묶어준 머리, 오늘도 묶어주어 높고 깔끔하게 틀어진 머리카락들. 이쯤되면 코웃음이라도 치며 반대로 뻔뻔스럽게 나갈법도 한데 웬걸? 조용했다. 뭔가 하려는 듯, 아닌 듯, 입을 뻐끔거렸다가 두 손에 쥔 손잡이를 꽈악 쥐고 버텼다.)
...네가 날, 태워주면 되잖아. (그 발언이 당돌하고 담담해서 되려 담백했다. 여름때문에 더운거라며 스스로에게 핑계를 대며 귀부터 따뜻해진 온도 넘어로, 감히 제게 맞춰준 네 눈을 봤던가. 반의 이유는 처음부터 이것이었노라고. 순간 답답하고 끈적한 이 공기가 제 발언 탓이 아니라 여름인 탓이라고 빌어.)
 
루시 칼드웰:(오늘도 매미소리가 이렇게 짙었는가, 네 목소리가 차분해질 무렵 공백속에서 여름소리를 듣자하니 그간 너와의 대화속에서는 네 앞에있는 네가 전부인거구나 싶었다. 바람에 보기 좋게 흔들리는 머리카락, 그 사이로 여름향기와 네 향기가 예쁘게 스며들어 제 코끝에 일렁인다. 어쩌면 저번처럼 소리를 지르곤 달려나갈수도 있는 상황속 내앞에 너는 올곧게 자신을 바라보고 붉게 물들어가며 긴장감인지 모를 땀줄기가 흘러내리지만 서로 하나 물러서는 것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
 
...아.
 
(공간이 어색해서, 당돌하게 말하는 네 물음에 이제서야 답장을 해야하는 차례이구나 싶어 내뱉은 작은 반응은 상황을 도와주지 않는듯 보였다. 당황스러움의 초반과 달리 익어가듯 가슴 속 간질거리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무척이나 기뻐서 장난끼 많던 얼굴은 어디가고 제 입가를 그저 긁적이며 조금이라도 기쁨을 감출려 노력한다. 여름 하늘 밑에 지금 둘은 한없이 투명해서)
 
 
루시 칼드웰:...내가 너를?
 
(지금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있을까, 제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도 바라보기가 어렵지만 당돌하게 바라보는 네 눈빛을 거절하기 어려워 제 자신의 표정이 어쩔지를 걱정하는것이 다였지. 솔직히 너무나도 좋아서, 착각이면 어떠한들 조금은 환상이라도 가져도 괜찮지 않은가 싶어서. 간질거리는 상황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가르쳐달라는게 아니라 그런 부탁을 하는거야?
 
(서로 이미 붉어진것같은데 조금은 즐겨도 괜찮으니, 붉어진대로 좋다고 표현하며 한참이고 웃었다. 조금은 짖궃게 놀리고 싶기도 했지만 이 좋은 순간을 놓치기는 싫어서 눈가를 훔치고는 네 자전거 안장위에 올라 앉아 한쪽 발로는 페달을, 한쪽발로는 군형을 유지하고 뒤를 돌아 너를 바라본다)
 
루시 칼드웰:
멀뚱멀뚱 뭐해? 태워준다는데. 나 먼저 가라고?
 
사라 발렌티나:...네가 나를. (바보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그게 결코 나쁜 감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평소처럼 남의 머리 위에 서서 여유롭게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거절하면 거절하는대로 아무렇지 않은 척, 그냥 한 번 장난삼아 던져본 척, 그렇게 하면 그만이라 이미 머리 속에 그려놓고 던진거였으니 맨땅에 머리를 들이박는 것 또한 아니었다. 당연하지. 자신은 언제나 뒤에 무언가를 두고 발언하거나 행동했다. 수가 틀려도 곧바로 낭떨어지에 떨어지는 추한 모습이 되지 않도록. 그러니까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 한마디나 이 어린아이 같은 자랑까지도 어떻게보면 제 계획 중 하나라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차분히 정돈하고 있자니 정말 나라는 사람은 이렇구나,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다행이야, 일부러 큰 자전거를 사서. 직원이 정말 이걸로 괜찮냐는 눈에도 꿋꿋하게 집에 들여 끌고와서.)
그러면 절도로 신고하겠어. (그러니까 그냥 너를 부려먹는거라며, 그런 식으로 대꾸하고서 뒷자리에 살포시 다리를 모으고 앉았다. 근데... 어디를 잡는담. 보통 안장을... 잡지 않나. 아닌가? 사실 알고는 있지만 인정했다가는 심장이라도 토해버릴거 같아서 결국 타협 아닌 타협으로 네 교복 끝만 살짝 잡았다. 적어도 자신은 이게 최선이었으므로. 아, 달큰한 향기가 난다. 어디선가 날아오는 단냄새가 점점 뜨거워지는 허공과 어울어져 현기증이 날 정도로 주변을 맴돌아 흐리멍텅 해지는 동시에 주변이 보였다. 너는 자전거를 타고 있고 나는 그런 네 뒤에 타고 있고.)
안전 운전 하도록.
 
루시 칼드웰:끝까지 뻔뻔하다 정말...
 
(당당하게 이야기 했지만 점점 다가오는 네 모습에 심장소리가 들키지 않을까, 매미소리가 더욱 우렁차면 좋았을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할 뿐, 작은 손끝으로 제 옷깃을 잡을때는 너도 어쩌면 나처럼 제법 아슬하겠구나 라는 착각이라도 해보며 자신을 위로한다.)
 
안전 운전 하라는 말 치고는... 그니까.
 
 
루시 칼드웰:(흠흠, 목소리를 다듬고 네가 내 등뒤에 있어서 다행이라는듯, 더워지는 열기에 제 셔츠를 잡고 펄럭이며 앞만을 보고 온기가 가시기를 열중한다. 어느쯤 진정이되면 좋을려만 그러지는 않고 너는 이미 내 뒤에 보란듯이 앉아있는데 당당하게 말한것 치고 아직 한치 앞도 가지 않았으니, 더 이상 멀뚱하게 있다가 네가 토라질까봐 괜한 걱정에 에라이 모르겠다 살짝 잡아당기는 네 손을 포개 제 손으로 가져와 더욱 끌어드린다)
 
아, 안전 운전 하라면서 얼빠진것마냥 옷깃만 잡아서 되겠냐 멍청아-?
 
(저도 모르게 올라간 목소리, 나름 덤덤하듯 톤은 높게 해보지만 끝자락의 약간의 떨림또한 너는 들었을까, 녹아내릴것같은 더위속에서도 네 손등위의 온기는 조금은 서늘하게 시원하면서도 기분좋게 따스했다. 네 손을 제 허리를 감싸게 하고는 급하게 손을 놓고는 자전거 핸들을 잡는다)
 
 
루시 칼드웰:괜히 어설프게 잡다가 다쳐서 내 탓 하지 말고 꽉 잡아. 무, 물론 내가 운전하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간다, 라는 말 없이 제 쑥스러움에 먼저 패달을 밟아 앞으로 향한다. 출발이라는 절차를 밟기에는 여름의 더위인지 모를 열기에 아찔해서 조금이라도 제 머리속이 시원해지도록 빌며)
 
사라 발렌티나:(들키기 싫다. 무엇이든간에 상대가 제 생각을, 기분을, 마음을 몰랐으면 좋겠다. 어디까지 오만해질 생각이던가. 그럼에도 자신은 언제나 생각했다. 부디 내 진위를 상대가 깨닫지 못하기를, 착각하여 당황하고 내 밑에 있기를. 그러니까 차라리 뻔뻔하고 제 잘남에 살며 떵떵거리는 오만한 여자가 낫지 않겠는가? 적어도 자신은 그랬다. 혹시, 혹시나. 자신은 이렇게 꼬였지만 너는 보통 말실수나 티가 나는 쪽이니까 혹시, 하며 가정을 세웠으나 확신은 아니었다. 그냥 본능적인가? 그저 인정하게 싫었던건가. 무엇을? 가끔 모를 것이 덮쳐올 때가 있는데 그러면 지금처럼 덮어두곤 했다. 이게 은근 도움이 되거든. 네가 그리 말하니 저 또한 평소처럼 눈을 치켜뜨고 비웃듯 입고리만 씩 올렸다.)
누가 누구보고 멍청이라는거지? 멍청이의 정의를 보르는건가? (그래도 역시 이건 조금 부끄럽네. 그나마 다행이야, 너는 앞이고 나는 뒤니까 크게 티나지 않을거 아냐. 그래. 아무렇지 않은 척, 네 허리를 두 팔로 감아 잡았다. 아... 바람이 시원하면서도 역시 답답해. 여름의 바람이 에어컨 바람처럼 차가울리 없으니까 당연한건가. 바람결에 따라 흔들리는 것들이 아지랑이 같아서.)
 
당신은 그를 뒤에 태우고 페달을 밟습니다.
 
갑자기 출발한 반동 때문일까요,
 
혹은 등뒤로 닿은 누군가의 탓일까요.
 
괜히 허리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주는 기분 좋은 바람.
 
턱을 따라 흘러내리는 땀방울.
 
페달이 돌아가고,
 
작은 자갈들이 바퀴에 짓눌리는 소리.
 
그 사이로 그의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분명 너는 환하게 웃고 있었겠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래.
 
그랬을 겁니다.
 
꽃향기와 같은 달콤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히는 것만 같습니다.
 
옆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아득하게만 느껴지고,
 
당신은..
 
덜컹거리는 충격에 당신은 퍼뜩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당신은 어느새 버스를 타고 있습니다.
 
시야에 가득하던,
 
빠르게 스쳐 지나가던 풍경들이 창밖으로 비칩니다.
 
당신에게 버스를 탄 기억은 없습니다.
 
기이한 현상… 에 <이성> 판정 합니다.
 
루시 칼드웰: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합니다.
 
버스 안을 살펴도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잠시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있으니,
 
당신이 내려야 할 정거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옵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벤치와 노선표가 있는
 
작은 정거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당신이 탈 버스가 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은 것 같아요.
 
슬슬 정오가 다 되어가는 시간입니다.
 
태양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도로는 달아올라 아지랑이가 피어납니다.
 
제멋대로 일렁거리는 공기의 흐름.
 
온 세상이 녹아내리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그런 왜곡된 풍경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그때도 그와 이런 풍경을 보았죠.
 
수업이 일찍 끝나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해가 한창 열기를 과시하고 있을 때 즈음.
 
일렁이는 아지랑이에 눈앞이 온통 하얘질 만큼 아찔했습니다.
 
현기증에 세상이 핑 도는 것만 같았어요.
 
그리고,
 
장면전환
 
누군가 당신의 눈앞에서 손을 흔듭니다.
 
하얗게 변해가던 시야 한가득 그 손짓이 담깁니다.
 
그의 손입니다.
 
사라 발렌티나:요즘 자주 멍하니 있구나. 더위라도 먹은거 아니니? 요즘 날씨가 덥긴 덥지. 그래도 정신 놓지말고 걸어.
 
여전히 툴툴거리며, 그 아이는 말했습니다.
 
사라 발렌티나:아, 바보야. 녹아 흐르잖아. 빨리 먹던지, 닦던지 해.
 
그 말에 손을 바라보니,
 
당신이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녹아 흐르고 있습니다.
 
루시 칼드웰:...어? 뭐가-
 
(정적을 멈추는 네 또랑한 목소리, 잡은손에 차가우면서도 살짝 끈적이는 이질감에 정신을 차린다. 아아- 분명 너랑 있었지. ..있었나?)
 
어?! 어 녹는다- 젠장,
 
 
루시 칼드웰:(허겁지겁, 멍때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 창피해서 제 입에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을 오물거리다가 이내 머리속으로 찡하게 들어오는 차가움에 신음을 낸다)
 
아, 아 머리, 제기랄 아악-
 
사라 발렌티나:...쯧. (딱히 숨기지도 않고 혀부터 차더니 휴대용 물티슈를 몇 장 뽑아 네 손에 쥐어주고 아주 조금? 조금... 닦아주었다. 금방 떨어졌지만.) 정신을 어디다가 내놓고 다니는지 원. 어디 아파보이지는 않고, 역시 더위를 먹은걸테지. 계절만큼 여름은 한창 짙어지고 있으니까. 내가 어디까지 말했는지는 기억하고 있는거니?
 
루시 칼드웰:아, 고마...워...
 
(작게 중얼. 작은 손길 하나도 움찔거리며 괜시리 좋아하는 자신이 얼마나 웃긴지 스스로 알고는 있을까, 또 나름 좋다고 제 손을 닦아주는 너를 한참 바라보다가)
 
...아? 아, 어 그게- ....
 
 
루시 칼드웰:(젠장, 하나도 못들었다. 꽤나 억울한데, 절대 네 말을 무시한게 아니라 그러니까 더위때문인지 정말이지 기억이 나질 않으니까 그래서 말이야- 머리속에서 오만가지 핑계들이 왔다갔다 걸었지만 저를 똑바로 쳐다보는 너를 보고는 이내 나름 쿨하게 인정하고는)
 
미안! 다시말해줘라. 진짜 더위먹었나봐, 하하-.... 젠장 봐주라.... 나름 나의 사정이란게 있달까-...
 
사라 발렌티나:... (내 말을... 무시, 했다고? 마치 네가 그럴 수 있냐는 식으로 생각한 것과 다름없지만 이런 태도가 언제 한 두번이던가. 요즘 답지도 않게 자주 멍하게 있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정말 더위라도 먹은건가? 열사병인가? 혼자 질문하고 그럴듯한 대답에 더 쏘아붙이지 않고 제 복숭아 아이스크림이나 입에 물었다가 천천히 녹여 먹었다. 나는 네 모든 걸 컨트롤 하고 싶은건 아니었으니까.)
무슨 사정? 뭐... 개인 사정을 나한테 전부 말해야할 필요는 없지. 동급생끼리도 거리는 중요하니 이해해줄게. 그래서 내가 하려던 말은 당분간은 같이 하교 못한다는거야. 학급 일로 바빠서. 어차피 너도 동아리 활동이 있어서 상관없을거 같긴 하지만.
 
루시 칼드웰:...하아?! 아, 아악 또 머리가-
 
(민망하게 우물거리던 소다맛 아이스, 괜히 무시한것같은 미안함과 복잡함에 먹는것에라도 집중할려 했으나 갑작스레 들려오는 통보에 저도 모르게 크게 베어있던 아이스 조각을 반응과 함께 꿀꺽 삼켜버린다. 아오 머리야..)
 
'갑자기 왜?! 학급 일?? 기다리는건-'
 
 
루시 칼드웰:(입을 뻐끔거리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그도 그럴게 바쁘다는것도, 일방적인 관계에서 너무 멀리 가는게 아닌가 싶어서. 솔직히 지금까지도 이렇게 가깝게 지낸걸로 만족할 수 있는거잖아. 욕심이 나 저도모르게 네가 내 곁에 있는게 자연스러워 진것같아 이내 하고싶은 말을 삼킨다)
 
...그..그으래... 그렇냐.
 
(나름 납득했다는듯 나는 별로 상관없어 라는 투의 말을 할려고 했지만 어째 나온 폼이 한없이 아쉬워하는것 아닌가, 창피해. 그래도 조금은 아쉬울수도. 사람이라는것이 주어진 좋은 환경이 지속된다면 더한것을 바라기도, 착각을 하기도 해서. 그래. 여태 같이 있어준것만으로도 어디야, 중얼거리며 씹어넘긴 아이스는 사라지고 꽝이라 적힌 아이스 막대기만을 화풀이와 아쉬움에 풀듯 한없이 질껑이며 앞만을 본다)
 
 
루시 칼드웰:상관 없지 뭐, 그 뭐, 나도 그래 동아리도 있고. 응. 그치. 그러냐- 아아 덥다.
 
(창피하다, 오늘은 집에가서 차가운 물이라도 뒤짚어봐야 정신을 차리지. 아쉬워 하지말자. 한쪽만 바라봐도 여태 즐거웠으니까)
 
사라 발렌티나:아쉽니? (딱히, 그래. 딱히 놀리자고 했던 말은 아니었어. 그랬다면 좀 더 비꼬아 말했겠지 이렇게 대놓고 다짜고짜 질렀을까. 오히려 그 말 그대로의 의미로 물어본다는 뜻으로 나온 말은 너무 쉽게 나와버렸다. 그럴수도 있지. 같은 반이 되어 만난 후로 예상치 못하게 함께 다녔으니까 친우로서 아쉽다고 한다면 납득할만 하지 않나. 그래서 네게 큰 시선을 주지 않고 한꺼풀 죽은 더위를 느끼며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앞니로 아이스크림을 갉아먹었다.)
그래도 아주 못보는건 아니고 어차피 같은 반이니까 필요할 때 부르면 그만이야. (나, 왜이렇게 침착하지. 가끔 생각하는 것이다. 가까워질만 하면 이렇게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이 온다고. 해야할 일은 원래부터 많았는데 거기에 끼어든게 너라고. 이런 식으로 현실을 느낄 때 마다 머리는 아이스크림마냥 차가워지고 자신을 견고하게 만들어. 남은 한 입을 오랫동안 먹었다가 완전히 녹여버리곤 끈적해진 손을 티슈에 닦아내리는게 전부.)
너는 정말 알기 쉬워.
 
루시 칼드웰:... 뭐, 아쉽다고 하면 학급 일 안해줄려고? 그럴것도 아니면서 뭘 물어봐.
 
(딱히 네가 아무런 잘못도 한것이 아닌데 왜 자신은 어린이마냥 토라져있는지. 정신차리자라고 되짚어보면서도 이럴때만큼은 감정이 너무 투명하게 보이는 자신이 쪽팔린다. 아이스 막대기에 스며드는 나무와 녹아내린 소다의 맛이 이질적으로 느껴질 무렵, 이빨 자국이 가득한 막대기를 근처 쓰레기통에 던진다. 아, 잘 들어갔네)
 
아쉽기는, 그러는 너야말로 그런 말 해놓고 아쉬워 하지나 말어라?
 
 
루시 칼드웰:(농담조로 던진 말, 그야 진심일리가 없다. 똑부러지는 아이, 언제나 자신이 바라보는 길을 옳다 생각하고 굳건하게 그 길을 걸어가는 너라는 걸 잘 알기에 아쉬움 하나 없다는것도 알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자니 벌써부터 멀어진것같은 느낌이 들어 괜히 시끄러운 매미소리에 화풀이를 하듯 뒷목을 긁적인다)
 
...하아? 내가 알기 쉬워?
 
사라 발렌티나:당연히 그건 아니지. 그냥 물어볼 수 있는거 아닌가, 해서. 그렇게 말하는거 보니까 아쉽나봐.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쓰레기 통, 네가 던지듯 들어간 그 쓰레기 통에 자신도 막대를 버려두고 다시 쪼르르 다가와 옆에 섰을 땐 그 잘난 얼굴로 그저 쿡쿡 웃고 잇더라.)
그러네. 나도 최근엔 그나마 마음이 가벼웠던 적이 꽤 있었으니까 그런 시간이 없다면 스트레스가 쌓일거야. 그래도 아쉬운 것과는 같은 취급을 할 순 없어. (열심히, 열심히 해야해. 망가진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그래, 너무 좋았어. 반대로 예상치 못하게 너무 좋은 날들이었지. 근데 이 정도면 굳이 나 정도가 아니어도 알기 쉽지 않나.)
아무래도 그런 편이지. 조금만 당황하면 생각하는게 그대로 툭툭 튀어나오고 상황이 마음에 안들면 금방 툴툴거려. 얼굴에도 쉽게 들어나지. 이건 꿰뚫어 본다는 정도가 아냐. 그대로 보인단다? (스스럼없이 술술 불었지만 다르게 말하면 그만큼 너를 봤다는 뜻도 된다는걸 스스로도 알고 있을지는, 글쎄. 길이 갈리는 갈림길. 너와 헤어져야 할 시간에서 먼저 멈춰선 것도 자신이었다.)
그러니 선택지를 줄게. 하나는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는거고 또 하나는 이대로 평소처럼 헤어지는거야.
 
루시 칼드웰:(갑작스럽게 자신을 읽어내리는 네 발언에 표현못할 애매한 창피함이 앞서 화라도 낼까 입을 모았지만 이내 갑자기 너에게서부터 들려오는 말에 창피함은 가시고 피가 돌듣 머리가 맑아진다)
 
...하?
 
(갑작스럽게 무슨 선택지를. 그저 우리가 이제는 뜸할거라는 말을 할려더는 게 아니였어? 물어보고싶은것이 한두가지가 않은데 또 다시 자신의 길에 의심하나없는 올곧은 네 물음에 말문이 막혀버린다)
 
 
루시 칼드웰:...나쁘다 진짜로.
 
(네가 들으면 들려라, 중얼거린다. 치사한 아이다. 얼굴에 쉽게 들어난다는 이에게, 아니라고는 하지만 퍽 아쉽다고 느끼는 이에게 갑작스럽게 불안감부터 밀려오는 저 물음에 나는 또 다시 한번 여태 있었던 행복들을 그저 복에 겨운 행운으로 여기고 너를 놓아주어야 하는지, 비록 혼자의 바램이라 한들 욕심을 내고 너를 조금이라도 더욱 오래 둘 수 있다면 그리 하겠노라 하고 너를 따라가야하는지)
 
(머리를 한참 벅벅 긁고, 어이없다는듯 숨을 픽픽 쉰다. 신발 끝에 굴리는 흙과 돌을 이리저리 차며 땅만을 바라본다)
 
 
루시 칼드웰:네가 물어본거야. 나쁜자식아.
 
(퉁명스럽게 뱉고는, 조금은 딱딱한 얼굴로 하지만 진심인 눈으로 너를 바라본다)
 
너 집 어디야. 선택했으니까. 너 데려다 주기로.
 
 
루시 칼드웰:(사람은 자고로 주어진 상황에 조금이라도 만족하다 싶으면 더한것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안될걸 알면서도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이 손을 내밀면 그것을 밀어내는것이 옳은일인걸까, 내 혼자만의 돌아오지 않을 갈증인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너를 쫓아가는 나는 욕심쟁이인것일까.
 
될대로 되라지)
 
사라 발렌티나:맞아, 나는 좀 나빠. 그냥 하는 말이라도 착하지는 않은 여자란다. (딱히 타격도 없었으니... 솔직하게 받아쳤다. 세상과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들 하지만 그게 안되는 걸 어떡하겠나. 스스로가 생각해도 나는 참 약았어. 그리고 많이 치사하지. 왜냐하면 제가 한 선택지 아닌 선택지에 네가 그런 대답을 할 거란 점까지 제 머릿속에 그대로 들어있었으니까. 다만 알 수 없는 건 그 진위 따위나 속내였을 뿐. 네가 어떤 식으로 땅을 파고 들어가든, 헛수고가 삼킨 생각을 뱅글뱅글 돌리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당돌한 사람.)
잘 선택했어.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그러고 싶지 않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들먹이며 아닌 척 끌어낼 뿐인 속셈. 그렇다고 손안에 두면서 제멋대로 하자는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상대를 꿰뚫어 본 결과였지. 나는 욕심쟁이를 참 좋아해. 그 욕심을 위해 자존심을 좀 깎아먹어도 달려드는 사람도 꽤 마음에 들어하고. 뭐, 자신은 자존심 따위 굽히지 않겠지만. 그러니 그 손을 잡고 제 집으로 향하는 왼쪽으로 꺾어 살며시 끌었다. 그래, 이 정도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하루의 마무리야. 그런 충실함을 타고 역시나 단 냄새가 난다. 누가 보면 제대로 착각할 만큼의 분위기를 풀풀 풍기며 그 단 냄새가 퍼져나가고 말아. 네가 묶어준 머리를 흔들며 사실은 네가 사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었다가 끝에는 손까지 잡아가네.)
날 제대로 안내해주렴. 놓지 말고.
 
루시 칼드웰:(결국 나는 여전히 너에게 끌려가, 단 한번이라도 네 앞에서 내 스스로 너처럼 당당히 한 적이 있을까. 단내음이 가득한 순간에서도 입안 언저리는 쓴맛이 머문다. 네가 잡아준 손을 뭐하는 짓이냐며 내던질수도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자신은 이미 제 욕망에 못이겨 찬라 마저 가지겠다고 마음먹은지라. 그저 내가 스스로 잘 처신해 제 속마음을 내뱉지 않으면 그만인 상황이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욕심내되 여기까지인, 그래서 네 손을 놓치지 않겠노라 힘주어 잡았다. 바깥 열기의 끈적한 여름의 더위와는 달리 너와 내 손이 맞잡은 사이의 온기는 누군가의 욕심과 욕망 그리고 외면하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 달달하고도 쓴 온기가 가득했다)
 
이끌려 돌아가는 길, <지능> 판정 합니다.
 
루시 칼드웰: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1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summer:...어라.
그가 저런 말을 한 적이 있던가요?
이건 그의 기억이 만들어낸 환상일 텐데, 당신의 기억 속 그는 저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길이 갈리는 갈림길.
 
그와 헤어져야 할 시간에 선택지를 억지로 쥐어준건 그입니다.
 
그리고 그에 응한 건 당신이겠고요.
 
손을 잡고 당신은 또다시 현기증을 느낍니다.
 
그 해의 여름에는 빈혈이 유독 자주 왔었죠.
 
타는 것 같은 목과 머리로 피가 쏠리는 느낌.
 
어지럽게 일그러지는 시야.
 
눈앞이 하얗게 물드는 것 같았습니다.
 
사라 발렌티나:루시?
 
어디까지나 머리 위에 선 듯한 사람의 행세로 당신을 끌고가다가,
 
그런 당신을 보며 걸음이 멈춥니다.
 
눈을 동그랗게 뜬 그의 모습과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당신은…
 
장면전환
 
"... 생"
 
"학생!"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 버스가 멈춰서 있습니다.
 
납골당으로 향하는 버스입니다.
 
버스기사가 혀를 차며 말을 이어갑니다.
 
버스 기사:안 탈 거야? 날도 더운데 왜 거기서 자고 있어? 더위 먹으려고 그러지.
 
루시 칼드웰:..아?
 
(잠이라도 잔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딱히 졸린 상태도 아닌데, 어째서 필름처럼 끊기고 이어가는 눈을 비비고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평소처럼 웃는다)
 
아 미안- 아니 죄송요.
 
 
루시 칼드웰:(머쩍은듯 머리를 긁적이며 호탕하게 웃어넘기고는 뒷자석 창틀 옆자리에 자리를 앉는다)
 
그래,
 
더위라도 먹은 게 틀림없습니다.
 
이미 죽은 너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는 것도,
 
그 기억이 그렇게나 생생한 것도.
 
더워서 헛것을 보는 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잖아요.
 
전부 다 여름이 너무 더운 탓입니다.
 
당신이 버스에 올라타면 버스는 출발합니다.
 
덜컹거리는 차체와 그에 맞추어 흔들리는 손잡이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
 
반짝이는 먼지 입자.
 
그 모든 것이 마치 꿈속처럼,
 
몽롱하기만 합니다.
 
종점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버스가 천천히 정차합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납골당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정오에 가까운 시간.
 
여전히 날씨는 찜통 같습니다.
 
당신의 눈에 납골당 앞에 위치한 꽃집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깥에 놓인 꽃들도 뜨거운 열기에 축 처져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에게 전할 꽃을 사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루시 칼드웰:(그리 네가 머무는 곳에 도착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고, 다행스럽게도 그 길은 온전히 마음을 비우고 다른 환경, 시간속에 빠져 필름이 끊기지 않고 너를 마주할 마음을 경건하게 세길 수 있었다)
 
읏차-...
 
(흙먼지를 일으키며 버스에서 내리자 눈에 들어오는 꽃집. 식상하지만서도 예의일까 싶어, 무엇보다 네가 조금은 좋아해주지 않을까 조금은 머쩍이다가 이내 꽃집을 들어간다)
 
summer:꽃집 안으로 들어서면 주인이 반갑게 맞아 줍니다.
여러 종류의 꽃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 아이는 무슨 꽃을 좋아했더라.
고민하던 찰나에 한쪽에 놓인 꽃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루시 칼드웰:(가볍게 꽃주인에게 인사를 하고는 이리저리 둘러본다. 보기좋게 들어왔다 한들 나는 아무래도 꽃에 대해 아는것이 없어서, 너처럼 이세상에 없을 사람에게 당연스러울 만환 국화꽃이라도 살까 걸음사이에 눈에 들어오는 작은 꽃. 납골당 꽃집속 하얀 국화들 사이에 하얀색과 붉은색을 수줍게 물들고 있는 꽃에 다가간다)
 
'아네모네'
 
(작은 펫말을 읽고 이름을 중얼거린다. 이런곳에 와서 화려한 꽃을 보는건 조금은 멍청한 짓일까 하면서도 너와 닮은 붉은색에 눈을 멀리 할 수가 없어 한참을 망설이다가 무언가를 읽고 마음을 먹은듯 꽃 붉은색과 하얀색을 좋게 골라본다)
 
 
루시 칼드웰:'아네모네. 기대, 기다림과 괴로운 허무한 사랑. 이룰 수 없는 사랑, 제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어요'
 
(그저 흔하디 흔한 슬픈 감정의 꽃말임에도 누구보다 너와 닮은 아이를 가슴에 안고 꽃집을 그렇게 나선다)
 
그래요, 분명 이 꽃을 좋아했을 텐데.
 
언젠가 그가 했던 말은…
 
...
 
사라 발렌티나:아네모네가 싫어.
 
툭 던지듯이 그 아이가 말했습니다.
 
이상하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일 좋아하는 꽃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점심시간의 옥상이었습니다.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평화로운 풍경.
 
아래에서는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기분 좋게 부는 바람에 높게 올려 묶은 그 아이의 머리카락이 살랑거리고…
 
꽃향기가 나는 것만 같습니다.
 
사라 발렌티나:마음에 안들어. (괜히 초코소라빵한테 화풀이 하면서 와앙 물어)
 
루시 칼드웰:아네 뭐..?
 
(각 우유에 나름 빨대를 꽂고 쭉 빨아마시다가, 와구와구 거리는 너를 보며 피식이고 웃는다. 아직 네가 하는 말보단 눈에 빚춰지는 네 모습이 재밌어서 볼 근처에 묻은 초코를 닦아줄려다 조금은 멈칫 하고는 그저 조용하게 휴지를 내민다)
 
입에 그거나 닦고 말해. (제 볼을 톡톡이며 큭큭 웃는다) 그래서 .. 갑자기 왠 아네모네?
 
사라 발렌티나:아네모네. (뭐. 뭐야. 순간 덜커덩거렸다가 아닌 척 돌아와선 얌전히 받았다. 아니 그나저나 내가 묻히고 먹다니... 깨끗하게 닦고 다시 와앙 물었나. 입 안이 작은 편이라 금방 볼록하게 튀어나왔다가)
...시끄럽네. 그냥, 싫어. 꽃말부터 비극적이잖아.
 
루시 칼드웰:'...쪼로록'
 
(벌써 바닥난 우유, 그렇다. 그는 한참 클때 먹어둬야 키도 큰다는 어린이같은 생각에 우유를 마신답니다. 입이 심심해 잘근 빨대를 씹는다)
 
이게 도와줘도 궁시렁... (조잘조잘, 입도 가득 찬 주제에 투덜거리는것이 너에게 말하면 옆구리에 주먹이 가겠다 싶지만 귀엽다고)
 
 
루시 칼드웰:꽃말? 그게 뭔데. 나 그런거 잘 모르거든~
 
(꽃이야 관심을 가져본적이 없어서, 라고 붙이며 괜시리 없는 우유를 한번더 빨대소리가 나도록 빨아본다)
 
무슨 꽃말인데, 다 꽃말이 거기서 거기아냐? '당신을 사랑합니다' 니, '행복하세요'. 그런거.
 
사라 발렌티나:틀린 말은 아니네. 원래 꽃말이라는 것도 어차피 전부 사람들이 붙이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겹치거나 정보가 다르거나. (음, 생각해보면 자신도 그렇게까지 관심이 있는건 아니었지만... 혼자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눈썹만 찡그리더니 입을 삐뚤하게 건다.)
이룰 수 없는 사랑. 나의 곂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그런 것들. 정말 이게 듣고 싶은거야?
 
루시 칼드웰:푸크흡-...
 
(힘차게 들어마쉬던 숨이 목에 걸려 저도모르게 헛기침을 한다. 하필 꽃 이야기를 해도 저런 꽃을, 아니 것보다 그런 꽃말도 있는거야? 그저 다들 듣기 좋으라고 낯간지러운 말뿐인거 아니였어?)
 
'콜록 콜록-...'
 
 
루시 칼드웰:(몇차례 기침을 하고는 조금은 어버버 거리는 말을 이어나간다)
 
하,하아? 우, 웃기는 꽃말이 다 있네 진짜.
 
(지랄이다 지랄, 딱히 들킨것도 아닌데 제 발 저려운것 마냥 턱 끝 맺힌 땀을 손등으로 치우며 다시, 그리고 조금 더 강하게 빨대끝을 잘근거린다)
 
 
루시 칼드웰:뭐, 굳이 말하자면, 그런 말을 듣고싶어하는 것 보다 ...꽃 주는 당사자 쪽이 하고싶은 말 아냐?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다니까 - 아. 뭐 나야 이런건 잘, 모르지만 , 뭐 하여튼. 하하
 
(딱히 그렇게 할 예정은 없었지만 저리 싫어하는거 보니 더욱은 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찌부등하다. 사람이 더우면 모든게 망가진다던데 정신이 나가고도 한참 나갔구나 루시, 이 개자식)
 
2021.05.04 PM 11:40 CUT
 
2021.05.05 PM 4:15~
 
사라 발렌티나:무조건 좋은 꽃말만 있는건 아닌거겠지. 일부러 싫은 사람에게 싫은 말을 담아서 비꼬려는 의도로 전해주는 상황도 있기 마련이니까. (그나저나 사레가 들릴 정도인건가? 반대로 네 쪽으로 휴지 내밀긴 했지만 딱 그뿐이었고 따로 도와주는 행세없이 쨍쨍한 하늘만 올려다 봤다.)
...맞아. 보통은 꽃을 주기에 꽃말도 의미가 있는거지. 그 대상이 타인이든, 자신이든. 스스로를 위한 선물이라던가... 그런 의미로 말이야. 그래서 싫어. (꽃이 무슨 피해를 준 것도 아닐텐데. 날씨 탓에 불쾌 지수가 올라간건지 뭔지, 노골적으로 싫음을 티내며 다시 고개를 내렸다. 쨍한 햇빛에 괜히 시야만 흐려질 뿐인 헛수고가 기분을 좋게 만들리 없어서, 남은 빵만 입에 털어놓고 끝이었다.)
그래도 사실은 좋아했어. 근데 그만큼 싫어진거 뿐이야. (이상하게 생각해도 그럴만 했다. 그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일 좋아하는 꽃이라며 하교하는 길에 잠깐 흘렸던 적이 있으니. 그런데도 이렇게 싫다며 몇 번이고 말하는 저의는 무엇인지, 이유는 무엇인지, 어쩌다 심정의 변화가 생겼는지, 역시나 알 수 있는 것 따위 있을리가 없다. 남은 쓰레기만 챙겨놓고 주스팩에 빨대롤 꽂아 두 손에 꼬옥 쥐고 너처럼 쪼옥 소리내며 마시는게 다였지.) 그나저나 괜히 여기로 왔구나. 더운 날씨에 옥상은 상상이상으로 익어가는 기분인걸.
 
루시 칼드웰:'사실은 좋아했어. 근데 그만큼 싫어진거 뿐이야'
 
(누군가 무엇을 좋아하다가도 실증내는것의 이유는 그닥 알고싶은적이 없었다. 그야 자기 자신도 한동안 매점에서 빠짐없이 먹었던 빵이 하루아침에 싫어지고 질린적이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너에 대한 좋고 싫음의 감정변화는 크나큰 궁금증을 가지고 온다. 그 꽃이 무엇이길래 그런 꽃말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좋아했고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싫어진것인지. ....알면 뭐하겠는가. 결국 작은 이유 하나라도 너와 엮어볼려는 내 욕심에 지나치지 않을것을. 딱히 찌부둥한 몸은 아니지만 괜시리 기지개를 피고는 제법 구부러진 빨대와 빈 우유팩을 옆에 두고 먹으려고 사온 빵 하나를 개봉해 크게 베어먹고는 우물거린다.)
 
실증낸적은 있어도 좋은만큼 싫어진적은 난 잘 모르겠네. 좋은만큼 싫어질려면 무슨 거지같은 이유가 있어야 할 것 아냐. 아직 좋아하는거 그렇게 잃기에는 나는 그냥 도시락 까먹고 사는 학생인데 말이지~
 
 
루시 칼드웰:(복잡한것은 싫다며 퉁명스럽게 말하지만 이상황에서 딱히 자신에게 있어 좋아하는것을 잃는것은 제앞에 있는 사람 한명 뿐 아닌가. 맺음을 원하는것이 아닌 만큼 차라리 나와 너의 사이에 이유가 될 만한 헤프닝보단 시시콜콜하게 시간이 흘러 감정이 작아지는 엔딩이 차라리 나을것같아 싶어서)
 
...네가 하도 옥상에 갈려고 하면 위험하다니 수업이 시작하는데 옥상은 무슨 옥상이니 말하니까 나름 이유있는 시간대에 왔잖아. 조금은 즐기라고.
 
(...라곤 말해도 빌어먹게 덥다. 빵을 입에 물고는 빈 손으로 제 셔츠를 펄럭인다)
 
사라 발렌티나:알 필요는 없어. 꼭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모르는게 자기 기분에는 좋겠지. (잘 먹는군... 조금 시시한 생각까지 섞였지만 말 그대로지 않을까.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하고 싶을텐데 애써 나쁜 걸 경험하고 싶다는건 뒤틀린 타입이거나 변태겠지. 그래도 거지같은 이유라, 거친 말은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속으로만 삼키며 따라하는걸로 끝냈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는게 또 묘했다. 그러니까 너무 좋아하는 걸 만들면 안돼. 실증이면 모를까, 어떤 이유로 인해 그만큼 싫어졌을 때의 상반되는 기분은 제법 불편하고 찝찝한 덩어리들이라 저 또한 달가워하지 않았기에. 해결법이라고 한다면 처음부터 필요 이상으로 좋아하지 않거나 그런걸 만들지 않는 것이지. 그런데, 참나. 괜히 혼자 이것저것 떠올렸다가 저 쨍쨍한 햇빛을 받으면서 역광으로 생긴 무시무시한 얼굴로 아무 잘못없이 빵을 먹고 있는 네 쪽을 무섭게 째려봤지만 나아지는게 있을리가. 그냥... 주스팩만 꾸깃 접으면서 정수리가 절찬리 뜨거울 뿐이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창 땅이 달궈지는 시간에 옥상은... 대체 왜 멀쩡한 교실을 두고.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건데 곧 수업 시작하는데 대놓고 빠지려는 모습을 보면 대부분은 다 말려. (즐겨? 즐겨?? 너는 익어가는 나의 너의 정수리가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지? 이걸 말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지만 쓴소리는 한 번 삼켜두고 대신 한숨만 길게 푹 나왔다.)
...햇빛이 강해서 열사병이라도 걸리면 어떡하니. 잊은 모양인데... 너 요즘 자주 멍하잖아. 저번에도 쓰러진 당사자란다? 어지럽다느니, 그런 것도.
 
루시 칼드웰:그럼 나는 가능하면 모르고 살면 좋겠네. 사소한것부터 큰것까지.
 
(어쩌면 당연한 말을. 그야 그 누가 자신이 좋아하는것에 있어 싫어질게 될 것이라는 걱정을 하고싶어 할까. 물론, 생각이 많은 너라면 좋아하는것이 생김과 동시에 혹시라도 틀어지개 될 결말도 미리 준비해둘 것 같은 아이여서 너 또한 나처럼 조금은 단순하게 실증내고 싫어하는것이 이유가 아닌 털어냄 뿐이길 바란다.)
 
아오, 자꾸 덥다니 뭐니 말하지 말래? 너 덕분에 더 더워지는 것 같잖아. 제기랄.
 
 
루시 칼드웰:(안에 입어둔 셔츠가 있으니 괜찮겠지, 단추를 다 풀고있는것도 모자라 결국 더위를 참지 못해 교복셔츠는 한껏 벗어들고 대충 구겨서 제 옆자리 바닥에 놔둔다)
 
...그렇게 덥냐? ...라고는 말해도, 너 머리위에 계란 하나 깨면 좋게 익히겠는데.
 
(말도 안되는 농담, 스스로는 뭐가 그리 웃기다는지 한참을 큭큭되며 너를 보다가, 여름 더위보다 더욱 뜨거운 네 눈빛에 딸꾹 하고는 웃음을 삼키고 말을 돌린다. 저러다 또 옆구리에 구멍날지 누가알아)
 
 
루시 칼드웰:...아, 나? 내가 좀 열정적이라 너무 놀았나? 괜찮아 괜찮아~ 그깟 쓰러진게 뭐라고. (괜히 네 앞에서 나름 폼잡다가 쓰러진것이 기억나 창피하듯 맑은 목소리임에도 목이 막힌것마냥 콜록거린다. 우유 먼저 마시지 말걸 젠장...)
 
나 걱정해주는거야? 그건 좀 좋은데. 괜찮거든. 쓰러져도 나처럼 본판이 튼튼한 놈이 쓰러지니까 괜찮은거지, 너같은 놈이 쓰러지면 그때 큰일나는거야. 에휴... 나좀 봐라!
 
(여전히 제 입에 우물거리는 빵과 더불어 음료수 몇팩과 빵 몇봉지가 들어있는 매점가방을 네 앞에 들어보인다)
 
 
루시 칼드웰:너도 좀 많이 먹고. 그놈의 달달한 빵이랑 음료 하나 먹는놈이 걱정하지마~ 괜찮아 괜찮아!
 
사라 발렌티나:(그렇다고 시원하다 말하면 시원해지는 것도 아니잖아. 딱 그렇게 보는 걸로 의미없는 주고받기를 끝낸건 언제나 제쪽이었지. 원래부터 영양가 없는 걸 싫어했으니까 이 정도면 충분할테고.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학교 안에서 대놓고 교복을 벗는걸 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아무리 춥고 더워도 입을 것만 딱 입고 단추까지 꼭꼭 닫아 다니는 저로써는, 도대체가 이해가지 않았더란다. 주인 잃은 교복만 조금 봤지만 저 시덥지도 않은 농담 아닌 농담에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쥐어지는 주먹에 주스 팩만 안쓰러워질만큼 구겨져서 내용물만 한가득 머금었다가 삼켰다.)
 
너무 쉽게 말하는데 보통 사람이 쓰러지면 큰일인거야. 그걸 왜 그런 식으로 넘기는지, 원... 그, 그리고 걱정 좀 할 수 있... 지! (혹시 걱정한걸로 느껴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 그대로 콕콕 날아오니 소리부터 지르긴 했지만 날 뭘로 보는거지? 아마 팔씨름을 하면 내가 널 이길 자신이 넘치는데도? 길가다가 이상한 사람이랑 마주쳐도 엎어버릴 자신이 있는데도? 그거랑 별개로 저... 매점 가방? 을 보니 또 기가 막혀서 픽 웃었다. 세상에 많이 먹는 사람 정도야 흔히 있을테니 아주 놀랄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매점 가방은 좀.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웃음이 나와서. 조금은 누그러진 얼굴에 작고 얕은 소리를 손등으로 막고서 뚫어져라 봤다.)
세상에 누가 그런 가방을 들고 다니니. 너도 어지간하구나. 오히려 나는 원래부터 소식하는 사람이니까 괜찮지. 굳이 말하자면 적게 자주 먹는 쪽. 이 정도면 공부하는데에 문제도 없고... 그래도 웃어 넘기지 마. 괜찮다고 말만 하는건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달달한 빵이 어때서... 확실히 취향이긴 하지만... 지금 나는 단 냄새가 초코빵 때문이었으면 좋겠는데.)
 
루시 칼드웰:(저 아이는 또 지가 말해놓고 말을 다듬다가 내가 조금이라도 더 건들면 저 주스팩마냥 찌그러지겠지, 고개를 절레절레 오늘도 살고싶다며 토달고 싶은 말들은 빵조각과 함께 삼킨다)
 
책가방에 사각사각 책뿐인 너한테 그런 소리 듣기는 좀 그런데? 아주 그냥 말이 책이지 휘둘때마다 흉기-....
 
(아차, 순간적으로 옆구리가 시려오듯 네 눈치를 한번 보고는 멀쩍히 매점 가방을 도로 옆에 두며 몇입 안남은 마지막 빵을 우걱우걱 먹는다)
 
 
루시 칼드웰:하, 하여튼 괜찮다니까?! 사람이 한번 쓰러져야 더 강해지고 그런거지 뭘 이렇게 둘이 밥 다 먹고 잘만 있는데 뭘 또 그런 쪽팔린 과거를 말하고 난리야... (중얼...) 너나 쓰러지지마. 이제 나 볼 시간도 없다며. 나 없을때 쓰러지-.... 뭐 하여튼.
 
(나 없을때 쓰러지면 어쩔려고, 라는 말은 입속을 굴러다니다 이내 바깥에 머물지 못하고 속으로 들어간다. 그야, 저 아이의 주변에 나만 있는것도 아니고, 자존심이 강한아이에게 내가 무슨 존재감이 있을까, 혼자서도 잘 할 놈인데 괜시리 또 욕심에 선을 넘어버리는게 아닌가 싶어서. 중심을 잡을려 내려놓은 한쪽 손이 괜히 네게 가까운것같아. 두손으로 빵가루를 털어내고는 더위와 달리 시원하게 물든 하늘을 바라본다. 욕심내는 순간 네가 말한 그 꽃과 같은 이유가 너에게 되기 싫어서 고등학교 시절 기억될만한 조금은 친했던 친구로 만족하기를 일찍히 마음먹었으니)
 
사라 발렌티나:(결국 주먹 쥔 손 그대로 짧고 굵게 네 옆구리를 팍 치고 빠졌다. 오늘따라 더 봐줬지? 이쯤 되면 때렸어야 했는데 없으니까 시원섭섭하지? 자신이 생각해도 많이 참긴 했어. 남의 허리를 멋 대도 친 사람 치고 오늘도 제 잘못은 아니라는 당당한 얼굴로 손만 깔끔하게 탈탈 털었다.)
그걸 창피하다고 생각하는 쪽이 더 이상해. 보통 그건 창피한 게 아니라 순전히 큰일 날뻔한 일이었으니까. 괜찮아 보이니 나도 더 말은 안 하겠지만... (쓰러졌다고 해야 할까, 확실히 스스로도 몸을 조심할 필요가 있긴 있었으니 평범하게 수긍했다. 이럴 때마다 답지 않게 감상에 빠지는 자신도 싫어. 만약 자신을 그렇게 만드는 사람이 있으면 진작에 쳐내는 것이 제 방식인데. 머리 위에서 네게 잘란 듯 떠들어 댔지만 따지자면 제가 할 말도 아니었다. 이 이상 있어봤자 뭐가 달라지지. 가만히 있어도 상황이 멋대로 좋아지는 현상이 일어날 리 없다, 그것을 항상 세겨놓은 탓에 언제나 스스로가 먼저 행동하곤 했어. 그러니까 이런 뜨거운 날씨에 쓸데없는 감상에 젖어할 말도 없는 이 상황을 이어가지 않겠다는 말이야. 어차피 너도 나도 점심은 해결한 거 같은데 위를 올려다보는 너를 두고 먼저 치마를 탈탈 털며 일어났다.)
그럼 이만 들어가자.
 
루시 칼드웰:(결국 오늘은 좀 잘 지나간다 했지, 퍽 소리와 함께 하늘을 향하던 시선은 이내 옥상위 콘크리트 바닥을 한없이 바라본다. 조금이라도 욕심에 선을 넘자 싶으면 상대방 쪽에서부터 이렇게 칼같게 반응해주니 고마워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네가 들리지 않도록 또다시 중얼거린다. 저 자식 약하다고 말한놈이 누구냐, 아 나구나. 시발 존나 아파-... 중얼중얼)
 
또 치고 도망간다 같이 가자고 좀 -
 
(치마를 털며 터벅터벅 먼저 걸어가는 너, 오늘도 묶여준 머리카락끝자락을 따라가듯 한손으로 옆구리를 감싸고 늦게 뛰어가듯 너와 보복을 맞춘다)
 
그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당신을 바라본 순간.
 
툭, 툭.
 
붉은 액체가 방울져 떨어지고,
 
바닥에 부딪혀 흩어집니다.
 
그가 당황한 듯 제 코를 붙잡고 있습니다.
 
사라 발렌티나:아, 코피… 요즘 자주 이러네. 여름이 너무 더워서 그런건지.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조금 웃은 채 말합니다.
 
꽃을 닮은 웃음이었습니다.
 
비록 채 고개를 들지 못한 봉우리 같은 꽃이었지만.
 
온 세상을 가득 메우는,
 
향기로운 웃음.
 
금방이라도 물거품이 될 것 같은 웃음.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아
 
눈을 깜빡이지도 못한 채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눈을 깜빡이는 그 순간,
 
장면전환
 
 
당신은 퍼뜩 정신을 차립니다.
 
서 있는 곳은 꽃집 앞.
 
꽃을 골랐던 기억은 있지만 그걸 산 기억은 없습니다.
 
또다시 일어난 기이한 현상… 에 <이성> 판정 합니다.
 
루시 칼드웰:
SAN Roll
기준치: 59/29/11
굴림: 4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습니다.
 
당신의 손에는 어느새 꽃다발이 들려 있습니다.
 
너를 닮은 꽃.
 
네가 좋아하던 꽃.
 
너의 환한 웃음이 그립습니다.
 
납골당의 안치실에 들어서면,
 
줄줄이 늘어선 유골함이 보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이 좁은 공간에 꽉꽉 들어차 있습니다.
 
그중에,
 
그의 함이 눈에 들어옵니다.
 
너의 인생이 이렇게나 작은 곳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누군가 먼저 다녀간 것일까요.
 
유리 너머로 먼저 놓여있는 작은 꽃이 보입니다.
 
그의 어릴 적 사진도 놓여 있네요.
 
사진 속의 그는 우산을 들고 있습니다.
 
그는 비를 좋아했던가요?
 
아니면 싫어했던가.
 
사진에서 빗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지면을 두드리는 소리가…
 
장면전환
 
그날도 빗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눅눅한 공기와 발치에서 튀어 오르는 물방울들.
 
갑작스러운 소나기였습니다.
 
구름이 가득 낀 하늘에서 끊임없이 비가 쏟아져 내렸죠.
 
당신이 있던 곳은 학교 현관.
 
우산을 깜빡 잊고 가져오지 않아 곤란하던 참이었습니다.
 
뛰어가야 할까, 고민하던 중.
 
누군가 당신의 등 뒤를, 그것도 정중앙을.
 
퍽 하고 치는 소리와 아픔이 느껴집니다.
 
그입니다.
 
접이식 우산을 갑자기 펴다니, 이 자식.
 
같이 쓰자는 듯 그가 들고 있는 우산을 내밉니다.
 
사라 발렌티나:보아하니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칠칠치 못하긴. 내가 하나 가져온 게 있으니 같이 쓰고 가자. (그러면서 뭔가를 가방으로 꾹꾹 집어 놓고) 대신 우산은 네가 들렴, 우산을 든 나를 안고 갈게 아니라면.
 
루시 칼드웰:(아침에는 분명히 오늘도 햇빛하나 가려주지 않을 도움 하나 되지도 않아주던 망할놈들의 구름이 제 욕이라도 들었는지 거짓말처럼 다들 모여서는 굵은 비를 내린다. 귀는 맑고나, 이래서 욕은 하면 안된다고 네가 그리 말하던가)
 
아, 악 젠장 누구야 씨-
 
(퍽 소리와 함께 살짝 찌르는듯한 아픔. 아픔따위는 그닥 크지 않았으나 기습당했다는 생각에 감정이 울컥해 한껏 눈을 날카롭게 뜨고는 뒤를 바라보다, 우산 밑에 말끔히 차려입은 너를 발견한다. 멍청이같게도 등 뒤 지릿한 아픔은 가신지 오래, 오늘도 너는 무척 반갑게 다가와)
 
 
루시 칼드웰:마, 말을 하지 하마터면 (하마터면 욕부터 나올뻔 했잖아. 반은 나와버렸지만, 어색한듯 뒷목을 쓸어내리다 네 발언에 놀란듯 손짓을 멈추고 다시 너를 바라본다. 그나저나 어울리지 않게 제 가방에 꾸겨넣는거는 뭐야. 여전히 숨기는것이 많은 아이)
 
어? 어어.... 안을 수 있는데-.. 는 농담 하하하-! (농담으로 들어라 농담으로 들어라, 어색한 웃음을 호탕하게 웃으며 괜히 바닥을 치고 흩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본다. 정신차리자고.)
 
......
 
 
루시 칼드웰:(물끄럼이 웃음이 가시고는 긁적이며 너를 바라본다. 너와 맞게 작은 우산 안에 단 둘이 걸어간다니. 흔해빠진 드라마나 소설속 한 장면 아니냐며. 그야 너에게는 그저 불쌍한 자식 도와준다는 이유겠지만 너와 달리 나는 이 상황이 무척이나 간질거려 옆에 네가 다가오면 그저 심장소리를 빗소리가 대신 크게 울어주리라 빌어본다. 그럼.. 작은손에 쥐고있는 네 우산을 들고 제 옆자리에 자리를 마련하듯 고개를 어꺠넘어로 까딱인다)
 
...들어 오던가-... 아니 이게 아니지. 드,들어오세요? (멍청아, 누가보면 자신의 우산이라도 빌려주는 줄 알겠지. 방금 전까지도 갑작스레 내리는 비를 원망했지만 하늘이 주신 기회인가 싶어 몇번이고 마음속에서 고맙다고 하늘에 인사한다. 우산 안가지고 와서 나에게 고맙고, 비가 내려와줘서 고맙고, 운 좋게 너를 만나고 말을 걸어준 너에게 또 고맙다고)
 
...어... 그니까, 가자. 그... 고마워. 우산 빌려줘서. (너를 차마 바라보지는 못하고 비어있는 한손으로 제 뒷목을 내려만진다. 비 덕분에 제법 시원했을법 한데 여전히 몸은 더운 이 느낌)
... 근데 너 답지 않게 갑자기 뭘 그렇게 가방에 구겨넣어. 뭐 숨기냐?
 
루시 칼드웰:
(상황이 어색하다. 어색한만큼 넘기고싶어서 그저 궁금증에 남았어도 될법한 것을 걸고 넘어가고 말지)
 
궁금하면? <관찰> 판정 하세요!
 
루시 칼드웰: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사라 발렌티나:나도 농담이었으니까 그렇게 대답하지마. 이상해지니까. (사실 제가 하는 농담치고 다들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더라. 농담같지 않았나? 스스로를 고찰해 봤지만 답이 나올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대수롭지 않게 우산을 집요하게 꾹꾹 들이밀었다가도 쉽게 받아주고 우산을 펼치면 그 안에 쏘옥 들어갔다. 뭐랄까, 굳이 바란건 아니었지만 이런 식으로 수발 같은... 걸 들어주는 상황이 꽤... 좋아. 그래서 특유의 당당하고 곧은 얼굴로 콧방귀를 흥, 하고 꼈다. 이 정도면 비오는 날 치고 상당히 좋은 기분이라는걸 증명하듯이.)
천만에. 대신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도록 해. 그리고 그 우산은 네가 쓰고 돌아가. (순간 덜커덩거렸지만 일부러 어쩌라고? 하며 쏘아붙이는 사람처럼 얼굴도 안보이게 휙 돌렸다.) ... ... ...교과서.
 
라고 했지만.
 
당신, 분명히 보지 않았나요?
 
아주 짧은 순간에 봤던건 착각할 것도 없는 우산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꺼낸건 겨우 하나.
 
사람은 둘.
 
준비성이 철저한 그였기에 예비용 우산이 하나 더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만요.
 
루시 칼드웰:(침묵속에 이어지는 답안. 하지만 어쩌면 애석하게도 분명히, 그리고 정확히 본 가방속 물건. 가지런히 정리된 가방속, 무엇이 너를 그리 너답지 않게 또 하나의 우산을 가방속에 구겨 넣었을지, 무엇이 너를 그리 만들었고 그런목적이 무엇이었으며, 그것을 인지한 나의 속마음은 너는 알긴 하는걸까, 작은 행동과 조금은 어긋난 네 모습이 제 자신에게 희망고문을 들이먹이는지. 다행이도 너 시선 또한 자신을 현재 향하지 않아 어차피 숨기지도 못할 것 저 또한 반대쪽을 바라보며 한껏 얼굴을 붉혀, 손으로 가볍게 입가를 막고 푹 숙인다.)
 
'우산이였어, 분명 우산이였잖아. 교과서는 개뿔이나 교과서, 분명 우산이였는데, 잘 본거 맞지? 우산 맞았던거지?'
 
(빗방울의 갯수만큼 제 머리속 울림도 아찔해 다른의미로 쓰러질것같은 기분이 든다. 여름의 뜨거운 온기라 믿고싶지만 겉은 꽤나 비로 인해 시원했고 결국 날씨와 계절이 아닌 온전히 너라는 이유에 나는 이렇게 붉고 더워진다고. 오늘도 그저 너와의 운이 좋고 나는 나만의 행복을 챙기는것이라고 정신차리라는듯 제 얼굴을 가리는 손끝에 힘을 더해 손에 가려진 입술은 잘근 씹어보인다. 운이좋은 날, 너에게 무엇을 바라는 날이 아닌 그저 운이 좋은 비가내리는 여름의 하루라고)
 
 
루시 칼드웰:.....아 그래.
 
(무엇을 말해도 이 상황이 어색하지 않아지기에는 조금은 많은 시간이 필요할것이라 생각된다. 그렇게 말없이 한참을 걸었나, 그럼에도 너 또한 말이 없는것을 보니 아마 둘은 지금 상황의 어색한 공기를 최대한 바꾸는것이 목적인것처럼 보여. 이러다간 이 운 좋은 순간 너와 말 하나 없이 제 머리만 가득한체로 너와 헤어지게 될것같아 억지로라도 말을 이어가듯 목을 흠흠 하고는 풀어본다)
 
우산은 집에 가면 네가 가져가. 나 달리기 존나 잘하거든. 알잖아? (보란듯이 씨익 웃어보이며 걸어가는 도중 죄없는 돌 하나를 차보인다. 제 발이 빠른건 맞는 말이다만, 솔직히 우산을 가져가면 안그래도 조금은 이제 네 말대로 멀어져야 할지도 모르는 사이에 또 만날 구실이 되고, 그것이 나를 또 하나의 착각과 욕심속으로 빠지게 할까봐.
 
 
루시 칼드웰:... 꽤나 걸었을까, 너를 보지않고 앞만 걸었다는 생각에 이제서야 너를 본다. 역시 너 성격 답게 작은 우산임에도 불구하고 거리감을 조금 유지하는 너, 그로 인해 어깨 옷자락이 조금 젖은 것을 보고 먼저 판단하고 행동에 옴기기도 잠시, 몸이 먼저 너를 살짝 제 옆쪽으로 당긴다)
 
...머,멍청아 젖었잖아. 우산을 쓰는 이유가 뭔데. 더 가까이 와. 우산을 들고있는 사람이 나인 이상 감기라도 걸리면 내 책임이라고. 젠장.. (어색하게 다시한번 뒷목을 긁는다. 워낙 긁은 탓일까 그저 너로인한 감정때문일까 피부는 조금 붉게 물들어진다)
 
사라 발렌티나:(평소처럼 시덥지 않은 일상 이야기나 불평을 해가며 빗속을 걸어 갔을... 것이었다. 적어도 제 예상은 그랬다. 네가 괜히 쓸데없는 것을 물어보기 전까지는 자신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서 아닌 척 네 말에 대꾸해 주고 있었을터인데. 어째서 이런 어색하고 답답한 침묵이 계속 이어지는거지. 자신은 우산을 아주 잘 숨겼고 그걸 네가 모를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순간적인 변명이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꽤 잘 둘러댄 단어라고 느꼈기 때문에. 솔직히 학교 사물함에 항상 두고 다니는 예비 우산이 하나, 자신이 가져온 또 다른 우산 하나, 이렇게 두개가 있다고 진작에 눈치 챘을 땐 그냥 우산을 잊은 네게 하나를 주자고 생각 했었다. 그런데 정작 먼저 나간건 우산을 빌려주겠다는 싸구려 거짓말이라니. 말도 안돼, 말도 안되는 일이야. 내가, 이 내가 그런 구닥다리 같은 일을! 올려 묶은 머리카락 덕분에 따뜻한 귀를 가릴 수 있는게 손 뿐이라 조금 만지작거렸지만 나아질리가 없었다. 티나는게 싫어서, 들키는게 싫어서. 그래서 곧잘 퉁명하게 나가버렸다.)
...그거랑 무슨 상관인거니? 평범하게 우산 쓰고 가. 우산은 학교에서 돌려주면 돼. 접이식 우산이니까 가방에 넣으면 끝날 일... (그거면 되잖아. 이 내가 빌려주겠다잖아. 그럼 너는 그걸 받고 다음 날 나한테 말을 걸면 되잖아. 뭐야? 싫다는거야? 제가 이제껏 해놓은 짓은 생각하지도 않는지 괜한 곳에 심통이 다 나더라. 그런데 그것도 아주 잠깐이었고 무의식적으로 벌려진 거리가 쓸모없을 만큼 좁혀진건 한순간이었다. 아, 토할 거 같아. 이 울렁거림이 제발 여름 장마의 습기 때문이었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네... 네가 똑바로 잘 들면 되... 잖아! 만약 그렇게 되면 네가 책, 책임져야해!
 
루시 칼드웰:나, 나는 잘 들고 있는데 네가 자꾸 멀어지잖아!?! 너야말로 우, 우산 빌려줄 마음은 있었던거야? 어이가 없어서-
 
(서로의 오고가는 대화가 어이가 없어, 이 얼마나 무게감 하나없이 생각하지 않고 감정에 앞서 내뱉는 말 뿐인가. 그런 어색함 속에서도 투닥될수 밖에 없는 너와 나. 입에 도는 단 맛이 진하다 못해 쓰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려온다.
 
결국 네 집에 도착해서 주겠다는 말을 뱉은것과 달리 너는 쉽게 알아주지를 않았고 그로인해 나는 또 한번 너에게 다가갈 정당한 이유가 생긴다. 어쩜 이리 얄미울수가 있는가, 그래놓고 혹여나 조금이라도 선을 넘는 날이 있다면 너와의 행동과 다르게 모두 나만의 착각이였다는 결말이 가다올텐데.
 
 
루시 칼드웰:...한참 머리를 굴르다, 결국 모든것이 부질없음에 그저 지금의 현실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주위 뛰어가고도 오순도순 저와 같이 우산을 공유하고 걸어가는 사람들도 심심하지 않게 지나갔지만 빗속은 오직 너와 나의 시간. 일방적이라도 한쪽은 다른이의 행동에 가슴이 간질거리고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 그런 순간. 욕심이고 나발이고 나중에 어떻게는 되리라, 지금의 두근거림은 아프면서도 제법 좋아서 그리 놔두기로 했다.)
 
그러니까 책임 진다고 이러는거잖아. 그러면 적어도 책임 지게 해주던가!
 
(에라이, 더욱 당겨 살짝쿵 제 어깨에 느껴지는 너의 온기. 바깥비와 다르게 서로가 맞댄 어깨사이는 보드랍고 따스했다. 다른 날 보다 조금더 속도를 낮춘 보복, 신발 사이로 조금씩 기분나쁘게 들어오는 빗물 조차 마다하지 않도록 너와의 이 짧은 시간을 곱씹고 맛보고싶어. 힐끗 바라본 옆자리의 너는 아까보다 한껏 가까이 저와 같이 맞대고 있었고 소복하게 쌓인 눈처럼 길게 가늘어진 눈썹밑에 너는 어떤 눈을 하고 있을까, 차게 식어 내리는 작은 땀줄기는 이내 네 셔츠 사이로 사라진다. 이 시간이 오래가면 좋겠다고)
 
 
루시 칼드웰:... 너 머리.
 
(걷다가 걸음을 멈춰, 네가 내 보복을 알지못하고 한걸음 먼저 가 젖어버릴까 손목을 옅게 잡아본다. 아침에 묶어준 머리와 다르게 조금은 풀려버린 머리카락. 솔직히 이미 헤어지는 판과 더불어 시원해 머리를 묶는데에 큰 의미는 없어보이지만 시간이 지나 너와 남길 발자국이 얼마 남지 않다는 생각에 너를 다급하게 멈춘다. 저도 자신의 행동이 당황스러운지)
 
아, 아니 그게.
 
 
루시 칼드웰:(말을 더듬다가도 이미 내지른 말 발뺌을 하면 자신의 체면이 저를 용서하지 않을 것같아서 기세좋게 너를 부릅 바라보고는 말을 이어간다)
 
머리 헝클어졌어. 저기 공원 있으니까 가자. 다시 묶어줄게.
 
(마치 선택권은 없다는 듯, 그저 내 말을 들어주고 따라와주길 바란다고. 그는 알고 있을까, 욕심을 내지 않겠다는 다짐은 잊혀진지 오래 저도모르게 너를 붙잡고 더 보고 싶다고 울부짖는 행동을.)
 
사라 발렌티나:자, 잡지, 잡지마! (이 민망하기 짝이없는 상황을 풀기엔 제 성격이 그렇지 못해서 멀쩡히 도와주는 사람을 이상하게 몰아가는 것 밖에 할 수 없다보니 주변에서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만큼만 앙칼지게 소리를 질렀다. 그렇다고 찰싹 때린 다음 도망가자니 밖은 비고, 축축한건 또 싫고. 어느 날처럼 너무 당연하게 받고 있는 배려에 제 걸음을 맞춰주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기분만 앞서니 멍청이가 된 것만 같았다. 아, 그래도 다행이야. 너와 내 키차이 덕에 내가 돌리거나 숙이면 너에게 얼굴을 보여지지 않아도 되니까. 괜한 곳에 신경을 쓰니 이 어색해 빠진 공기도 거슬리고 후덥지근한 날씨와 눅눅해지는 습도에 달라붙는 교복도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냥 각자 우산을 쓰고 나란히 걷는 쪽이 좋았겠지.)
...? 뭐... (뭐냐고,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힘없이 잡힌 손목을 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총명한 자신이 순간 순간 멈춰버리던 이유는 필시 날씨 때문이다. 그래야만 했다. 자신도 자신이지만 이런 식으로 어쩔 줄 몰라하면서 나를 내려다보는 얼굴은 너무 잘보여서, 불안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헤어져야 하는 순간은 곧인데 저렇게 말하면 내가 어찌해야할까. 응? 어떻게 해야겠니.)
...그래. (그리고 거기에 수긍해주는 멍청이가 다름 아닌 자신이다. 너는 이것 밖에 대답이 없다는 듯 가자고 했겠지만 나는 그 마저 이용하는 못되 먹은 사람. 차라리 집에 돌아가는 길을 빙글빙글 멀리 돌아가는 쪽이 나을 정도로 노골적인 제안이잖아. 이 날씨에, 이 순간에, 하필 말하는 것도 다시 묶어줄게. 라니. 어이가 없으려니. 나도... 어이없고.)
오래 있을건 아니니까 비만 피할 곳이면 돼. (아, 사람을 멍청하게 만드는 이 감정이 예전부터 싫었어. 그걸 외면하듯 네쪽은 봐주지도 않고 적당히 걸었다. 그 뿐이었어.)
 
루시 칼드웰:(눈에 들어오는 하얀 머리카락 속 붉게 보이는것이 네 눈동자인지, 거절하지 않은 의아함, 이 상황속 흘러가는 묘한 감정선들에 궁금증이 많았지만 말없이 나는 그저 네 손을 살포시 놓고 들어가던 길을 돌아서 근처 공원에 들어선다. 날씨덕에 공원은 조용했고 길가를 드나니던 사람들도 얼추 멀어져 정말이지 너와 나만이 남았단 생각에 설렘과 동시에 오싹함이 등골을 오르락 내린다. 나의 부름에 거절과 같은 반응 없이 어째서 잘 따라주는 너. 나로 인해 너와 가던 길을 이탈하고 제 욕심에 응해주는 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또 아찔해, 아마 이번 여름 더욱이나 멍을 때리고 중심을 잃는거는 어쩌면 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제서야 한다. 이번의 여름은 온통 너로 인해 더웠다고.)
 
(어쩌면 학교에서 부터 네 집 근처까지 걸어왔을 거리가 더욱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작은 공원 한쪽을 들어가는 정적이 오늘 하루의 무엇보다 길고 느리게 느껴졌다. 그렇게 짧은 거리를 한참 걸었을까, 공원의 놀이터 안쪽 작게 자리잡은 운치좋게 이름모를 꽃이 엮어 지붕이 만들어진 쉼터 밑 벤치에 제 가방을 내려놓는다.)
 
'툭툭-...'
 
 
루시 칼드웰:(우산을 접어 벤치 옆에 비스듬이 세워놔, 우산에 내린 빗물이 조금 묻어 축축한 벤치에 네가 앉을 자리를 마련하듯 제 교복셔츠를 무심코 벗어 벤치위에 내려놓는다.)
 
앉아. 이미 반 젖은거 집에 들어가면 세탁부터 할 생각이였으니까....
 
(... 아마 빗줄기 소리에 섞여 목소리가 떨리는것이 분명해. 제 목소리를 듣고 조금은 놀라 어색하기 그지없는 공간, 작게 중얼거리면서도 나름 당당하게 이야기하지만 네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는 못해, 그저 얇고 조금은 차가운 네 손목을 살짝 잡아)
 
 
루시 칼드웰:여기 앉아. 그리고 어 음, 머리-... 금방 해줄게.
 
사라 발렌티나:(차라리 평소처럼 버벅거려도 뭔가 말을 했다면 지금보다야 훨씬 낫다고 생각할 만큼 또 침묵이 이어지는구나. 이제 와서 그 점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네가 가는 대로, 네가 가는 길을 옆에서 나란히 걸으며 젖은 땅을 찰팍거리는 소리를 내며 따랐다. 본래도 예뻤을 쉼터 위로 차가운 비가 쏟아져 내리니 그건 그거대로 괜찮았고 괜스레 물방울 맺힌 꽃 하나를 실없이 만졌다가 놓았다. 정말 제대로 데리고 왔군. 비가 오지 않는 곳에 오자니 이제껏 꽁꽁 뭉쳐둔 찝찝함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기분이 들어서 괜히 교복을 탈탈 털다가도 역시 묘해졌다. 네 말대로 어차피 반 젖은 거 머리도 집에서 씻을 텐데 말이야. 그리고 목소리 뭐야? 아마 제 얼굴을 보면 남 말할 처지는 아닐게 뻔했으니 지적하지도 않았고 너처럼 제대로 듣거나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은 채 조용히, 그리고 어색하게 잡힌 손목을 그저 내려다보고는 제 쪽이 먼저 당겨 떨어트렸다. 뿌려 치는 게 아니라 그저 직접 닿는 타인의 온기가 너무 따뜻해서, 그저 수줍은 고교생처럼 살짝 빼어 몸을 휙 돌려 네게 등을 보여 앉았다. 분명 보이고 싶지 않은 얼굴이겠지. 그러니까 한마디면 될 것 같다.)
... 예쁘게 해 줘.
 
루시 칼드웰:(이런 상황에도 조금은 답게 행동하듯 손을 제 자리에 놓는 네가 고맙고도 아쉬웠다. 너와 맞닿은 온기가 길이 갈 필요는 딱히 없는 너와 나는 조금 묘한 감정이 흐를뿐이지 같은 반의 친구 뿐이라며. 아쉬움과 반대로 잊을만 하면 정신을 차리게 해주는 네 행동에 비어진 온기만은 조금 더 머물라며 손을 살짝 쥔다)
 
(등을 보이며 앉은 네 뒤에 살짝 앉는다. 서로의 얼굴과 표정이 보이지 않아 조금 더 아슬한 이 느낌을 뒤로 하고 살짝 축축한 네 머리카락을 살포시 들어올린다. 정리해주겠다고 한 자신이지만 이미 네 머리는 헝클어졌다 한들 그건 그것대로 보기좋게 자연스러웠고.
 
여자아이의 머리카락 상태 따위 알지도 못하고, 이리 머리를 만진것도 네가 처음이지만 비 오는 날에도 네 상징과 같은 긴 머리는 여전히 머리끈을 풀자 제 자리를 기억하듯 뻣침 하나 없이 자연스럽게 내려앉는다. 순간 가려진 네 목덜미가 아쉬워 머리끈을 입에 물고는 두손으로 네 머리를 살포시 모아 올린다. 손가락 사이로 물처럼 스며드는 작고 얇은 머리카락들, 날씨에 조금 젖어 기분좋게 차갑고, 그 사이에 서서히 다시 보이는 분홍스럽게 달아오른 목선 하나하나가 제 시선이 머문다. 아마 네가 알면 기분나빠 할지도 모르지만 조금은 나 자신만의 비밀, 떨리는 눈은 그렇게 계속 너에게 머문다)
 
 
루시 칼드웰:'...'
 
(아무말 없이 흘러가는 시간, 정막속에 귀는 익숙해지기 시작해 사르륵 거리는 네 머리칼의 소리와 꽃봉오리 속에 물이 고이는 소리, 어깨를 살짝 들썩이며 내뱉는 너와 나의 숨소리뿐. 어느새 머리는 보기좋게 모아졌지만 조금은 아쉬워서 인지 한번더 네 머리카락을 빗어보이듯 손가락으로 흝어보며 한손으로 모아잡고는 입에 물던 머리끈으로 고정한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정돈된 머리카락. 너와 가던길을 바꾸고 들린 이 공원에 온 이유가 없어진 순간. 아쉬운 마음에 천천히 손을 내려, 손끝에는 너에게 품기는 이름모를 꽃의 향이 아른거린다)
 
됐어. 잘됐다.
 
 
루시 칼드웰:(예쁘네, 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해, 지금 상황속 말을 짧게 하는것이 제일 도움 될것같아, 더 이상 오고가는 말이 많아지다간 단내음에 속이 뒤짚어질것같아서.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그제서야 이제 너와 내 얼굴이 다시 한번 마주칠 거라는 생각에 그간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손등으로 볼을 스쳐보자 생각지도 않은 뜨거운 열기에 놀라곤 만다. 지금 네가 등을 돌리다간 여태까지 내가 숨기고 앞으로도 내 스스로 만족할 이 커다란 감정이 네 앞에 고스란히 보여질 것 같아서 결국-)
 
머리 다 묶었어. 정~말 미안한데 나 뭐 까먹은것 있는것같아 하하, 멍청이다 진짜 그치?
 
(가방을 챙기고, 천천히 일어서는 네 자리에서부터 제 교복을 챙겨 교복으로 비를 피하듯 두손을 들어, 와중에 제 얼굴 또한 숨겨볼려 노력한다. 좋아, 어색하지 않을거야.)
 
 
루시 칼드웰:그러니까 이제 집에도 다 왓겠다 너는 가라. 나는 이미 옷도 젖었으니까 우산은 그냥 너 쓰고 가고.
 
(여전히 시선은 바깥을 향해, 너를 등지고 말을 내뱉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창피해서, 떳떳하지 못함에 아마 나는 오늘의 일을 평생이고 후회하리라)
 
우산 빌려줘서 고맙다, 나 그럼 먼저 간다 내일 보자!
 
 
루시 칼드웰:(치사한 자식, 망할놈의 빌어먹을 겁쟁이. 병신이 따로없지. 너와의 구실은 오늘만으로도 충분하고도 넘쳐 흘려서 바보같이 자리를 박차고 그렇게 멀리 뛰어간다. 몸을 갑자기 흔들어거린걸까, 이제서야 정신차려보니 귀에 들려오는 제 심장소리와 뛸때마다 더욱 빨라지는 숨내음. 너는 지금 어떤 표정으로 나를 어이없게 바라보며 멀어지고 있을까.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일 만나면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줘야 겠다. 그는 그렇게 다짐했다)
 
당신은 결국 그와 함께 우산을 쓰고 가다,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뛰어갈 때 마다 들리는 찰박이는 소리.
 
손에 남은 것 같은 머리카락의 감촉.
 
감추지 못할 정도로 엉망이 되었을 얼굴.
 
순간 꽃향기가 코 끝을 스칩니다.
 
차가운 빗 속에서도 느껴지는 어지러울 정도로.
 
달콤한 향입니다.
 
그 향기가 주변 공기를 꽉 채우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그 향기는 곧 비와 함께 녹아듭니다.
 
빗 속의 당신, <건강> 판정합니다.
 
루시 칼드웰:
건강
기준치: 50/25/10
굴림: 29
판정결과: 보통 성공
 
갑작스레 가벼운 현기증이 일렁거립니다.
 
그 자리에서 주춤거리고 있자 흐릿한 시선 너머로
 
괜찮냐 급히 묻는 등 뒤의 목소리가,
 
빗소리가 점점 멀어집니다.
 
장면전환
 
...
 
당신은 퍼뜩, 눈을 뜹니다.
 
당신은 버스에 앉아 있습니다.
 
덜컹거리는 진동이 느껴집니다.
 
비도, 그의 모습도,
 
익숙한 하굣길도 보이지 않습니다.
 
창 밖의 하늘은 한쪽 끝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언제 이렇게나 시간이 지난 걸까요.
 
마침 당신의 집이 있는 정류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옵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위가 한 꺼풀 식어 있습니다.
 
느긋하게 흐르는 뭉게구름과 간간히 불어오는 산들바람.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
 
익숙한 풍경입니다.
 
꼭 오늘처럼 깨끗한 하늘이 인상적이었죠.
 
그 풍경 속에는 그 또한 있었습니다.
 
그리운 향이 나는 그 풍경 속에…
 
장면전환
 
방과 후, 교실.
 
활짝 열린 창으로 간간히 불어오는 산들바람.
 
서서히 물들어가고 있는 붉은 하늘.
 
흔들리는 커튼과 함께 일렁이는 햇빛.
 
뒷문으로 막 교실에 들어선 당신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었습니다.
 
그가 죽기 일주일 전이었나요.
 
그는 그의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습니다.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옵니다.
 
하얗고 긴,
 
그러면서 가느다란 머리카락은 여름이 시작되었을 때,
 
당신이 묶어 주는게 시작이었습니다.
 
쉬는 시간에도 빠릿하게 움직이던 그였는데
 
방과 후 혼자 남을 때까지 자고 있는게 제법 의외입니다.
 
엎드려 자고 있는 팔 아래로, 책상 위에 노트 한 권이 펼쳐져 있습니다.
 
루시 칼드웰:(커튼이 일렁일때 빛과 함께 보이는 너의 실루엣, 바람에 밀어져 네 모습이 보이는 그 찬라. 햇빛조각들과 네 가느다란 머리카락들이 참으로 잘 어울려, 여름의 잔잔한 파도같다는 감상을 잠시 하며, 조용히 네가 자고있는 앞 책상 의자에 거꾸로 앉아 그대로 한없이 바라본다)
 
(잘도 자네. 조금이라도 장난칠까 너에게 향하던 손은 잠시 멈춰, 눈에 들어온 노트 한권이 보인다. 조금은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 역시 설마 또 공부만 죽어라 하다 잠을 잔건 아닌지, 자연스레 나의 궁금증은 노트로 향한다)
 
summer:이미 펼쳐진 노트에는 그를 닮은 깔끔한 글씨가 정갈하며 반듯하게 적혀 있습니다.
'꽃', '병?', '병원에 가보기' 같은 단어들이 적혀 있습니다.
 
루시 칼드웰:'꽃'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단어, 다른것을 읽어내리기도 전에 너와 예전에 했던 기억이 올라와 자연스레 글을 읽어내리기 시작한다)
 
summer:자연스럽게 읽어가며 다음 페이지를 보면 그가 스크랩해둔 신문기사의 일부를 발견합니다.
 
신문기사
 
summer:이후는 잘려 있어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루시 칼드웰:'원인 불명의 병... 감정에 영향을 받아?'
 
(그닥 놀랍지는 않았다. 그야, 공부 노트겠니 싶다 생각한지라. 내 눈앞에 너는 이리 예쁘고 생생하게 잠들어있는데, 그저 자신이 잠시 졸았던 수업 내용의 일부였는지, 모르겠다는듯 긁적인다. 어디보자. 조금은 읽으면 기억날까, 깨어나면 염치없지만 노트라도 빌려달라고 해야겠다)
 
[이어 노트를 읽어 내려가 '병원에 가보기' 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괜히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깼는지
 
그가 눈을 뜨고 일어납니다.
 
눈을 비비는 그를 봅니다. <지능> 판정 합니다.
 
루시 칼드웰: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51
판정결과: 보통 성공
 
summer:그러고 보니, 그가 최근에 자주 졸거나 잠드는 모습을 보입니다.
원래 졸기는 커녕 흐트러짐 하나 없었는데...
 
사라 발렌티나:...뭐니? 그렇게 멀뚱멀뚱 서서. (부스스 하게 일어났다가 금방 가늘게 눈뜨고)
 
루시 칼드웰:(타이밍도 좋지. 머리가 아찔하지, 그야 가볍게 본 네 노트속. 마지막 문장을 읽지 않았다면 제법 또 운좋은 단내음이 진동할지도 모를 일화가 될 수 있었는데, 그런 너를 나는 말없이 한참이고 바라본다.)
 
아, 그게.
 
(... 혹시 가족분이나 아는 지인이 아픈걸까? 그럴수도 있지. 병원 방문은 나도 이따금씩 부활동으로 인해 이리저리 뒹굴던 친구들 보러 간적도 많으니. 아무리 상대방이 중요한 인물이라 한들 호들갑 떨 이유는 없잖아. 침착하자)
 
 
루시 칼드웰:어디 친구라도 만나러 가냐?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제법 지금은 제 감정을 잘 감추는것같아, 덤덤하게 불안감을 지르고 네 노트 위 '병원방문' 필기 부분을 손가락으로 톡톡)
 
사라 발렌티나:갑자기 무슨 소리야? (얼토당토 없는 소리를. 여전히 눈매를 가늘게 하고 보다가 자연스럽게 시선이 밑으로 향했다가 그제야 훤히 펼쳐둔 제 공책이 보였다. 그걸 멍하니 봤던 게 1초, 서서히 일그러지는 게 3초, 네 쪽을 보며 소리치는 게 5초 정도. 공책을 짝 소리 나도록 덮어버리고 가방에 불쑥 넣었다.)
왜 남의 걸 함부로 봐! 펼쳐져 있다고 막 보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니까 신경 끄라고! (별 것도 아닌 일에 높게 소리쳤다는 걸 눈치챈건 이미 내지르고 난 뒤라 어색하게 입을 닫았다. 그렇다고 사과는 또 하지 않는 것이 평소답다고 하면 평소답다 해야하나.)
 
루시 칼드웰:(왜 남의 것을 함부로 보냐느니, 네 화내는 목소리는 별안간 제 귀에 들어오지 않는듯 했다. 항상 당당했을 너는 오늘따라 많이 당황스러운 듯 보였고 마치 들켰다는듯 하는 네 반응이 그저 곤혹스러웠다. 저도모르게 손은 올라가 조금은 아플 수 있을 정도로 힘이들어간체 네 양쪽 어깨를 잡고 너가 어디 한곳으로도 튀지않도록 너를 죽어라 바라본다. 뻔뻔하기도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인가, 아마 그의 머리속에 정상적으로 돌아가는것은 없으리라)
 
너, 반응 왜 그래? 친구나 지인이 아픈거, 병원 방문 하는걸수도 있잖아?! 너 , 혹시 나한테 뭐 숨기는-
 
(멈칫, 손에 들어간 힘은 빠져 너를 이제서야 꽉 잡고 있었단 생각에 놀라 두 손을 빠르게 치우고 당황스러운듯 너를 바라본다. 나에게 숨기는것이 있었다 한들, 너와 나 사이에 그것을 공유할만한 깊은 연결고리가 있는가? 결국에 이 상황에서 무엇보다 상대방을 중요하게 바라보는 이는 나였고 너는 아니였음을.
 
 
루시 칼드웰:...망설였지만 공중에 갈길잃은 손은 불안한듯 제 손목아대위로 손목을 힘차게 쥔다. 피가 안통하듯 손끝이 저려온다. 네가 말했던적 있던가. 좋아하는 만큼 싫어하게 된 것이 있다고. 지금 나의 물음이 조금이라도 나를 친구로써 좋아했던 마음에 먹물을 칠한다 한들 결국 네가 내가 바라볼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서만 살아준다면 충분히 만족할수 있다 생각해서, 내가 네 그 멍청한 꽃말의 꽃이 되어주겠노라 다짐하고는 쓴맛을 삼키며 말을 이어간다)
 
...너 나에게 숨기는거 있어? ..너 어디 아파? 말해봐.
 
(싫어져도 좋다, 이런 생각지도 않은 질척거림에 질색을 하고 뺨을 때려도 좋아, 오늘 묶은 저 머리가 너와의 마지막의 추억이 된다 한들 좋다. 잠자 소복히 감긴 네 긴 속눈썹이 보이도록 가까이 곁에 있는 이 시간도 마지막이 된다 한들 나는 좋다. 틀어진다 한들 너에게 무엇을 바란것이 아니기에 바뀌는것은 없다. 바득이는 입안은 매스꺼움이 가득한 여름날)
 
사라 발렌티나:(아파. 당당히 받아치기엔 그럴만한 소재가 없어서, 그리고 별 것 아니라고 둘러댈 타이밍을 놓쳐서 쏘아붙이지 못했다. 그냥 그래 맞아, 내 지인이 아파. 이렇게 말하고 끝낼걸 왜 갑자기 답지 않게 욱해서는. 그래서 나는 네게 잔인해지기로 했다. 들키기 싫어. 들키기 싫어. 들키고 싶지 않아.)
네가 무슨 상관이야. (거절도 수락도 그렇다고 좋고 싫음도 아닌 것이 명백하게 그어져 행여 어떤 것이든 손에 걸릴 수 없도록. 나는 원래 이랬어, 원래 이런 사람이었어. 자신의 잔인함에 정당성을 부여한 최악의 사람처럼 되려 잔잔하게 뱉은 그 말은 사실밖에 없었다. 너와 나는 무슨 사이지? 대체 무엇이냔 말이다. 이렇게 덧붙이면 아마 제대로 된 답변 조차 하지 못할 그런 어정쩡한 관계. 그리고 내가 너에게 느끼는 개인적인 꺼림칙함. 어느 순간인가 욱했던 감정은 잦아들고 지독하게 머리가 차가워져서 제가 하는 일을 깨닫고 난 뒤엔 그냥 이걸 밀고 나가기로 했다.)
내가 뭔가를 숨긴다고 쳐도 그걸 네게 말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분명 계절은 여름이고 땅 꺼미가 지고 있을 시간인데도 순식간에 서늘해져서 찬 공기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여기까지야, 잘 판단해. 그간 좋은 추억이 있었음에도 그렇게 담은 눈은 정말 차가워서, 차가워서, 욱! 갑작스레 치고 올라오는 더부룩함에 급히 가방을 챙겨 품에 끌어안았다.) 화장, 실...!
 
그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입을 가리고 힘겹게 말하고는,
 
급하게 문을 열고 뛰쳐나갑니다.
 
연신 들려오는 기침소리와 다급한 발소리.
 
그가 떠난 자리에는 달콤한 향이 남아 있습니다.
 
루시 칼드웰:(새하얗게 시야가 흐러진다. 이러단 또 빌어먹을 여름 더위에 너를 뒤로 한체 기억없이 쓰러질까 피가 쏠리도록 제 입술을 깨물고 벅차고 일어나 너를 쫓아간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들의 연속, 유리파편을 씹은듯 아작이는 입안속에는 웃기게도 쓴맛도 단맛도 아닌 울컥 쏟아지는 젖은 감정들많이 가득했다)
 
괜찮아?! 야-!! 사라!!!
 
(황급히 너를 쫓아가, 금방이라도 사라질것같은 너를 잡는다. 순간 차갑게 올라오는 기운에 놀라 머리카락보다 더욱 새하얗게 지럴버린 너를 보고 내가 방금 무엇에 화를 내고 감정을 쏟아내며 앞으로 틀어질날들에 책임을 들려 했는가. 머리는 굴러가지 않는다.)
 
 
루시 칼드웰:토할것 같아? 제기랄 씨발, 담탱은 어딨는거야, 양호실도 더럽게 먼데, 토할것 같으면 말 해 내 옷이라도 벗어줄테니까- 제기랄 도대체 왜그러는건데-.
 
(이런 상황에 네가 진정할 수 있도록 힘이되어줘야 하는데 당황함에 눈물만이 나지 않을 뿐 무엇 하나 건들면 무너져내릴것처럼 가슴이 아프다 못해 깨지기 시작한다. 청춘같았던 너와 나의 여름의 한 오후가 급격하게 악몽처럼 시꺼멓게 물들어, 나를 떠나지 말라고)
 
당신이 화장실 쪽으로 가까이 갈수록 짙은 꽃향기가 납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진한 향기에 눈앞이 아찔해집니다.
 
화장실에서는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듣기> 판정 합니다.
 
루시 칼드웰:
듣기
기준치: 45/22/9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summer:화장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기침소리와, 작은 신음소리.
누구의 목소리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당신의 눈앞은 하얗게 물들어갑니다.
 
균형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 깜빡, 깜빡.
 
익숙한 천장이 보입니다.
 
루시, 당신의 방이에요.
 
언제 돌아온 것일까요?
 
당신은 침대에 쓰러져 자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방금 본 것은 꿈?
 
당신의 망상에 불과한 건가요?
 
1년 전,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끝없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당신의 방은 아침에 나올 때와 같습니다.
 
침대와 책장, 책상이 있습니다.
 
루시 칼드웰:(알수없는 두통, 몸은 죽을듯이 무거워 정신을 차리도 못한 체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핀다. 왜이리 자꾸만 필름이 끊기듯 시간이 오고가는지, 그 와중에 모든 이야기가 너를 향한 순간들인지. 무겁게 일어나 침대를 확인한다)
 
summer:침대는 어느 때와 같습니다. 자고 일어나 조금 구겨져 있을 뿐입니다.
 
루시 칼드웰:(예전같으면 침대를 정리했겠지만,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켜 지저분한 상태로 일어난다. 일어서자 머리에 구멍이라도 생긴듯 갑작스레 무거움은 사라지고 공허함이 머리속을 차지한다, 무게중심이 바뀜에 제기랄 중얼거리고는 책상에 다가간다)
 
summer:책상 또한 마지막으로 본 그 장면 그대로 입니다.
당신은 대체 언제 집으로 온걸까요.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루시 칼드웰:(혼란스러워. 몸이라도 안좋은건지, 물이라도 시원하게 마셔보고 싶지만 그럴만한 기력이 나지 않아 손 하나를 책상위에 지탱하고 힘든듯 손으로 제얼굴을 쓸어내린다)
 
시발 머리야-.... 오늘이 며칠이지.
 
(아마 분명 아침에 너의 기일을 확인하고 나갔음이 분명한데, 주머니에 핸드폰이 들어있나 뒤적인다)
 
2021년 8월 4일,
 
summer:그 애가 죽은지 1년이 되는 날짜가 띄워져 있습니다.
 
루시 칼드웰:(분명 나는 아침에 너를 만나러 준비를 하고 방을 나갔을텐데,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선명했던 바깥 여름의 더위와 시들까봐 제 그림자에 안겨두었던 너를 위한 꽃다발도 흔적하나없이 사라졌다. 아픈 머리를 긁는다고 나아질까, 화가섞인듯 머리를 마고 긁어보지만 뭐 하나 바뀌는것은 없이 거지같은 상황. 마치 기억하는 자신의 원래대로의 루트를 밟듯 무엇 하나라도 찾을랴 이번에는 책장에 다가간다)
 
<자료조사> 판정 합니다.
 
루시 칼드웰:
자료조사
기준치: 20/10/4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정신이 오락가락 한들 이것을 놓치면 안될것같다. 루시는 조금 더 힘을내기로 한다...)
 
좋아요. 자료조사 강행 판정 합니다.
 
루시 칼드웰:
자료조사
기준치: 20/10/4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summer:딱 봐도 일어났을 때와 큰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거실에는 Tv가 켜져 있고,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 병이 발견된 지 대략 1년째, 인체에 큰 해악을 끼치지는 않지만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꽃을 토하는 증상을 보입니다. 꽃의 종류는 천차만별입니다. 이런 독특한 증상에서 이름을 따와 해당 병을 '하나하키 병'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병의 원인은 짝사랑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짝사랑의 감정이 해소되자 병이 나았다는 사례에 대한 보고가 여러 차례 있었으며…
 
기자의 목소리와 함께 Tv 화면에 병원의 모습이 비칩니다.
 
그러고 보니,
 
방금 꿈에서 본 그 날 이후로 그는
 
일주일간 학교를 오지 않았습니다.
 
연락 하나 없이,
 
선생님의 입으로 근처 대형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만을 전해 들었죠.
 
별 일 아닐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만난 너는,
 
하얀 국화 사이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를 찾아가 봤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요?
 
그 병원에 가봤더라면…
 
...
 
다음 순간,
 
당신이 눈을 깜빡인 그 순간.
 
주변 풍경이 뒤바뀝니다.
 
장면전환
 
당신이 서 있는 곳은 병원 앞.
 
그가 입원했던 그 병원입니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오감이
 
당신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그가 입원했던 그 병원입니다.
 
<이성> 판정 합니다.
 
루시 칼드웰:
SAN Roll
기준치: 59/29/11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습니다.
 
하늘은 붉습니다.
 
지독하게 외로운 노을의 색.
 
몇 번이고 너를 떠올리게 만드는 색.
 
휴대전화 날짜를 확인해 보면 그가 죽기 하루 전날임을 알 수 있습니다.
 
루시 칼드웰:(영화속의 장면. 몇번이고 바뀌는 혼란함 속 나는 또 한번 낯선 환경에 눈이 부시듯 제 손등으로 눈을 가려 익숙해질때까지 한참을 찌푸린다.
 
코에 옅게 나는 쓴 약의 냄새. 작게 들려오는 기계음 소리, 그리고 그 사이에 흩어지듯 코끝을 간질거리는 단내음에 저도모르게 그길을 따라갈려듯 발을 들어올릴려 했으나 무엇이 저를 막는지 그자리에 우뚝 서 향기가 나는 곳만을 바라본다. 끝없이 이어지는 새하얀 복도. 어쩐지 병원은 한없이 조용했고 누구 하나 보이지 않는다.
 
마이너스 일. 어떠한 굴례와 시간선에 존재하는지 몰라도 나는 얼추 너의 기억과 이 날 이후의 기억을 가지고 이곳에 와있다. 너를 잃기 하루전, 제 세상을 송두리채 바꿔버릴 그날의 몇시간 전.
 
 
루시 칼드웰:수없이 후회하며 그저 시간이 돌아가길 바란적이 있었다. 무엇을 후회하고 무엇을 바꾸고 싶기에 그리 간절했는지 아직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절실함 하나는 여름 아지랑이보다 크게 일렁이고 녹아내렸다. 흔해빠진 소설마냥 바램속 드디어 서 있는 자신, 그토록 바랬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이루어짐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뚝 서있는 자신을 바라본다.
 
솔직히 아직도 자신이 무엇을 했어야 했는지에 대한 명백한 답안을 찾지 못했다. 너를 좋아하고 너를 닮고싶어 너처럼 똑부러지게 항상 머리속을 굴려보았지만 결국 그것이 너를 잃게 하진 않았나 싶었다)
 
'뚜벅뚜벅'
 
 
루시 칼드웰:(조용히 제 주변을 지나가는 간호사. 그녀 뒤를 보자하니 머리속이 한없이 어지러워진다. 이런 순간을 흔하게 데자뷰라고 하지 않는가, 처음 보는 간호사의 등 뒤로 기억하지 않고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흐릿하게 제 시야에 무엇 하나가 재생된다. 나로 판단되는 아이는 헐떡이며 뛰고있고 그런 간호사를 잡고 한 아이의 이름을 물어본다)
 
(나는 알기 쉬운 아이라 너는 그랬던가, 순간 제 몸에 영혼이 빠지듯 저와 비슷한 아이의 몸짓을 보자하니 네가 말한 말이 무엇인지 좀 알 것 같은 기분이다. 나와 비슷하게 생긴 아이는 헐떡이며 누군가를 간절히 찾고 있고, 불안함보다는 확신에 찬 눈빛에 나는 홀려 그를 따라해보자 싶어 지나가는 간호사를 잡는다)
 
저기, 그러니까
 
 
루시 칼드웰:(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눈을 잠시 감아보자 또 다시 보이는 저와 닮은 현상에 자연스레 내 입에서는 너라는 이름이 나온다)
 
베타, 사라여도 좋아. 그 아이가 있는 병실이 어딨어?
 
(꽤나 당돌하고도 매너 하나 없는 새끼구나, 너와 똑같은 대사를 읊는 나를 보고 조금은 어이없게 웃어보였다. 한참 제 품에 있는 종이를 팔랑거리다 한쪽을 가르키는 간호사를 뒤로하고 냅다 뛰어가는 저새끼. 내가 보기에도 영 아니였는지 고맙다고 까딱 인사를 하고 저놈의 뒤를 따라간다. 확신에 차보이는 저 녀석은 뛰어가는 보복에 따라잡지 못해 복도 중간 어느 방 하나에 멈춰 그렇게 사라진다)
 
 
루시 칼드웰:(새 하얀 문. 이 넘어로 나를 닮은 놈은 신기루마냥 사라진다. 그래서 너는 네가 원하는것에 도달했는지 조금은 물어보고싶었지만 새끼 지 중요한것이 전부인지 물어볼 기회도 주지 않고 사라지다니.
 
그렇게 나는 나를 따라 하얀 문 위에 작은 노크를 하고 문넘어 무엇이 있을지 알지도 못한체 천천히 문을 연다)
 
summer:그의 병실은 1인실로, 지금은 비어 있습니다.
침대 위에 그의 것으로 보이는 물건들과 구겨진 종이뭉치가 늘어져 있습니다.
침대 옆 선반 위에는 진료차트가 놓여 있습니다.
 
루시 칼드웰:(걸어가는 발걸음이 울리도록 병실은 조용하다. 신발소리를 내며 병실 안을 들어가, 아직 정리가 안된듯 어질러진 방을 허락없이 훑어본다. 자연스레 눈에 들어간 진료 차트. 내가 봐도될련지 조금은 망설이듯 주위를 살피지만 이미 허락없이 병실에 들어왔겠다, 오랜만에 뻔뻔한 제 성격으로 진료차트를 살펴본다)
 
summer:그의 진료 내용이 작성되어 있습니다.
 
진료차트
 
그의 병에 대해 알게 된 당신. <이성> 판정 합니다.
 
루시 칼드웰:
SAN Roll
기준치: 59/29/11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1 감소합니다.
 
주변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 것만 같습니다.
 
루시 칼드웰:(머리가 무겁다. 너를 마주할수 있을지도 모르는 설렘이 더욱 앞서 이제서야 네가 어째서 이런곳에 머물고 있어야만 했는지 그리고 명백히 그러한 이유가 무엇이였는지 퍼즐조각이 맞추듯 빈 속이 채워지자 감당할수 없을 정도의 무게가 자신을 눌려내린다. 암울했으며 손끝이 떨리지만 나를 닮은 너는 그럼에도 그렇게 숨이 차도록 달리지 않았는가. 이 순간이 절대 후회가 되지않도록 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천천히 진료시트를 내려놓는다.
 
침대위에 어질러진 종이뭉치를 살펴본다)
 
summer:펼쳐보면 구겨진 편지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위쪽에 적힌 루시에게.
한 마디를 제외하고는 백지입니다.
 
공기가 한층 더 가라앉습니다.
 
이 사실을 그도 알고 있다면,
 
그렇다면…
 
그 아이가 죽은 이유는…
 
눈앞이 캄캄해지며 세상이 어둡게 물들어갑니다.
 
병실의 풍경을 어둠이 집어삼킵니다.
 
당신은 어둠밖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서 있습니다.
 
바로 눈앞에 있을 당신의 손도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도 꿈인가요?
 
주변을 둘러보면,
 
저 멀리에 작은 불빛이 보입니다.
 
빛을 향해 걸어가도 발을 딛는 느낌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 당신은 빛에 가까워져 갑니다.
 
느낄 수 있습니다.
 
어두운 공간 속을 헤치고 나아가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나?"
 
공간 전체를 울리는 것 같은 위압적인 소리가 들려옵니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입니다.
 
하지만, 어딘가 낯익은…
 
그때,
 
당신의 머리에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제야 기억이 나나요?
 
당신은 누군가에게 빌었습니다.
 
그가 죽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달라고.
 
이번에도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너를 빼앗아 가지 말라고.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와 당신에게 물었죠.
 
당신의 답은 물론…
 
꿈이 아니에요, 루시.
 
당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입니다.
 
그를 다시 만날 기회.
 
너와 여름을 함께할 기회.
 
그리고, 너를 살릴 기회.
 
어째서 잊고 있었던 걸까요?
 
잊을 수 있는 일이 아닌데도.
 
뒤죽박죽이었던 기억들이 맞물려갑니다.
 
어느새 당신은 빛에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네모난 문이라도 되는 듯,
 
둠 속에 하얀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눈을 뜨세요, 당신.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에요.
 
장면전환
 
 
당신은 눈을 뜹니다.
 
방과 후, 아무도 없는 교실입니다.
 
지금 시간은 6시 53분.
 
창에 쳐진 커튼에 노을의 붉음이 베여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린 커튼이 스치는 소리만이 들려옵니다.
 
그에 따라 붉은빛이 일렁이며
 
어두침침한 교실 안으로 흘러듭니다.
 
그 날.
 
바로 그 날입니다.
 
늦여름의 노을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날.
 
네가 사라져 버린 날.
 
너와 함께했던 마지막 여름날.
 
교실 안에는 당신만이 있습니다.
 
그는 옥상에 있겠죠.
 
<관찰> 판정 합니다.
 
루시 칼드웰: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31
판정결과: 보통 성공
 
summer:그의 책상에서 삐져나온 봉투를 발견합니다.
백색의 깨끗한 편지봉투입니다.
 
루시 칼드웰:(몇번이고 읽어 내려간다. 주마등처럼 지내온 너와의 모든 시간들이 잊혀짐 하나 없이 제 머리속에 나열된다. 여전히 흐릿한 기억하지 못하는 다른 세계의, 하지만 분명 너와 나의 모습이 일렁이고.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여전히 한없이 떨어지는 꽃잎을 쥐지 못해 처절하게 후회하고 울고있었다.
 
편지 위 곱게쓴 단어 하나가 흐릿해지자 그제서야 참지 못한 눈물 하나가 떨어져 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흔적을 지워버린다. 그게 분해서 눈가가 붉고 피부가 올라올 정도로 벅벅 무식하게 닦아보았다.
 
네가 써내려진, 읽었으면 안될지도 모르는 편지를 제 주머니에 넣고 아직 물어보고싶고 답이 필요한 이 감정들을 다 내던진다. 과거에 몇번이고 나는 멍청이인지라 너를 기다리게 하다 못해 스스로를 끊게 만든 장본인이였고 아마 몇번이고 그래왔을 무게감이 더해지자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워, 중심을 잡을때마다 무언가 제 몸을 때리듯 통증마져느껴 내려온다.
 
 
루시 칼드웰:흐릿해질듯 말듯 한 시야, 입안에서는 풀을 씹듯 쓴맛이 나지만 후에 들어오는 단내음이 한없이 나온다. 무언가 올라와 제 입을 가득 채워 토해내려 하지만 억누르고 삼켜.
 
욕심내는것이 두려워 나는 그간 갓잖은 걱정을 했구나. 진정 너를 원하는 만큼 너를 갈망하는것 쯤은 내가 무섭지 않았다면, 만족하지 않고 무식함에서라도 너를 가지겠노라 먼저 뛰쳐나갔어야 했다. 어떠한 모종의 이유라 한들 겁이 있었고, 어째서인지 너를 한번 잃어본듯한 아픔이 있어 지금 앞에 있어주는것만으로도 고마워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어리석은 인간인지라 너와의 소중한 시간들은 제 갈망을 채우다 못해 넘쳐흘러, 너와의 시간들이 자리없이 말라버릴까 너를 담을 그릇을 하나둘씩 채워버려. 만지다가도 떨어지는 덕에 꽃은 좋은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해 그렇게 사람의 손에 어설프게 탄 채 시들어갔다.
 
계단을 오르고 노을빛이 문을 그리듯 틈새사이로 흘러나온다. 그 빛 사이로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너를 볼생각에 망설임 하나 없이 문을 벌컥 연다.
 
 
루시 칼드웰:붉은 캔버스 위에 새하얀 물감을 쏟아낸듯 반짝이는 너는 그 어느날보다 지독한 꽃내음을 내뿜는다. 작은 여름바람과 함께 너는 조금 휘청이는 듯 보여, 목은 무엇이 막힌듯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그저 발 빠른 제 자신을 믿는듯 너에게 뛰어올라 재빠르게 제 품에 당겨 꼴사납게 쿵 소리를 내고는 등으로 옥상위에 그렇게 착지한다.
 
하고싶은 말이 많았지만 목소리가 나질 않아, 또 다시 기억을 잃을 것같아 꽉 막힌 목을 삼키고 어렵게 다시한번 진정있게 읊고 싶었던 너를 부른다.
 
나름, 너와 만나는 이 시간 멋진 대사라도 뱉어볼까 싶었지만 감정이 앞선 읽기 쉬운 소년은 어린아이처럼 아마도 너를 그렇게 안으며 목놓아 울었다)
 
당신은 옥상을 향해 달립니다.
 
복도를 지나치고,
 
계단을 올라갑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폐가 터질 것만 같습니다.
 
조금은 녹슨 철문 틈으로 붉은빛이
 
길게 뻗어 나와 있습니다.
 
문을 열자,
 
눈부신 햇빛이 쏟아집니다.
 
눈을 뜰 수가 없습니다.
 
기분 좋은 바람이 이마를 간지럽힙니다.
 
반사적으로 감았던 눈을 다시 뜨면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아찔할 만큼 붉은 노을,
 
느긋하게 흘러가는 구름.
 
그 아래 서있는 그.
 
그의 옆에는 제게 맞는 작은 실내화가
 
가지하게 놓인 것이 보입니다.
 
메신저 창이 띄워져 있는 휴대폰을 든 채
 
눈을 크게 뜨며 당신을 바라봅니다.
 
01
 
루시 칼드웰:'언젠가 신경쓰여서'
 
(눈은 심히 일렁이고 있었다. 새하얗게 변하고 시야가 흐릿해지는것이 또 다시 쓰러질것같던 그 순간과 비슷했지만 웃기게도 머리는 무척이나 맑아, 그저 제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멈추지 못해 눈에 차오른 여름이 시야를 일렁이게 만들고 있음을, 헐떡이는 숨의 진동에 아슬하게 쌓여있던 눈물은 넘치다 못해 떨어진다)
 
'단지 울고 싶어서'
 
 
루시 칼드웰:(여름은 여전히 뜨거웠다. 내 품속은 따뜻했고, 작게 너의 헐떡임이 들려 가슴팍이 적심을 느낄수 있었다. 말도 안되는 상황속에서도 기특하게도 나의 손을 떨지 않고 저도 모르게 네 뒷머리를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어)
 
'울게 해줘 있는 그대로'
 
하아, 쿨럭-
 
 
루시 칼드웰:(그제서야 제 귀에 들려오는 기침소리, 막힌 목이 뚫리듯 숨을 깊게 들이 마시며 울음소리와 함께 내뱉었다. 눈주위는 떨어질듯이 아파왔고 하도 목소리는 나온다 한들 제 감정의 형태를 만들 힘은 아직은 없었다)
 
'만약 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몇번이고 쿨럭이며 울음을 내뱉었는가, 이것이 꿈이 아니길 바래 와중에 입술을 잘근 씹어 몇번이고 저릿함을 확인했다. 조금은 힘들게 일어나 아마 흐느기는 너를 조심스레 앉혀 나는 그렇게 두 무릎을 땅에 내려 네 가련한 손에 깍지를 쥐어본다)
 
 
루시 칼드웰:'가슴 속의 괴로움을 안고 있었어'
 
(너의 얼굴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도 작은 자존심이 납득하지 못하는지 너와 맞잡은 깍지 낀 손등 위로 톡 소리를 내는 눈물에 조금 더 헐떡이며 숨을 고른다. 입안의 단내음이 가득해, 지독하게 달아 역겨울 정도의 향기. 그렇게 힘들게 입을 모아 드디어 너에게 하고싶은 말을 전한다)
 
드디어 만질 수 있어.
뼈 세워가면서 네 손가락이 만져진다 착각하지 않아도 돼.
 
루시 칼드웰:
(쿨럭인다, 꼴사납다 정말. 내뱉는 진심속에 섞인 듣기 싫은 자신의 울음소리에 화가 난듯 이를 바득이며 어깨로 무심코 제 눈가를 벅벅 닦는다.)
 
너에게 조금 더 다가갔다면, 어떤 느낌일까.
부드러울까, 상상하고 후회하며 쓸어봤다고.
 
 
루시 칼드웰:(깍지 풀린 손과 동시에 제손등에 맺힌 눈물이 떨어져 달가오른 옥상에 자국을 남긴다)
 
꿈 아니지, 말해보라고 X발.
안울려고 했는데, 거지같네 젠장.
 
(몇번이나 닦아도 멈출줄 모르는 빌어먹을 새끼. 아마 내 얼굴 무척이나 보기 흉하겠지. 마음같아서는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너를 반기고 싶은데, 될대로 되라던지, 드디어 고개를 들어 여태 겁내어 보지못한 너를 바라본다)
 
루시 칼드웰:
너 왜 나한테 인사도 안 하고 가?
X발 그런말을 하고 남기면 남은 나는 어떨지 생각은 해봤어?
 
'나의 곁에서 흔적 없이 사라질 것 같아서'
 
 
루시 칼드웰:그래, 인정해. 멍청이라서, 네가 말한 읽기 쉬운놈이라 그만큼 투명한 새끼야. 그래서 다가가는것도 너에게 전부 보여져 버릴까 겁쟁이마냥 도망쳤어 근데 말이야-
 
미안한데, 나 널 잊을 자신감은 하나도 없다. 다음에도 만나지 말자는 그 말 지킬 자신이 존나게 없다고 알겠어?
 
(네 볼을 쓸어내린다. 내 눈물인지 네 눈물인지 모를 차가움과 거짓말같이 따스하게 만져지는 너에 다시한번 울컥이고 내뱉는다)
 
 
루시 칼드웰:그래서 나 그냥 욕심 내면 안될까?
빌어먹을 병이고 X까라 하고 그러니까
 
(몇번의 굴례속에서 나는 너를 잃었는가, 그리고 몇번이고 반복되어야 나는 일찍히 너를 잡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길까. 지금에서라도 늦지않았다면 나는 이번생으로 부터 착실히 행하리라. 너를 다시는 잃지 않도록 이기적이게 너를 가두고 내것이라 세상에 뻔뻔하게 말하겠노라)
 
그니까 나 널.
 
루시 칼드웰:좋아해.
 
(너는 결국 만나지 말자는 말과 함께 사라졌지만 욕심내어 그러지 말자 외친다. 내가 만약 너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이번이 마지막이라면 져버린 기회들과 시간또한 있었으니라. 아마 그럼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과거에서부터 아주 오랫동안 너를 좋아했다고, 그러니 처음 만난듯한 이번 생에도 한번 잃어버린듯한 아픔이 고스란히 남겨있는거라고)
 
사라 발렌티나:(빨갛게 익어하고 있는 여름의 하늘은 높을수록 덥고 뜨겁고, 그러면서도 가끔 바람이 불어 순간 착각할 뻔할 만큼 기분 좋게 시원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나 드라마에 나온 것처럼 실내화를 벗어 가지런히 두고 난간과 가까이 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게 남길 말을 생각했다가 결국 선택한 건 음성이 아니라 고작해야 문자 몇 개인 메신저였다. 그렇게 하고, 뛰어내리자.... 그렇게 생각한 지가 조금 전. 망설이고 망설이다 이제 정말로 미련을 갖지 말자며 핸드폰을 쥔 두 손에 땀이 차오르고 신기루처럼 흐린 너를 봤다는 착각을 하는 순간 이미 난관 끝에서 떨어질 만큼 떨어져 있었다. 나는 아직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아직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네 말을 들을 때마다 순식간에 변해가는 제 얼굴을 꿈에도 모른 채, 어쩌면 그럴 여유가 없을 정도로 숨이 차올라 눈 앞이 흐렸다. 하고 싶은 말이 잔뜩인데, 나오지 않아. 네가 어떻게 알고 있어. 언제부터 알았던 거야. 왜 그 말을 지금의 네 입에 담아. 아, 소름 끼치도록 온기가 닿아.)
널... 놓아줄, 내, 일생을, 걸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 해서. (마르지 않는 얼굴에서 나오는 건 변명과 끊어지는 말, 그리고 퍽 다정한 배려. 마치 오랫동안 사랑하며 지내온 연인이라도 만난듯한 말에는 한없이 애정이 서려 있어서 미치도록 목이 막혀왔다. 나도 나쁜 사람이지만 너도 못된 사람이야. 두 번을 걸쳐 나를 위해 뛰어올 필요 없어. 제발 그렇게 하지 말아 줘. 애정은 절망으로 이어져 제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차마 들지 못한 고개 너머로 후덥지근한, 그러니까 아직까지 살아서 맞고 있는 공기와 바람이 느껴져서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 널, 내가 너를, 항상 아프게 해... (나는 왜 이렇게 이기적일까. 거절하고, 모른 척하고, 냉정하게 굴며 제 마음을 속이려고 했던 주제에 이렇게 널 다시 만남에 순간적으로 안심한 스스로를 혐오해. 루시, 나 꿈을 꿔. 얼마 전부터 꿈을 꿨어. 아무것도 없는 하얀 꿈에서 혼자 있으면 누군가가 끊임없이 말을 걸어. 몇 번이나 돌아보지 않았으면서 뒤늦게 돌아보면 누군가는 먼지가 되어 사라져 가. 그리고 내가 모르는 장면을 봐. 너와 내가 닮았고, 나는 여전히 겁쟁이라 너를 힘들게 해. 너와 내가 서로 어떤 방식으로 알아냈고 지금 이렇게 있다한들 중요한 문제는 변하지 않아. 내가 널 좋아하는 한, 내 입에서 아네모네의 꽃잎이 나오는 한, 너를 괴롭히며 결국 죽음으로 이끌게 될 거야. 이런 스스로의 처지에 불평할 수 없었던 건 아무것도 몰랐던 자신. 그 이후 천천히 받아들인 이유는 이게 바로 벌이구나, 싶었던 납득 때문에.)
왜 늦지 않은 거야. 왜 뛰어서 왔어. 왜... (왜 나를 아직도 좋아해 주는 거야. 일부러 네가 묶어준 머리끈도 풀었어. 나름대로 너에 대한 미련과 속죄의 의미였어. 아아, 너무 슬프고 벅차면 소리마저 나지 않는다고 하던데 이게 그런 거구나. 속이 아파와, 이런 순간에도 너와 나를 아프게 할 꽃잎이 터져 나올 것 같아. 줄기를 숙인 꽃 마냥 너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좋아해, 좋아해. 정말 좋아해. 미안해, 좋아해서. 내가 널, 좋아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널 좋아하면 널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해. 루시, 미안해. 좋아해서... 당연한 벌이 내려진 거야. 나는 원래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거였어. 좋아해서 미안해... ...
 
루시 칼드웰:(차라리 팔이 분질러져 피가나고 뼈가 보이는 아픔이라면 좋았을것을, 고백과 미안함을 반복하는 네 진심 어린 소리에 너를 만나 기쁨도 잠시 온 세상에 너와 단 둘이 버려진 느낌이라 처절하게 아파왔다.
웃기지 않은가. 내 스스로도 말했던 대화가 이제서야 들어온다. 네가 좋아하는 만큼 싫어하게 된 꽃말을 들었을때 그 꽃말을 내뱉는 사람의 편을 들어주었는데, 이 순간 마져도 깨달음의 연속이다. 네가 좋아하는 만큼 나를 싫어할까봐 그게 두려웠지만 비참한 사랑의 꽃말을 선물 하는 사람처럼 나 또한 사랑을 받지못해 싫어저버린 아이가 될것이 무서워 두려워하는것이 아닌, 꽃을 내밀는 사람의 아픔을, 좋아하는것을 싫어하게 되어버리는 과정의 아픔을 일찍히 알았더라면)
(한없이 미안하다 외치는 너에게 더 이상의 사과는 듣고싶지 않아 떨리는 손으로 너를 한것 안는다. 고맙게도 역겹기 시작한 단내음은 조금씩 사라져)
나도 멍청하지만 너도 무척 멍청인거 알아? 둘이 잘하는 짓이다 그렇지? (어이없게 울음과 쿨럭이며 나오는 작은 웃음. 메스꺼움이 사그러지듯 더욱 나는 그렇게 말을 이어간다) 더 듣고싶지 않으니까 차라리 내 말이나 듣고 너는 숨이나 고르고 있어 (천천히 너와 떨어져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어루어 만져준다. 서로 붉에 물든 눈이 웃겨 입가에 쓴웃음이 지는것은 어쩔수 없나보다)
내가 이런 말 하기도 쪽팔린데... 운명인지 뭔지 머리가 나빠서 아직은 모르겠어. 무엇이든 너에 관련된 것이라면 하염없이 반복되고 같은 실수를 한 기분이 들어. 근데도 말이야.
그저 운명이란 그런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를 쓰기에 내 감정은 단순해. 너를 좋아하니까. 그로 인해 아프고 X같은것들은 순전 세상이 그런 꼴이기 때문이지 절대 내 탓도 아니고 네 탓도 아니야. (울다 지쳤을까 헐떡이는 네 이마에서부터 흐르는 땀을 닦아주고는 네 손에 한번 더 깍지낀다. 당당하게 말하는 아이 치고는 네가 만져지는것이 아직은 꿈일까 조금의 망설임이 있어 너를 각인시키듯 온기를 느껴)
 
루시 칼드웰:너만 생각하면 몸속에서 무엇이 막 피어올라. 머리가 지끈거리고 터질것같은 느낌이야. 피어오르고 피어올라서 그릇에 담지 못할 정도로 만개하고 뱉어내다 못해 찢어질것같았어. 아마 너도 그랬겠지 (제 가슴팍에 네 손을 올린다) 웃기게도 기분탓일지는 몰라, 이제서야 앞뒤 생각없이 내뱉은 말에 홀가분 한걸까, 답답하지 않아. 내 감정이 더욱 뚜렷하게 보이고 역겨운 단내음 삼키느라 못한 말을 넣을 필요도 없어.
너만 이렇게 있어도 단순한 사람이야. 일찍히 이럴 수 있었다면 여전히 기억날듯 말 듯한 원인 모를 너를 잃는 아픔도 조금은 적게 느껴졌을텐데. (그래서 너 또한 나처럼 홀가분 하길 원한다고, 네 속 만개한 그 숨쉬지 못할 공간을 내가 조금은 마련해 줄 수 있도록 고개를 내려 네 이마에 살짝 맞대어 눈을 살짝 감는다) 너도 할 수 있어. 비록 봄은 지났지만 가을이 오기 전에 봄에 마저 피어나지 못해 속에 꽉 막혀버린 꽃들 서로 한번 뱉어보자고. 운좋아서 바람이라도 불면 꽤나 예쁘게 흩날려서 이번이야말로 그저 더운 흔한 옥상이 아니라 만개하는 옥상이 될 지 누가 알아.
(숨을 들이키고는 먼저 조금씩 내뱉는다. 너에게 감정을 뱉을때마다 엮여있던 꽃잎 하나하나가 떨어져 나가 바람을 통해 시원하게 날아간다.)
미안해는 이제 됐어. 좋아한다고만 마구 말해줘. 나중에 옆구리 치게 해줄테니까, 뱉어보고 피어보자.
(중얼거리는 속삭임. 좋아한다 몇번이고 말한다. 속이 가벼워지고 마지막 꽃잎이 떨어져 나갈때까지 나는 그렇게 너에게 여태 하고싶었고 앞으로도 해주고 싶은 말을 읊는다)
좋아해. 좋아해. 존나게 좋아한다고.
 
사라 발렌티나: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이어지지 못한 뒷말은 힘없이 바스라 사라졌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전혀 모르겠어, 왜 자꾸만 그런 식으로 좋다고 해주는거야. 적어도 자신은 그 때 자신은 죽었어야 했고 너는 내가 죽어도 세상을 살아가 결국 만나지 못한 채 지나야 했을 걸 거스른 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 미친 우연과 인연이 겹쳐 너와 내가 그 모습 그대로 이 나이 그대로 만날리 없지 않은가. 막상 떠올리고 난 뒤, 학교에 등교도 하지 않고 꽤 오랫동안 지금의 상황을 저주하며 스스로를 경멸하며 저 아래로 떨어트렸다. 이럴거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만나지 않도록 만드는게 더 낫지 않느냐고. 하지만 전생에 대한 벌로 너와 만났으나 이뤄지지 못하고 눈 앞에서 다시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까지가 제대로 된 운명이라고 말해주는거 같아서 스스로, 혼자 납득했다. 거기에 네 의사는 없었어. 그 때도 지금도 나는 네게 인사를 하지 않았으니까. 너는 일찍 이럴 수 있었다면 좋았을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반대였어. 네 말대로 그저 가만히 헐떡이는 너를 걱정했다가도 잦아들어가는 심호흡에 또 작은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아프게 해서 아파보였던게 아니라 뛰어와서 그런거였구나, 하는 이기적인 안도감. 손바닥 너머로 뛰는 가슴이 느껴지는 착각까지 들먹이면서.)
하지만 루시, 나는... (나는 너를 아프게 한다니까? 왜 그걸 자꾸 무시하고 발언을 하는지 모르겠어. 네 덕에 스스로도 조금씩 앞을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대체 왜 그렇게 풀어서 고백을 하는건지 아직도 모르겠단 말이야. 그래, 나는... 그렇게 이어가려는 순간 작은 위화감이 느껴지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나는 너를 생각할 때 마다 속이 벅차고 그걸 눈 앞에 보여주듯 꽃잎이 울컥 쏟아져 나왔는데 왜 지금은, 지금은 아니지? 비록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너나 자신을 죽일 만큼 불편하지도 않았다. 네가 말한 바보라는건 도대체 무슨 뜻이지. 한 번 깜박일 때 마다 눈꺼풀에 달라붙었다가 떨어지는 눈물방울들이 차갑고 시큰거렸다. 이건 내가 전부 너를 좋아해서, 짝사랑해서. ... ...짝사랑해서?)
...하. (순간, 정말 아주 짧은 순간, 네 부끄러운 고백을 실시간으로 듣고 얼마 지나지 않은 그 순간에 실소가 터져나왔다. 나는 대체 얼마나 몰려있었던거지. 네 손을 만지작거렸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천천히 숨을 삼켰다가 뱉었다. 다시 너를 보기 위해 든 얼굴에는 고집도 없었고, 하찮은 자존심도 없었다. 그저 이 상황을 수긍하며 힘 풀린 눈매로 묵묵하게 감정을 꾹꾹 눌러담은 눈물 방울만 굵게 털어트렸다. 가까이 이마를 대고 느껴지는 무게감이 지독하게 현실로 다가와 어지렵혀.)
좋아해. 내가 너를 좋아하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똑같은 방법으로 스스로를 한 번 더 포기했을만큼 좋아해. 고마워. 이번엔 전혀 늦지 않았어, 달려와 줘서 고마워. 사과는 하지 않을게. 대신 고맙다고 할게. 내 모든 일생을 받쳐도 좋아할 사람.
 
루시 칼드웰:(작은 입가 사이로 짖긴 꽃가루가 날려 바스라진다. 세상이 저 둘을 버린다 해도 생각보다 너와 나는 꽤나 강하고 거친길에서도 굴러진 적이 있는적 보여, 다시한번 어느 시간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그때는 그 미래의 일, 세상과 맞서싸와 우리것을 만들자며 굵게 한번 떨어지는 네 눈물을 닦아줄까 했지만 이내 흔적을 남기자며 떨어지고 깨지는 방울들을 보았다. 다행이도 너는 내 품에 있어 감정을 속삭이고 있으며 네가 없어졌어야 할 시간은 자연스레 지나가 여름 끝자락 노을이 지고 오렌지색과 이른 밤하늘 색감이 적신다. 나 또한 일생을 넘어 태어나지 않은 시간의 나 자신의 인생까지 더불어 너를 위해 한없이 달리겠다며, 이마를 맞대던 얼굴을 비스듬히 네 입술 위에 짖눌러. 맞댄 입 사이에는 일상속 조금은 새콤하고 달달한 여름의 맛이 아른거렸다)
 
장면전환
 
·· MUSIC ··青恋終着点▶ ❚❚ ━━━━⊙━━━━━━━─ 0:00
 
당신은 당신의 진심을 전합니다.
 
한 글자 한 글자,
 
그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또박또박 전달합니다.
 
몇 번이고
 
당신의 진심을 되묻는
 
그의 목소리.
 
외로웠던 사랑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
 
그가 웃습니다.
 
꽃처럼 환하게,
 
눈앞이 아찔할 만큼 환하게.
 
바람을 타고 흘러오던 꽃향기가
 
물거품처럼 흩어집니다.
 
손끝에 닿는 생생한 감각,
 
꿈이 아닙니다.
 
늦여름,
 
노을이 지는 풍경.
 
그 풍경을 보아도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끝나가는 여름이
 
우울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여름이니까요.
 
두 사람은 몇 번이고 함께 여름을 맞을 겁니다.
 
더 많은 추억들을 쌓아가겠죠.
 
End 1. 여름, 우울의 끝.
 
Kpc, 탐사자 생존. 생환 보상 이성 회복 1d10!
 
2021.05.06 AM 2:35 엔딩! 수고하셨습니다!